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바로가기

뉴스인사이드

딥시크가 HBM 시장도 흔든다…SK하이닉스·삼성전자 '촉각' [황정수의 반도체 이슈 짚어보기]

글자작게 글자크게 인쇄 목록으로

韓 반도체 위기 요인 진단
(3) 딥시크, AI 반도체 판 흔드나

엔비디아 주가 이틀 간 출렁
낮은 사양 칩으로 AI 서비스 증명
"고객사의 엔비디아 칩 주문 둔화 우려"

궁극적인 목표는 인간 수준의 AI 개발
지금의 챗GPT, 딥시크 수준으론 만족 못해
"AI 고도화 위한 인프라 투자는 지속"

HBM은 AI 가속기 핵심 부품
단기 우려 속 "중장기 전망 긍정적"


중국의 생성형 AI 서비스 딥시크(DeepSeek) 쇼크가 글로벌 산업계를 강타했다. 챗GPT에 못지않은 AI 서비스 ‘딥시크-R1’ 중국 기업이 개발했단 소식이 널리 알려지며 알파벳(구글 모회사), 마이크로소프트 등 미국 대표 AI 기업의 주가가 급락했다. 딥시크는 27일(현지시간) 여세를 몰아 "'야누스-프로-7B'라고 이름 붙인 '이미지 생성 기술'에서도 오픈AI 등을 제쳤다"고 발표했다. 진 판 엔비디아 수석연구원은 "훌륭한 성과"라고 평가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이날 "중국의 일부 기업은 더 빠르고 훨씬 저렴한 인공지능 방법을 개발하기를 원한다. 그렇게 되면 돈을 많이 쓸 필요가 없기 때문에 좋은 일"이라며 "긍정적인 일이고 자산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딥시크가 엔비디아의 '고사양이 아닌 '저사양' AI 가속기 'H800'을 쓰면서 반도체 투자(컴퓨팅) 비용을 557만6000달러(약 78억8000만원)밖에 안 썼다는 소식에 엔비디아 주가는 27일(현지 시각) 뉴욕 시장에서 16.97% 급락했다. AI 기업들이 엔비디아의 H100, GB200 등 대당 5000만원 넘는 엔비디아의 '고사양' AI 가속기를 쓸 필요가 없어졌다는 분석 때문이다.

엔비디아와 함께 브로드컴, TSMC 등 AI 수혜를 근거로 주가가 급등했던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도 동반 급락했다. 일각에선 "빅테크들이 AI 반도체 투자를 줄이면서 반도체 기업들의 실적이 곤두박질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딥시크 쇼크는 SK하이닉스, 삼성전자 등 AI 반도체 생태계를 이루고 있는 한국 반도체 기업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
'더 많은 반도체 투자=더 좋은 AI 기술' 공식 깨지나
엔비디아의 주가가 급락한 이유는 '굳이 엔비디아의 값비싼 AI 가속기를 써야 하냐'는 데서 출발한다. 최근 2~3년간 빅테크들은 A100, H100, GB200 등의 이름이 붙은 엔비디아의 최고 사양 AI 가속기를 구하기 위한 경쟁을 벌였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새로운 AI 모델을 구축하는 데 들어가는 계산과 데이터를 크게 확장하면 더 나은 AI 시스템을 개발할 수 있다"는 'AI 스케일링 법칙'이 통용됐기 때문이다.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메타, 아마존, 테슬라 같은 빅테크들이 수백 조원에 달하는 거금을 투자해 대당 5000만원 넘는 엔비디아 AI 가속기를 사고 데이터센터에 투자한 이유다.

하지만 딥시크의 등장으로 이러한 스케일링 법칙에 대한 의문이 커지고 있다. 'AI 반도체에 대한 더 많은 투자=더 좋은 AI 서비스'란 공식이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빅테크들이 고사양 AI 가속기에 대한 주문을 줄이면 엔비디아의 실적 악화로 이어질 것이란 논리다. 시장조사업체 야르데니 리서치는 "미국 대형 기술 기업들이 딥시크로부터 더 저렴한 GPU로 AI 시스템을 설계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면, 엔비디아엔 그다지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있다"고 분석했다.
딥시크의 '가성비 투자' 주장에 의문도 제기
다만 딥시크의 투자액에 대한 여러 의문점도 제기되고 있다. 우선 딥시크가 정말 H800만 썼냐는 것이다. AI 데이터 기업 '스케일 AI'의 알렉산더 왕은 "딥시크가 미국 제재 때문에 밝히진 않았지만, 엔비디아의 H100 AI 가속기(GPU) 5만개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일론 머스크도 최근 X(옛 트위터)를 통해 '딥시크가 적은 자원으로 챗GPT 수준의 AI 서비스를 내놨다'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뜻을 나타냈다.

