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우리나라 연봉계약직 1세대입니다. 2000년 이후 증권회사에 리서치센터가 처음 만들어질 때 대형증권사 간 대대적인 스카우트 전쟁이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두 번째로 이직했습니다. 당시에는 증권사들이 지금 생각해도 어마어마한 연봉을 제시하며, 프로야구의 스토브리그를 뛰어넘는 스카우트 전쟁을 벌였습니다. 저도 그 한복판에 있었지요. 그 당시 대부분의 기업 직원은 정규직이어서 새로운 연봉체계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만들어진 게 우리나라 금융권 최초로, 아마도 기업 최초로 연봉계약직이라는 제도가 만들어졌습니다.
높은 연봉을 주는 대신 계약조건이 살벌했습니다. 가장 무서운 것은 1년 단위 계약이라는 겁니다. 1년 후 회사는 연봉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 조건이었습니다. 복지제도도 성과급도 없었습니다. 그해 성과가 좋으면 다음해 연봉을 올리는 계약을 하면 그만이었습니다. 완전 미국식이지요.
저는 연봉계약직 1세대로 그런 생활을 17년간 했습니다. 물론 중간에는 복리후생도 정규직과 거의 같아지고 성과급도 만들어진 대신, 연봉도 회사와 직원 간에 충분히 양해하는 수준으로 조정됐지만 계약 기간만큼은 변함없었습니다. 그러니 저는 제 스페셜티(특장점)를 계속 강화하고 구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만큼 회사에 대한 저의 기여도는 저의 스페셜티에서 나왔습니다.
예상치 못한 일이었습니다. 애널리스트가 마흔이 되면 다른 부서나 지점으로 발령 나던 시절이었거든요. 스페셜리스트로서 생명을 연장하며 노장의 시니어 애널리스트를 목표로 삼아 왔는데, 이제 완전히 다른 일을 해보라고 하는 겁니다. 그것도 완전히 새로운 비즈니스를 발굴하는 '신사업전략본부'를 맡으라 했습니다.
처음엔 회사를 나가라고 하시는 줄 알았습니다. 지금까지 모든 경력을 증권사 애널리스트로 살아왔는데, 그걸 포기하고 새로운 비즈니스 플랫폼과 금융 상품을 개발하라니 청천벽력이었습니다. 더구나 없던 조직을 만들어 인력부터 미션, 포지셔닝까지 새롭게 해야 했습니다. 저를 계약 해지시킬 요량으로 제안한 것은 아니었지만, 제 고민은 깊어 갔습니다. 원래 제가 꿈꾸던 백발이 성성한 노장의 시니어 애널리스트를 목표한다면 이 회사를 그만두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직해서 애널리스트의 꿈을 이어갈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비즈니스의 세계에 발을 내디딜 것인가?
그때 제 인생의 멘토인 선배님 한 분을 찾아갔습니다. 그분은 금융계에 몸담은 적이 없으나, 대기업에서 신사업을 개발하고 성공시킨 입지전적인 분이시지요. 남들이 생각하지 못할 때 해외 유전을 우리나라에서 처음 개발하신 분입니다. 남들이 엄두를 내지 못할 때 해외광산에 투자해서 글로벌 원자재 전쟁이 났을 때 오히려 큰 이익을 회사에 안겨준 그런 분입니다.
그분을 만나니 "어렵지?" 첫 말씀이 당연하다는 듯이 물었습니다. "네 힘듭니다. 무엇보다 무엇을 해야 할지를 몰라서 더욱 힘듭니다. 어떻게 선배님은 20년 동안 신사업을 하셨습니까?" "원래 신사업은 그런 거다.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는 거다. 그러니 앞이 깜깜할 거야. 그래도 죽도록 해봐라. 그러면 6개월 후쯤 어슴푸레하게 보이는 게 있을 것이고, 1년 후쯤엔 뭔가 잡힐 거다. 그냥 하는 거다. 미국도 뒤지고, 유럽도 뒤지고 온 세계를 다 뒤져라. 하늘 아래 새로운 게 없다지만, 다른 나라 하늘 아래서는 이미 하는 게 있을지도 모른다."
거기다 한마디 더 보탰습니다. "아마 지금쯤 회사 내 다른 부서로부터 욕을 먹고 있을 거다. 하는 일 없이 봉급만 축내고 있다고. 그러나 신사업의 가장 큰 장점은 모든 사람이 큰 기대를 하지 않기 때문에 성공하면 모두 너의 공이고, 실패하면 그럴 줄 알았다고 욕 한 바가지 먹는 것이다."
원래 신사업은 그런 거다? 왠지 모르게 위안이 됐습니다. 그래. 뭐든 죽도록 해보자. 6개월 정도 하다 보면, 뭔가 어슴푸레 보인다고 하지 않았는가. 정말 그랬습니다. 그 당시 주식 투자의 대부분은 국내 주식 투자였고, 해외 투자는 국민연금 정도의 큰 기관투자가 외엔 불가능했습니다. 시스템이 없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국내 최초로 해외주식 투자 플랫폼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한국에서 처음 시도하는 것이라 국내 법규부터 해외 법규까지, 거래 시스템부터 결제 시스템까지 무엇 하나 정비된 것이 없었습니다. 하나하나 모두 풀어가야 했지요. 그렇게 해서 1년 반 만에 국내 최초로 해외주식 투자 플랫폼을 완성했습니다.
