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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 없고, 고용 유연성 떨어져…'유럽 빅2' 獨·佛 나란히 역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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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경제 뛰는데…유로존 성장률, 2년 연속 0%대 그쳐

獨, 탈원전 이후 에너지 수급 위기
자동차 등 제조업 경쟁력 떨어져
올 성장 전망치 1.1→0.3% 하향

프랑스, 작년 성장률 -0.1%로 '뚝'
정치 분열로 재정적자 해소 난항
"경직된 노사관계에 생산성 발목"

유로존(유로화 사용 20개국) ‘빅2’인 독일과 프랑스 경제가 지난해 나란히 뒷걸음질 쳤다. 이에 따라 유로존 전체 경제성장률도 2년 연속 0%대에 그쳤다. 대서양 건너편 미국 경제는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을 우려할 만큼 호황인 데 반해 유럽 경제는 지지부진한 것이다. 혁신 부족과 에너지 가격 급등에 따른 제조업 경쟁력 하락, 경직된 고용 구조에 정치적 혼란까지 겹친 결과다.
○독·프 ‘마이너스 성장’

30일(현지시간) 독일 정부는 지난해 경제성장률이 -0.2%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2023년 -0.2%에 이어 2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이다. 독일 경제가 2년 연속 역성장한 것은 2002~2003년 이후 21년 만이다. 독일 정부는 올해 성장률 전망치도 1.1%에서 0.3%로 끌어내렸다. 로베르트 하베크 독일 부총리 겸 경제부 장관은 CNBC 인터뷰에서 “독일이 심각한 침체에 갇혔다”며 “숙련된 노동자 부족과 관료주의 만연, 장기간 소비 침체 등 근본적 문제가 자국 경제에 큰 타격을 줬다”고 말했다.

독일 경제가 역성장한 주원인으로는 에너지 비용 상승에 따른 제조업 침체가 꼽힌다.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로 러시아가 에너지 공급을 줄이자 탈원전 정책을 고수하던 독일은 위기에 직면했다. 러시아산 천연가스 의존도가 높은 독일은 급등한 에너지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자동차·화학 등 핵심 제조업 부문 경쟁력을 잃기 시작했다. 로이터통신은 “높은 에너지 비용과 불확실한 친환경·신재생 에너지 공급 정책으로 독일 우량 기업이 무너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프랑스도 성장률 -0.1%를 기록했다. 2023년 0.7%보다 훨씬 나빠졌다. 작년 여름 조기 총선 이후 심각한 정치 분열을 겪으며 막대한 재정적자를 해소하지 못한 여파가 컸다. 미셸 바르니에 프랑스 총리는 지난해 1540억유로(약 232조5800억원)에 이르는 재정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세금 인상 및 공공지출 삭감이 포함된 2025년 예산안을 내놨지만 좌파연합 신민중전선(NFP)과 극우 정당 국민연합(RN)은 복지 혜택 축소 등을 이유로 지난해 12월 2일 총리 불신임안을 발의했다. 이 영향으로 올해 예산안도 처리되지 못했다.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지난해 12월 프랑스의 국가 신용등급을 ‘Aa2’에서 ‘Aa3’로 한 단계 강등했다. 무디스는 성명을 통해 “프랑스 공공 재정이 정치 분열로 상당한 타격을 받았다”며 “이런 가운데 차기 정부가 내년 이후에도 재정적자 규모를 지속적으로 줄일 가능성은 낮다”고 설명했다. ‘정치 붕괴’가 경제의 발목을 잡았다는 것이다.
○혁신 부족·고용 경직도 문제
유로존의 경기 침체는 미국과 대비된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미국 경제성장률을 당초 전망치보다 0.5%포인트 높인 2.7%로 제시한 반면 유로존에 대해서는 1.0%로 기존보다 0.2%포인트 낮췄다. 유럽이 미국에 뒤처진 경쟁력을 강화하려면 낮은 생산성과 경직된 노사 관계 등 구조적 원인을 해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유럽이 매년 가난해지고 있다”며 “여가 시간을 중시하고 고용 안정성을 선호하는 고령 근로자 때문에 생산 능력이 약화했다”고 평가했다. 폴 크루그먼 미국 뉴욕시립대 교수도 과거 뉴욕타임스(NYT) 칼럼에서 미국 경제가 유럽에 비해 더 나은 성과를 내는 비결로 고용 유연성을 꼽았다. 미국 경제는 불황기 때 생산성이 낮은 부문이 정리되면서 활력을 띠는데, 유럽은 경직된 고용 구조로 생산성 향상이 더디다는 것이다.

유럽국제정치경제센터는 “혁신 정보기술(IT) 등에 자본 투자를 아끼지 않는 미국과 달리 유럽은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아 생산성이 떨어지고 있다”고 했다. 여기에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전쟁도 유럽 경제를 흔들고 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최근 유럽에 “생존 위기”를 경고했다.

유럽연합(EU)은 경제 활력을 높이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지난 29일 인공지능(AI) 분야 등 신흥 기업을 적극 육성하고 기업 규제 부담을 타파하는 로드맵 ‘경쟁력 나침반’을 발표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이 계획은 지난해 12월 출범한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2기 집행부의 간판 공약이자 임기 5년간 정책 방향을 담고 있다. 혁신 격차 해소, 공급망 안보, 탈탄소화 등 세 가지 영역이 중점 과제로 담겼다.

이소현 기자 y2eon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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