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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 만에 감소한 K팝 음반 수출…재정비의 시간이 왔다[김희경의 컬처 인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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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팝 시장은 오랜 시간 성장을 거듭해 왔다. K팝 음반 수출액은 이를 잘 보여주는 상징적인 지표였다. K팝 음반 수출액은 2015년 이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증가세를 보였다. 그런데 9년 만에 처음으로 감소세로 돌아섰다. 올 상반기 K팝 음반 수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2% 줄어 1억3032만 달러(약 1774억원)에 그쳤다. 국내 음악차트인 써클차트에 따르면 올 상반기 K팝 상위 400위권 내 앨범 판매량 역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4.9% 감소해 4760만 장을 기록했다.

파죽지세였던 K팝에 제동이 걸린 걸까. 물론 9년 동안 꾸준히 증가세를 보였던 것만으로 충분히 놀라운 일이다. 과열됐던 앨범 판매 경쟁으로 인한 거품이 꺼지고 있는 것이며 해외 투어 콘서트 매출은 증가하고 있어 긍정적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그럼에도 경각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K팝 음반 판매가 감소했을 뿐 아니라 K팝이 전 세계에 미치는 파급력 자체도 다소 줄어들고 있다. 앞만 보고 달려오며 외형 키우기에 집중했던 K팝 산업이 이젠 대대적인 재정비에 나서야 하지 않을까.
상술이 된 전략…높아진 팬덤의 피로도

최근 K팝 앨범 판매가 줄어든 이유는 뭘까. 표면적으로 가장 두드러진 원인으로는 방탄소년단(BTS), 블랙핑크와 같은 메가 IP(지식재산권)의 부재가 꼽힌다. K팝 확산의 1등 공신이었던 이들의 단체 활동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공백기이다 보니 K팝 역시 주춤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물론 대형 아티스트들의 단체 활동이 다시 시작되면 분위기가 되살아날 순 있다. 하지만 장기적 관점에서 산업 전체를 재정비하지 않으면 결코 장밋빛 미래만을 꿈꿀 수 없는 상황이다. 현재 이들의 뒤를 이을 메가 IP는 잘 보이지 않고 있다. 기존 방식만을 이어간다면 메가 IP의 탄생은 더 이상 이뤄질 수 없으며 나아가 K팝이 지속 확산되기도 어렵다.

여기서 K팝 성장의 핵심 동력을 다시 떠올려 봐야 한다. 가장 중요하게 작용한 것은 각 K팝 아티스트별로 형성된 ‘팬덤’이었다. 팬들은 직접 자신이 좋아하는 아티스트에 대해 입소문을 내는 주체이다. 이뿐 아니라 앨범을 적극 사들여 국내뿐 아니라 빌보드 등 해외 주요 차트에 오르는 데도 기여했다.

그런데 기획사마다 팬덤을 기반으로 외형 키우기에 집중하는 과정에서 폐단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초동 판매량’(음반 발매 후 첫 일주일 판매량)을 끌어올리기 위해 과도하게 앨범을 찍어내는 바람에 팬들의 피로감이 크게 늘어난 것이다. 초동 판매량은 팬덤의 규모, 결집력 등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수치다. 그러다보니 기획사들은 아티스트의 동일한 앨범이라 해도 여러 종류로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현재 한 아이돌 그룹당 동일 앨범 기준 10~20개 종류를 발매하는 경우가 많다. 팬들은 이를 어쩔 수 없이 구매하고 있다. 각 앨범 종류마다 자신이 좋아하는 멤버의 포토카드, 이벤트 응모권 등이 달리 들어가 있기 때문에 앨범을 여러 장 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앨범 밀어내기 역시 암암리에 이뤄져 왔다. 앨범 밀어내기는 중간 판매상이 신작 앨범 초동 물량을 대규모로 구매하면 기획사가 팬사인회 등으로 보상해 주는 방식을 뜻한다.