딥시크가 공개한 557만6000달러라는 반도체 투자 금액에 대한 의문도 나온다. 초기 투자 비용이 빠져있다는 의문이 불거지고 있다.

딥시크 자신도 '고사양 AI 가속기의 필요성'에 대해서 인정하고 있다. 딥시크의 한 직원이 최근 올렸다가 지운 게시글을 보면 그는 "컴퓨팅(반도체) 자원을 제외하곤 AGI(범용 인공지능)으로 가는 길을 막을 수 있는 길은 없다"며 "여전히 미국과 4배 수준의 컴퓨팅 격차가 있다"고 적었다. 량웬펑 딥시크 설립자는 "미국과 중국의 컴퓨팅 격차는 반도체 수출 통제로 더욱 확대됐고 이는 딥시크의 주요 제약조건으로 남아있다"고 말했다. 고성능 AI 가속기(반도체)에 대한 필요성을 인정한 것이다.
"이 정도 AI 서비스에 만족 못해"…중장기 AI 투자는 계속될 것
전문가들은 단기간 딥시크 쇼크 때문에 엔비디아의 고사양 AI 가속기에 대한 주문이 주춤할 수 있다는 데 동의한다. 빅테크 등 고객사가 엔비디아 고성능 AI 가속기 대신 저사양 제품을 쓰면서 AI 서비스를 고도화하는 방법을 고민할 것이기 때문이다. 빅테크들이 반도체 같은 하드웨어 투자를 일단 멈추고, '강화 학습' 등 딥시크가 활용한 AI 기술과 소프트웨어(SW) 고도화에 많은 자금을 투입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중장기적인 관점에선 AI 시장이 더 커지면서 투자가 계속될 것이란 의견이 나온다. 현재 챗GPT나 딥시크가 내놓은 서비스가 AI 기술의 끝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정도 AI 서비스에서 만족한다면, 고성능 AI 가속기에 대한 투자가 안 필요할 수 있다. 하지만 기업들의 목표는 'AGI'로 불리는 인간 수준의 AI 개발이다. 아직 갈 길이 멀었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챗GPT 대신 딥시크를 쓰고 있다고 밝힌 팻 겔싱어 전 인텔 CEO는 " 딥시크는 세 가지 교훈을 줬는데 첫 번째는 비용을 극적으로 낮추면 시장은 더 확장할 수 있다는 것"이라며 "AI가 더 광범위하게 배포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 CEO는 "제번스의 역설(기술적 진보로 인해 자원의 효율성이 증가하면 특정 용도에 대한 자원의 양이 줄어들지만, 사용 비용 또한 감소하면서 수요가 증가해서 자원 사용량이 증가한다는 이론)이 다가온다"며 "AI가 더 효율적이고 접근 가능해지면서 그 사용이 급증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진 판 연구원은 "딥시크가 활용한 강화학습이 더 적은 연산을 쓴다는 건 전혀 모르고 하는 말"이라며 "기계가 데이터를 생성하고 기계가 학습하는 강화학습은 오픈소스와 함께 AI의 파이를 더 키우면서 인류 전체가 AGI로 나가게 할 것"이라고 했다.

최근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가 "올해 AI에 93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힌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딥시크가 최근 전 세계적인 화제가 됐지만, 업계에 알려진 건 지난해 하반기부터다. 저커버그가 딥시크에 대해 모르고 있었을 리는 없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대규모 투자를 선언한 건 딥시크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AI 투자는 필수불가결하다고 판단했다는 의미로 평가된다.
"딥시크가 엔비디아 GPU 추가 수요 창출할 것"
엔비디아에 대한 긍정론도 여전하다. 미국 금융사 번스타인은 "딥시크가 비용을 절감한 건 기존 하드웨어에서 더 많은 능력을 뽑아내는 걸 입증한 것"이라며 "AI 인프라에 투자를 안 하는 게 아니다"고 설명했다. 투자은행 시티(Citi)도 "딥시크의 성과가 고급 AI 가속기(GPU)를 쓰지 않고 이뤄졌다는 주장엔 의문이 있다"며 "미국이 더 진보된 칩에 접근할 수 있는 건 장점이다. 더 매력적인 테라플롭스(TFLPOs·초당 조단위 연산)당 비용을 제공하는 고급 GPU에서 벗어날 가능성은 작다"고 주장했다. 댄 아이브스 웨드부시 애널리스트는 "자율주행, 로봇, AI 활용사례를 실행하는 유일한 회사는 엔비디아"라며 "경쟁력 있는 LLM을 내놓는 것과 광범위한 AI 인프라를 구축하는 건 완전히 다른 문제"라고 지적했다.

