뽀글뽀글한 파마머리에 수염이 덥수룩한 모습으로 커다란 붓을 들고 쓱쓱 그림을 그리던 한 아저씨. 여러분은 이 사람을 잘 모를 수도 있지만, 부모님들은 대부분 알고 있을 거예요. 그 아저씨는 눈 덮인 산과 맑은 호수, 푸른 숲이 어우러진 풍경을 20~30분 만에 뚝딱 그리고 나서 “참 쉽죠”라고 말하곤 했어요. 그는 그림으로 행복을 전하던 화가 밥 로스입니다. 알래스카에서 얻은 영감
로스는 여느 화가에 비해 아주 늦은 나이에 그림을 배웠습니다. 18세에 공군에 입대했는데, 군인을 위한 위문 프로그램 중 미술 강의가 있었다고 해요. 거기서 그림을 배우면서 화가의 길로 들어서게 됐죠.
로스는 미국 알래스카에서 오래 근무했는데, 그곳에서 눈 내리는 풍경을 처음 봤다고 합니다. 그가 태어나고 자란 플로리다는 아주 따뜻한 곳이거든요. 알래스카 풍경은 그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어요. 로스의 그림에 눈과 산, 침엽수림이 많이 등장하는 것도 알래스카의 자연환 경에서 큰 영감을 얻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로스는 군 생활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화가로 활동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군인으로서 졸병들에게 큰소리 치며 혹독하게 다루는 일이 자신과 안 맞는다고 생각했대요.
한국에서도 인기 끈 TV 프로그램
군에서 제대한 로스는 TV에서 그림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화가 윌리엄 알렉산더를 찾아가 조수로 일하며 그림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백화점 등에서 그림 강의를 하며 돈을 벌었어요. 어느 날 그와 동업하던 아네트 코왈스키가 로스의 강의를 영상으로 촬영해 한 방송사에 가져갔어요. 영상을 본 방송사 관계자들은 로스에게 TV 프로그램을 함께 만들어 보자고 제안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밥 로스의 그림 그리기의 즐거움’이 1983년 1월 11일 처음 방송됐습니다. 이 프로그램에서 로스는 속삭이듯 나지막한 목소리로 그림을 설명하며 아름다운 풍경을 그렸어요. 스르륵스르륵 붓칠을 몇 번 하고 나면 어느새 그림이 완성됐어요.
미국에서만 매주 8000만 명이 넘는 시청자가 이 방송을 봤어요. 1994년까지 11년간 403차례 방송된 이 프로그램은 한국에서도 ‘밥 로스의 그림을 그립시다’라는 제목으로 방영돼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림으로 전한 위로와 공감
로스는 그림에 위로와 공감의 메시지를 담아 시청자들에게 전달했습니다. 그는 “살다 보면 그림을 그리고 싶을 때가 있다”라고 말했어요. 누구에게나 그림을 그리고 싶은 욕구가 있고, 그림을 그리며 자기 자신을 위로하고 싶을 때가 있다는 뜻이죠. 또 “몇 가지 도구와 약간의 요령, 그리고 상상력만 있으면 그림을 그릴 수 있다”고 강조했어요.
자기 강의를 들은 수강생 중 “나는 회색밖에 볼 수 없는 색맹이어서 그림을 그릴 수 없다”고 말한 사람이 있었다며, 흰색과 회색만으로 그림을 그리기도 했죠. 로스는 그림은 타고난 재능이 있는 사람만 그릴 수 있다는 편견을 깨뜨렸고, 그림에 관심 없던 사람들에게 그림에 대한 흥미를 불러일으켰어요.
30년이 지나도 기억에 남는 화가
TV 프로그램으로 한창 인기를 누리던 중 로스는 혈액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건강이 급격히 나빠졌고 1994년 5월을 끝으로 방송에도 출연하지 못했어요. 결국 1995년 53세의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로스가 죽은 지 3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이 그의 모습과 그림을 기억합니다. 유튜브에서도 그가 그림을 그리는 영상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 영상에서 로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할 수 있다고 믿으세요. 왜냐하면 정말로 할 수 있으니까요.”
by 유승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