K팝의 과도한 앨범 판매 문제에 대해선 해외에서도 주목하고 있다. 미국 빌보드는 ‘아티스트들이 어느 때보다 많은 종류의 실물 음반을 내고 있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K팝 가수들의 사례를 언급하기도 했다. 빌보드는 “CD 변종으로 많은 K팝 아티스트들이 높은 ‘빌보드 200’ 차트에 진입할 수 있었다”며 “한국에서는 많은 팬이 CD 플레이어를 갖고 있지 있음에도 기획사들은 ‘복권 스타일’의 마케팅 전략과 굿즈가 담긴 패키지 CD를 발매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팬들의 피로감을 높이고 팬덤을 위축시키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K팝 데이터 분석 플랫폼인 케이팝 레이더가 지난 6월 18일~7월 1일 100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많은 K팝 팬들이 초동 판매 경쟁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설문조사는 K팝을 가볍게 즐기는 ‘라이트 팬덤’, 적극적으로 팬 활동을 하는 ‘코어 팬덤’으로 나눠져 진행됐다. ‘초동 경쟁이 지나치다고 느낀 적 있나’라는 질문에 라이트 팬덤의 63.3%, 코어 팬덤의 74.4%가 ‘그렇다’고 응답했다. 또한 라이트 팬덤의 62.5%, 코어 팬덤의 76.2%가 ‘기업이 초동을 높이기 위해 불공정한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앨범의 본래 목적은 음악을 듣는 것이다. 하지만 팬들은 그 목적과 무관하게 어쩔 수 없이 수십 장, 수백 장의 앨범을 구매하고 있다. 그리고 이 피로도가 최근의 K팝 앨범 판매량에 일부 반영된 것이다. 결국 이를 K팝 시장 전체로 확대해 생각해 보면 K팝 시장이 안고 있는 문제 자체를 발견할 수 있다. 음악이라는 본질 자체에 충실하기보다 지나치게 상업적 수단에만 몰두하고 있다. 갈수록 많은 아이돌 그룹이 나오면서 팬덤의 유효기간은 더욱 짧아지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 전 세계 팬들에게 음악으로 큰 울림을 주기보다 경제적 부담만 가중시킨다면 K팝 팬덤은 언제든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
K팝만이 하고픈 이야기를 되찾아야


K팝 시장에서 점차 독창성과 역동성을 발견하기 어려워진 것 역시 본질을 잃어버린 것이라 할 수 있다. K팝은 1990년대 이후 차별화된 독창성과 역동성을 기반으로 발전해 왔다. 서태지와 아이들을 시작으로 새로운 판이 열렸고 H.O.T, 젝스키스 등 아이돌 그룹의 등장으로 국내는 물론 해외에도 강력한 팬덤이 형성됐다. 이 과정에서 레거시(legacy·기존 관행을 답습하는 식의 과거 유산)는 찾아볼 수 없었다. 팝송, 힙합, 록 등 다양한 장르가 한데 섞여 다른 나라와 차별화된 참신하고 새로운 K팝 장르가 탄생하게 됐다. 그리고 여러 기획사가 발 빠르게 세분화된 글로벌 전략을 내세우고 파이 키우기에 뛰어들며 시장은 더욱 확대됐다.

2010년대 BTS의 등장은 K팝의 폭발적 확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BTS는 자신들의 음악을 통해 다양한 메시지를 팬들에게 전했다. 이를 통해 일본, 중국 등 아시아 시장에 머물렀던 K팝이 미국, 유럽, 중동 등 전 세계 곳곳에 전파됐다. K팝 자체가 글로벌 시장의 주요 문화 현상이 된 것이다.

하지만 최근엔 K팝 시장에서 독창성과 역동성을 느끼기 어렵다. 음악보다는 퍼포먼스가 중심이 되면서 아티스트별 음악적 개성은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팬들을 향해 전하고픈 명확한 메시지도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콘셉트부터 무대, 뮤직비디오까지도 어디선가 본 듯한 천편일률적인 경향을 보이고 있다. 아티스트의 실험적 무대를 독려하고 시장의 역동성을 만들어냈던 기획사들의 창조적 전략도 찾아보기 힘들다. 앨범 밀어내기를 하는 등 어느새 상술처럼 변질되고 있을 뿐.

“음악의 언어는 무한하다. 여기엔 모든 것이 들어있고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다.” 프랑스 소설가 장 발자크는 이렇게 말했다. 그의 얘기처럼 음악의 언어엔 어떤 장벽도 없으며 직관적으로 사람의 마음에 닿을 수 있다. K팝이 드라마, 영화보다 넓고 빠르게 확산될 수 있었던 비결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현재 K팝 음악이 전 세계 팬들의 마음에 직관적으로 닿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어느 때보다 매끄럽고 기술적으로 완벽한 노래들은 많다. 하지만 팬들의 가슴 속에서 일으키는 파장은 점점 작아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제 K팝 업계 관계자들은 잠깐 숨고르기를 하며 자문해 봐야 할 것 같다. K팝이 전 세계 팬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멜로디와 말은 무엇인가. 팬들이 K팝으로 듣고 싶은 음악과 메시지는 무엇일까. 더 많이, 더 깊이 팬들의 심장을 펄떡이게 하는 K팝과 아티스트의 탄생을 기다려 본다.

김희경 한국예술종합학교 겸임교수, 영화평론가 pressia@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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