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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 다음은 생물다양성…국내 기업 대응 시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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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생물다양성에 대한 기업들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 생태계가 훼손돼 더 이상 생태 시스템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면 원부자재 구매 비용, 최종 상품에 대한 소비자의 선호도 변화 등을 통해 기업의 재무적 성과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되기 때문이다.

[한경ESG] 정책 인사이트



“기후변화 다음은 생물다양성이다.” 최근 ESG나 환경 관련 세미나에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자주 듣는 말이다. ESG 전문가들은 기업들이 하루빨리 생물다양성 이슈에 대응할 준비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업의 생물다양성 인지도 확대

실제로 최근 생물다양성 관련 이니셔티브 가입이나 지지 선언에 참여하는 국내 기업이 빠르게 늘고 있다. 과거 기후 관련 재무정보공개 협의체(TCFD)와 과학 기반 감축목표 이니셔티브(SBTi), RE100 등 국내 기업들이 기후변화와 관련한 이니셔티브에 신중하게 참여한 것을 보면, 그 속도는 가히 놀라운 수준이다.

세계경제포럼(WEF)에 따르면, 전 세계 연간 국내총생산(GDP)의 절반 이상인 44조 달러가 자연에 의존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1970년 이후 포유류, 조류, 어류, 양서류, 파충류 개체수의 69%가 감소했고, 100만 종 이상 동식물이 인간 활동으로 인해 멸종위기에 처했다니 중요하면서도 시급히 개선해야 할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눈여겨볼 점은 WEF가 생물다양성뿐 아니라 자연에 대한 의존성을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기업이 생물다양성과 관련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핵심 키워드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우리가 사용하는 생물다양성이라는 용어에는 ‘생물종의 다양성’이라는 의미뿐 아니라 ‘생태 시스템’이라는 의미가 포함된다. 우리 사회와 경제는 생태 시스템의 다양한 서비스로 물과 식량, 원자재를 제공하는 공급 서비스, 수질, 대기질 정화, 자연재해 예방 등 조절 서비스 등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이러한 생태 시스템이 훼손되면 우리 사회와 경제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과거 10여 년 전에도 생물다양성이 크게 주목받은 적이 있다. 2010년 생물다양성협약(CBD)의 세부 이행 규칙에 해당하는 나고야 의정서가 체결되고 나서인데, 당시 우리 기업들도 앞다퉈 생물다양성 이슈 대응에 나선 바 있다.

2010년 나고야 의정서 채택을 계기로 많은 기업이 생물다양성이 향후 기업활동에 직접 영향을 미칠 규제가 될 것으로 예상해 선제적 대응에 나섰다. 하지만 실제 나고야 의정서는 생물종에 대한 지적재산권, 예컨대 생물종에서 나온 유전자원을 활용한 기업과 이를 보존한 국가 간 이익 공유를 핵심 사안으로 제약 산업 등 일부 업종에만 영향을 미쳤다. 이후 기업들도 나고야 의정서가 자사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다는 것을 인지했고, 자연스럽게 생물다양성에 대한 경제계의 관심도 줄어들었다.

금융기관이 주도한 생물다양성 대두

그렇다면 왜 지금 다시 생물다양성일까? 금융기관이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금융권은 생물다양성을 기후변화와 동일한 시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기후 리스크가 기업의 재무 상태에 영향을 미치고, 이는 결국 기업에 투자하거나 대출해준 금융기관에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생물다양성도 금융권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경제 시스템의 자연자본에 대한 의존도가 워낙 높기에, 생태계가 훼손돼 더 이상 생태 시스템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거나 이를 방지하기 위한 규제가 강화되면 원부자재 구매 비용, 최종 상품에 대한 소비자의 선호 변화 등을 통해 기업의 재무에 직접적 영향을 주게 된다.

최근 생물다양성 논의를 이끌고 있는 자연 관련 재무정보공개 협의체(TNFD)에도 금융권의 이러한 시각이 매우 잘 드러나 있다. TNFD에서 요구하는 공시 프레임워크는 금융기관이 주도해 만든 TCFD와 그 구조가 거의 동일하다.

