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증시 엑소더스가 이어지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해제에 이어 탄핵 정국이 이어지며 해외 증시로의 이탈이 가속화하고 있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국내 투자자의 미국 주식 보유 규모는 지난 5일 1097억3200만달러(약 157조4500억원)로 사상 최대를 경신했다. 지난해 말(680억2300만달러)보다 61.3% 급증했다.
국내 증시에 대한 실망이 해외로 눈을 돌리게 했다. 올해 코스피지수는 작년 말 대비 11.1%, 코스닥지수는 27.6% 하락했다. 코스피지수는 2021년 6월 사상 최고치를 찍은 후 내리막길이다. 코스닥시장은 4년8개월 만에 최저 수준이다. 반면 미국 뉴욕증시의 3대 지수는 사상 최고치를 잇달아 경신하고 있다. S&P500지수는 올해 50번 넘게 신고가를 갈아치우며 27.7% 급등했다.
국내 증시의 이런 흐름은 1990년대 초반 자산 거품 붕괴 후 20년간 조정기를 겪은 ‘잃어버린 20년, 일본 증시’를 연상하게 한다. 요즘 한국 경제 여건은 당시 일본과 너무나 흡사하다. 일본 닛케이225지수는 1989년 12월 29일 최고가(38,915.87)를 찍은 뒤 저점을 낮춰가며 2008년 10월 27일 7162.90까지 곤두박질쳤다. 이 기간 지수는 5분의 1토막 났다. 이후에도 4년간 박스권을 횡보하다가 2012년 말 아베 신조 내각이 무제한 돈풀기에 나서며 상승 반전했다.
주식·부동산 버블이 터진 여파에다 생산가능인구 감소로 저성장이 고착화한 탓이다. 1995년 생산가능인구가 정점을 찍으면서 일본의 잠재성장률이 급락했다.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1990년 4%대에서 2012년 1.4%로 떨어졌다. 23년간 연평균 성장률은 1.1%에 그쳤다. 한국도 2016년 생산가능인구가 정점을 찍은 후 성장률이 추락하고 있다. 올해 2% 초반에 이어 내년과 후년에는 1%대 성장에 그칠 것이란 경고가 잇따른다.
정치 불안도 닮은꼴이다. 일본은 1990년 이후 2012년 아베 2차 내각 출범 때까지 총리가 15번이나 교체됐다. 평균 재임 기간은 1년 반도 안 됐다. 적극적인 정책 대응은커녕 일관성조차 유지할 수 없었다. 윤석열 정부 출범 후 한국도 거대 야당의 특검·탄핵 남발과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끊임없이 충돌했다. 예산안과 산업 지원 법안은 국회에서 난도질당했다. 설상가상으로 대통령 ‘탄핵 쇼크’까지 덮쳐 시장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이런 사이 기업은 경쟁력을 잃어갔다. 2000년대 들어 일본은 미국에 치이고 한국에 따라잡혔다. 요즘 우리가 딱 그 꼴이다. 인공지능(AI) 등 신기술 분야는 미국이 멀찌감치 달아났고 석유화학 등 기존 주력 산업에선 중국의 공습이 날로 거세지고 있다.
한국 증시는 이미 ‘잃어버린 20년’의 터널에 진입했을 수 있다. 그 수렁으로 점점 깊게 빠져들지, 벗어날지는 정치권과 정부의 대응에 달렸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고 증시 밸류업에 나서야 한다. 여야 탄핵 공방으로 마지막 골든타임마저 놓쳐버리는 건 아닌지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