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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김모 씨(33)는 지난 설 연휴 일본 오사카 여행을 떠나면서 중고명품 쇼핑 계획을 세웠다. 신사이바시 쇼핑거리에 몰려 있는 중고명품 숍을 돌면서 가격이 너무 비싸거나 단종돼 신품으로 사기 어려웠던 제품들을 구하고 싶어서였다. 이틀 정도 시간을 들여 쇼핑을 한 덕에 김 씨는 10만엔(약 95만원)짜리 루이비통 가방과 5만엔(약 47만원)짜리 샤넬 플랫슈즈 등을 ‘득템’했다. 정가가 각각 300만원, 150만원 정도 하는 제품들이다.
김 씨는 “워낙 중고명품 시장이 발달한 덕분에 물건이 많았다”며 “엔저(엔화 가치 하락) 효과까지 있어 국내 중고가보다 더 저렴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었다. 중고품 매장마다 한국어가 익숙하게 들릴 정도로 한국인 고객이 많았다”고 전했다.
최근 엔저 현상으로 휴가, 공휴일 등을 이용해 일본에서 명품을 사는 원정 쇼핑객이 늘어난 가운데 현지 중고명품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2000년대 초반까지 소위 ‘명품천국’으로 불렸던 일본에선 중고시장으로 흘러 나오는 명품 매물이 상당하다. 국내 당근, 중고나라 등 중고 플랫폼에서 파는 어지간한 개인 매물보다도 싼 물건이 많은 덕에 명품 마니아들은 물론 일반 여행객까지 중고명품 쇼핑을 여행 루트에 넣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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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더 재팬타임스 등 현지 언론이 무역 보고서 리유즈 이코노믹 저널 통계를 인용해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일본 중고품 시장은 매년 확대돼 최근엔 규모가 3조1000억엔(약 29조3000억원·2023년 기준) 수준으로 집계됐다. 전년 대비 7.8% 증가한 수치다. 명품 등 거래가 활발하면서 브랜드 상품은 3656억엔(약 3조4000억원) 규모로 19.4% 늘었다.
현지에선 자국 수요도 상당하지만 엔화 약세 효과를 타고 고급 의류와 핸드백을 저렴한 가격에 사려는 관광객들이 일본으로 몰려든 게 시장을 키우고 있다고 분석한다. 중국이나 동남아 등 아시아 지역이나 유럽, 북미 지역에서 주요 명품 고객들이 엔화 약세를 틈타 자국 대신 일본을 방문해 명품을 대거 사들이고 있다는 설명이다.
한국인 고객 비중도 상당하다. 거리상 가깝고 여행 인프라가 우수한 일본은 100엔 환율이 900원 초중반대까지 머무르고 물가 변동도 거의 없어 비교적 '값 싼 여행지'로 꼽힌다. 여기에 중고명품 시장이 잘 갖춰져 있어 명품 수요가 큰 한국인들 사이에선 선호가 높을 수밖에 없다. 현지에서 중고명품을 구매할 경우 비슷한 상품을 한국에 비해 20%가량 저렴한 값에 구매할 수 있을 것으로 추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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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에 민감한 국내 패셔니스타들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중심으로 빈티지 명품 착용 샷을 올리기 시작하면서 중고명품 원정 쇼핑객이 확 늘었다. 앞서 배우 정려원, 가수 강민경 등 패셔니스타들은 빈티지 명품을 입고 방송에 출연하거나 인스타그램에 착용 사진을 올렸다. 제니가 2023년 패션 행사 ‘멧 갈라(Met gala)’에서 입은 샤넬 드레스는 여전히 회자된다. 1990년대 드레스를 본떠 만들어 ‘빈티지 드레스’의 상징처럼 자리 잡았다. 제니는 샤넬, 디올 등 오래전 출시된 빈티지 명품 제품을 스타일리시하게 착용하기로 잘 알려져 있다. 일본에서도 이 같은 수요에 대응해 ‘제니가 즐겨찾는 곳’, ‘제니가 사랑하는 빈티지샵’ 등의 문구로 홍보하곤 한다.
한 명품 수입업체 관계자는 “일본이 한국에 앞서 명품시장이 발달하면서 1990년~2000년대 초반까지 일본인들이 해외에서 사들인 제품들이 중고시장으로 풀리는 비중이 상당하다”며 “워낙 수량도 많고 품목이 다양해 한국 중고명품 시장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많큼 값도 싸고 시장 규모가 크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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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사는 일본 패션 플랫폼 조조타운과 MOU를 맺고 중고 패션 거래를 지원하고 있다. 구구스도 일본 중고 명품 유통업체와 손잡고 기업 간 거래(B2B) 시장에 진출했다. 개인 무역상들의 창업도 늘었다. 일본에서 비교적 저렴한 값에 중고명품 제품들을 떼오고 국내서 약간의 가공을 거쳐 20~30% 비싼 값에 물건을 파는 식이다. 한 중고명품 업체 대표는 “일본 중고명품은 품질이 좋고 정식 매장에 없는 상품도 구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며 “국내 중고명품 시장이 커지고 있는 만큼 취급처들이 앞다투어 매입에 나서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