TNFD는 단순히 기업이 환경보호를 얼마나 잘하느냐가 아니라 생물다양성을 포함한 자연자본이 기업의 미래 재무가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가 중요한 포인트다. 또 기업이 이를 제대로 관리할 준비가 되었는지 확인하기 위한 정보 공시를 요구한다.

먼저 자연자본에 대한 기업의 의존도와 상호 영향을 파악하고, 이를 관리하기 위한 지배구조 체계, 전략, 리스크 관리 체계 및 관리 지표와 목표 등에 대한 정보를 공시하도록 하고 있다. 공시 범위도 순수한 의미의 생물다양성(종다양성)뿐 아니라 기후변화, 수자원, 토지 및 해양 등 자연자본 전반에 걸친 정보를 공시하도록 요구한다.

하지만 대기, 수질, 토양 등에 대한 관리는 기업들이 기본적으로 실행하는 것들이다. 사회가 발전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환경 법규를 의도적으로 위반하거나 수익을 위해 환경을 무분별하게 훼손하는 기업을 찾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해외나 공급망으로 눈을 돌리면 사정이 많이 다르다.

공급망에서 자연 훼손 규제 강화

물론 우리 기업이 해외에 진출하면서 현지 환경규제를 직접적으로 위반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하지만 관리 수준이 국내 사업장이나 글로벌 스탠더드와 비교할 때 현저히 떨어진다는 비판에서는 자유롭지 못하다. 또 전체 공급망에서 일어나는 환경 훼손에 대해서는 여전히 관심조차 두지 않는 기업이 대부분이다.

우리 기업이 개선해야 할 지점이 바로 이것이다. 기업 가치사슬 전과정에서 자연자원에 대한 의존성과 상호 영향 및 그에 따른 리스크를 파악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하고, 공급망을 포함한 전과정에서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는 관리 체계를 도입 후 이를 공개해야 한다.

실제로 최근 공급망에서 자연 훼손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2023년 6월 EU 산림벌채 금지 규정(EUDR)이라는 산림 관련 공급망실사법을 도입했다. EUDR은 산림벌채를 통해 생산될 가능성이 높은 7가지 주요 품목(소고기, 코코아, 커피, 팜유, 대두, 목재, 고무)과 종이, 초콜릿, 가구 등을 원료로 사용한 상품을 EU 지역에 수출하려면 해당 제품이 산림벌채 없이 생산됐다는 것을 반드시 입증하도록 하고 있다.

특히 이 제품을 공급하거나 수입하는 업체는 실제 산림벌채가 없었다는 것을 실사를 통해 확인하도록 하며, 이를 위반한 기업에는 EU 내 연간 매출액의 최소 4% 이상 벌금을 부과하도록 하고 있다.

최근 국내에서도 정부, 산업계 및 전문가가 모여 ‘자연자본 공시 협의체’를 구성한다는 발표가 있었다. 생물다양성과 관련한 이러한 노력이 제대로 방향을 잡고 지속되기 위해서는 국내 기업이나 정부도 글로벌 환경정보공개 플랫폼인 탄소정보공개 프로젝트(CDP)를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CDP는 이미 TNFD와 유사한 구조의 ‘CDP Forest’ 프로그램을 갖추고 있으며, 향후 TNFD와의 일관성을 더욱 높여나갈 예정이다. 현재 국내에서는 CDP Forest 프로그램 참여 기업이 전무한 상황인데, 국내 기업도 CDP 참여를 통해 생물다양성 공시를 선제적으로 준비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CDP를 통해 공개된 해외 선진 사례를 적극적으로 벤치마킹해 사회 공헌 성격의 환경보호 활동뿐 아니라 투자자들이 요구하는 내부 리스크 관리 시스템 및 공급망 관리 체계 구축을 병행해야 할 것이다.


김태한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수석연구원

오늘의 신문 - 2024.09.13(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