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기간에 GDP의 25% 수준을 웃도는 막대한 확장적 정책 대응을 시행한 미국과 대조적으로 재정준칙에 충실했던 독일은 2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세계적 인플레이션을 초래한 미국의 방만한 통화 및 재정정책 대응에 비해 매우 절제된 정책 대응을 해온 독일 경제가 유럽 경제 중 가장 낮은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는 최근의 현실은 많은 시사점을 준다.
2008년 세계 경제 위기 때도 미국 부동산시장 거품 붕괴가 위기의 출발점이었고, 최근 글로벌 인플레 위기도 팬데믹 기간 중 미국의 과잉 정책 대응이 주요 원인이었다는 점에서 미국은 세계 경제 위기의 원흉으로 지목돼 왔다. 그랬던 미국이 결과적으로 세계 경제 회복 및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하는 미스터리는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첫째 원인으로는 미국 정책당국의 강력한 정책 시그널을 꼽을 수 있다. 미국의 민첩하고 적극적인 정책 대응 행보는 위기에 대응하는 복원력(resilience) 측면에서 과잉 대응이라는 비난까지 받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런 과한 움직임이 오늘날 미국 경제 경쟁력의 주요한 동력으로 재평가되고 있다. 경제의 운명을 결정하는 요인은 경제주체들의 심리적 믿음 체계인 만큼 민간 경제주체에 확고한 정책 방향과 정책 시그널을 보내는 미국 정책당국의 대응이 주효했다는 설명이다.
둘째는 경제 시스템의 제도적 유연성이 지목된다. 민간부문의 원활한 전략적 대응을 가능하게 한 미국의 경제 시스템이 경제 부활의 또 다른 비밀이라는 것이다. 주목할 점은 민간부문의 자율적 혁신을 최대한 보장하면서도 기초과학 및 산업 인프라에 미국 정부가 막대한 투자와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인터넷 기술부터 코로나19 백신 기술에 이르기까지 미국의 기술 패권을 가능하게 한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과 같은 미국 정부의 연구 지원 제도가 그 구체적인 사례다.
셋째로 미국 경제 고유 특성인 규모의 경제를 빼놓을 수 없다. 세계 최대 시장과 풍부한 부존자원은 새로운 기술 혁신과 경영전략 혁신의 시험장으로서 최고의 여건을 조성했다. 이에 더해, 민간 경제주체에 셰일오일 등 에너지개발 부문에서도 사유권을 보장한 정책이 생산성을 극대화한 비결이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미국 경제와 독일 경제의 상반된 모습이 주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익숙한 산업에 안주하고 안전한 길을 고집하는 것은 자신이 서 있는 기반을 갉아먹는 일에 불과하다. 점점 변화의 속도가 빨라지는 기술 혁신과 경제 환경 변화에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제도적 유연성을 갖추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런 노력과 움직임이 우리 경제의 사활을 결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