이 과정에서도 애널리스트 때 쌓아둔 경험치가 빛을 발했습니다. 해외주식 투자 플랫폼에 투자분석 툴을 구성하고 투자분석 지표를 설정하는 작업은 애널리스트 경험이 없으면 할 수 없었습니다. 당시엔 구글이나 테슬라 같은 기업에 대한 분석자료가 국내에는 아예 없었는데, 투자플랫폼이 완성된 이후 업계에서 처음으로 해외 주식투자 리포트도 발간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분석업무를 전혀 모르던 직원들을 해외주식 애널리스트로 육성해 그들에게도 스페셜티를 가지게 해줬습니다. 만약 제가 애널리스트를 하지 않았더라면 해외주식 투자플랫폼을 제대로 만들 수 있었을까요? 그 이후 시스템 트레이딩 플랫폼, 자산 관리 시스템 등 다른 증권사가 시도한 적 없는 비즈니스 플랫폼들을 개발하면서, 저에겐 애널리스트 외에 '신사업 구축'이라는 또 다른 스페셜티가 붙었습니다.
기업은 조직의 생산성을 높여야 하고, 직원은 노동생산성을 높여 자신의 가치를 확보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구성원들 각자 각자의 스페셜티를 만들기 위해 절대적 시간이 필요한 것이지요. 30년간 한 가지 일을 할 수는 없지만, 회사를 위해서도 본인을 위해서도 짧은 주기의 순환근무는 회사의 성과와 성장에도 반하고, 직원들을 스페셜리스트로 만들 수도 없습니다.
그러다 5년 뒤 저는 '100세시대연구소'라는 사내 은퇴연구소의 소장으로 다시 발령받게 됩니다. 사실상 한직으로 좌천된 겁니다. 또 한 번 난감했지만, 다시 도전해 보기로 했습니다. 생애 재무전략과 퇴직 연금, 개인연금 등 연금 상품을 연구하고, 은퇴 이후 생활을 디자인하는 것이 연구소의 주된 일이었습니다. 애널리스트 트레이닝을 제대로 받지 않은 연구원들의 리포트는 제가 보기에 민망한 수준이었습니다. 주니어 애널리스트들을 트레이닝하듯이 분석업무를 재정비했습니다. 점점 리포트의 질이 높아졌고, 업계에서도 100세시대연구소 리포트를 주목하기 시작했습니다. 〈THE 100〉이라는 시그니처 잡지도 펴냈습니다.
저도 '나의 노후'를 준비한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배우고, 연구하고, 공부했습니다. 중년층의 연금 등 재무 전략, 은퇴 이후 자산 관리, 노후 계획 등을 주제로 하는 정기 강좌도 매월 열었습니다. 방송과 언론에서 100세시대연구소를 조명하기 시작했습니다. 회사 내에서 별 볼 일 없던 조직인 100세시대연구소가 주목받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저의 세 번째 스페셜티가 만들어졌습니다.
'애널리스트', '신사업/금융상품', '재무전략/은퇴 준비'. 이렇게 3가지 스페셜리티가 뭉치며 저는 서서히 제너럴리스트로 변신하게 됐습니다. 그렇습니다. 제대로 된 제너럴리스트는 결국 여러 스페셜리스트의 합입니다. 스페셜티라는 부분의 합이 제너럴리스트를 만듭니다. 그래서 먼저 스페셜리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처음부터 제너럴리스트를 고집한다면 각 분야의 깊이와 어려움을 알지 못합니다. 안다고 해도 수박 겉핥기식입니다. 하늘다람쥐 수준일 뿐입니다.
사실 제너럴리스트는 관리 영역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그 역시도 관리만 해본 사람은 한계가 있습니다. 주식 주문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고, 채권 가격을 계산할 줄 아는 증권 회사 사장과 그렇지 못한 사장은 차원이 다릅니다. '사장이 굳이 그런 것까지 알아야 하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걸 안다는 것은 일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파생되는 여러 문제점과 어려움을 파악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차이는 하늘과 땅입니다.
두 사람의 사과 장수가 있습니다. 한 사람은 '사과 하나에 얼마요'하고 사과를 팝니다. 다른 사람은 '이 사과는 어디에서 온 것이며 품종은 무엇이고, 농약을 치지 않은 유기농 사과이며, 자기가 신뢰하는 과수원에서 직접 받아온 것'이라고 하며 판매합니다. 어느 사과가 잘 팔릴까요?
처음부터 스페셜리스트가 돼야겠다고 마음먹은 사람도 있겠지만, 대개는 본인이 좋아하는 일, 잘하는 일을 열심히 하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인내심을 갖고 그 분야를 깊게 파면, 절대적 시간이라는 양분으로 스페셜리스트의 열매가 맺히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스페셜리스트였던 사람은 없습니다. 한참 시간이 지난 후 다른 사람들이 그 가치를 알아준 것일 뿐입니다. '스페셜리스트가 맞니, 제너럴리스트가 맞니'에 대해 논쟁할 필요도 없습니다. 스페셜리스트로서의 경험이 여러 분야에 많은 사람이 궁극에는 훌륭한 제너럴리스트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스페셜리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스페셜리스트가 먼저입니다.
<한경닷컴 The Moneyist> 이윤학 전 BNK 자산운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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