엔비디아도 이날 로이터에 밝힌 공식 입장을 통해 "딥시크의 돌파구가 자사의 GPU에 대한 더 많은 작업 수요를 창출할 것"이라며 "AI 추론(서비스)은 상당수의 엔비디아 GPU와 고성능 네트워킹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HBM 수요, 가격에 영향주나…삼성 SK '촉각'
엔비디아 AI 가속기 시장에 대한 전망은 한국 기업과 무관한 이슈가 아니다. SK하이닉스는 GPU와 함께 AI 가속기를 이루는 핵심 부품인 5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3E)를 중심으로 엔비디아에 공급하며 '팀 엔비디아'의 일원으로서 핵심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SK하이닉스가 지난해 4분기 HBM에서 올린 매출은 5조8510억원으로 전체 D램 매출의 40% 수준이다. 3분기에도 3조6376억원 수준의 HBM 매출을 기록했다. 대부분은 엔비디아에 공급하며 거둔 결과다.

삼성전자 역시 엔비디아에 4세대 HBM인 'HBM3'를 공급 중이다. 삼성전자가 공급한 HBM3는 SK하이닉스가 주력으로 납품하는 HBM3E보다 한 단계 낮은 버전이다. 딥시크가 활용한 H800이나 H20 같이 엔비디아가 중국 수출을 위해 성능을 낮춘 저사양 AI 가속기에 들어간다.

만약 엔비디아의 '고성능' AI 가속기에 대한 주문이 줄어든다면, SK하이닉스의 타격이 불가피하다. GB200, H100 등 고성능 제품용 HBM은 주로 SK하이닉스가 공급하고 있어서다. 엔비디아 AI 가속기 가격이 하락하면서 HBM 납품 단가도 떨어질 가능성도 있다. 최신 HBM는 일반 D램의 4배 정도 가격에 팔린다.

하지만 많은 전문가의 진단대로 AI 인프라 투자가 계속된다면, HBM 수요도 중장기적으론 계속 커질 수밖에 없다. 프로세서의 데이터 연산을 돕는 메모리반도체의 중요성은 AI 시대를 맞아 점점 더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딥시크 쇼크를 계기로 미국과 중국의 AI 경쟁이 더 고조되고, AI 투자액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면, 한국 기업에도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자율주행차, 로봇 등에도 HBM 탑재 전망
HBM이 향후 자율주행차, 로봇 등과 같은 피지컬 AI(물리적 세계를 인식하고 이해하며 자율적으로 학습·판단해 일상 환경에서 활용되는 AI)에 탑재될 가능성이 큰 것도 한국 메모리 기업엔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세계적인 IB, 조사업체들은 HBM 시장의 꾸준한 성장을 전망하고 있다. 트렌드포스와 JP모건에 따르면 HBM 시장은 지난해 170억달러를 기록했고, 올해는 380억달러, 내년엔 580억달러로 성장할 전망이다.

SK하이닉스는 지난 23일 열린 실적설명회(콘퍼런스콜)에서 최근 AI 기술의 트렌드가 학습에서 추론으로 넘어가면서 고사양 HBM 수요가 줄어드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AGI를 위해선 추론에도 컴퓨팅 파워가 요구되면서 HBM 성장 요인이 될 것으로 본다"며 "현재 기업 외에 국가 차원의 투자 계획도 발표되고 있으며, CES 2025에서 주목받은 '피지컬 AI'와 'AI 에이전트' 등도 장기적인 성장 동력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트럼프 "외국산 반도체에 관세 부과"
한편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외국산 반도체에 대한 관세 부과도 공언했다. 다만 구체적인 관세 부과 방식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미국으로의 반도체 생산 시설 이전을 압박한 것으로 분석된다. 삼성전자는 현재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에 파운드리 공장을 운영하고 있고 인근 테일러에 370억달러를 투자해 파운드리 공장을 신축하기로 했다. 가동 시점은 2026년이다. SK하이닉스는 2027년 가동 목표로 인디애나주 웨스트 라파예트에 38억7000만달러를 투자해 HBM 패키징 공장을 짓고 있다. 이들 시설에서 생산된 제품을 제외한 한국, 중국 등에서 생산한 제품은 관세 부과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
반도체 관세가 현실화하면 미국 생산량이 상대적으로 많은 미국 인텔(CPU), 마이크론(메모리반도체) 등의 반사 이익이 예상된다. 다만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한국 기업이 만든 반도체가 대부분 스마트폰이나 PC 등에 탑재된 상태로 미국으로 수출되기 때문에 '큰 영향이 없을 것'이란 분석도 있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

오늘의 신문 - 2025.02.12(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