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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 스위치 켜고 끄는 후성유전학에서 찾은 질병의 단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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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남궁석 SLMS 대표

후성유전학은 DNA 염기서열 변화 없이 유전자 발현이 조절되는 현상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유전학적 이해를 넘어 치료제로 개발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후성유전학의 연구 동향을 살펴봤다.
히스톤 메틸화 표적치료제의 작동 및 저항성 발생 기전
저널 / 네이처
제목 / Mechanisms of action and resistance in histone methylation-targeted therapy
많은 암 조직에서는 에피제네틱 변형에 의해서 유전자 발현이 변하고 이것이 암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다. 히스톤 H3의 27번째 라이신(리신)이 트리메틸화되는 변형인 H3K27me3은 암 조직에서는 암 억제 유전자의 프로모터 영역에 축적돼 암 억제 주연자의 발현을 억제해 암을 유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H3K27me3과 관련된 효소인 EZH1과 EZH2는 메틸전이효소로서 H3K27me3의 형성을 촉매하며 많은 암세포에서 EZH2의 과발현이 보고돼 왔다. EZH2를 선택적으로 저해하는 약물인 타제모스타트(상품명 타즈베릭)가 2020년 상피양육종(epithelioid sarcoma)을 대상으로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았다. 그러나 타제모스타트에 의해 EZH2가 억제되면 EZH1의 상호보완적인 작용에 의해 H3K27me3의 형성을 완벽히 억제하는 것이 어렵다는 한계가 있었다.

발레모스타트(Valemostat)는 다이이찌산쿄에서 개발된 최초의 EZH1·EZH2 이중억제제로서 EZH1과 EZH2를 동시에 억제할 수 있다. 좀 더 강력하고 지속적인 H3K27me3 형성 억제가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본 연구에서는 성인 T세포 백혈병(Adult T-Cell leukemia) 환자를 대상으로 실시된 첫 번째 인간 대상 임상 1상 결과를 분석했다. 200㎎의 발레모스타트를 투여받은 환자는 종양이 감소하고 장기간의 임상적 반응을 보였다. 이들 환자에서는 H3K27me3이 감소했고 전사 억제 유전자들의 발현이 증가했다.

환자들의 투약 전과 반응 시점에서의 에피게놈 재프로그래밍을 관찰한 결과 투약 전 종양세포에서는 과도하게 응축된 염색질 구조가 관찰됐으나 약물 투여 후에는 정상세포와 유사한 형태로 염색질 구조가 열린 양상을 보였다. 이런 결과는 발레모스타트에 의해서 실제로 에피게놈 재프로그래밍이 일어남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초기에 약물에 반응을 보인 상당수의 환자에게서 질환이 재발하는 문제가 발생했다. 연구진은 어떤 기전으로 발레모스타트에 내성을 갖게 되는지를 분석했다. 분석한 환자의 절반가량에서 표적 유전자인 EZH2와 EZH를 포함한 PRC2 복합체의 구성요소 유전자에서 돌연변이가 발견됐고, 이러한 돌연변이의 대부분은 약물 결합 부위에 근접한 아미노산에서 발견됐다. 즉 약물의 결합에 영향을 미치는 돌연변이에 의해서 내성을 획득하는 경우가 상당수라는 것이다.

PRC2 돌연변이가 관찰되지 않은 내성 환자에서는 DNA 탈메틸화효소 TET2의 유전자 결실이나 DNA 메틸기 전달효소인 DMT3A의 과발현이 나타났다. 이는 H3K27me3은 감소했지만 DNA의 과메틸화가 유도돼 암 억제 유전자 부위의 염색질이 재응축됐다는 의미다. 즉 DNA 탈메틸화제를 처리하면 발레모스타트의 내성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결론적으로 본 연구에서는 발레모스타트는 에피게놈 리프로그래밍을 유도해 암세포에서 발현이 억제됐던 유전자를 재활성화해 치료 효과를 유도하는 기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반면 높은 비율로 등장하는 내성 환자에서는 표적 유전자에서의 돌연변이 혹은 여타 유전자의 변형에 의해서 유도된 에피게놈 프로그래밍을 원상복구하려는 경향이 나타났다. 따라서 향후 연구에서는 히스톤 메틸화 표적치료제의 내성을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전략이 모색돼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암 특이적 인핸서 조절해 암의 표현형 다양성 결정
저널 / 네이처 제네틱스
제목 / MYC activity at enhancers drives prognostic transcriptional programs through an epigenetic switch
MYC는 대부분의 암에서 과발현돼 세포 증식을 촉진하는 것으로 알려진 종양 유전자다. 그간 MYC는 주로 프로모터 영역에 결합해 암 관련 유전자의 전사를 활성화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번 연구에서는 MYC가 인핸서 영역에 결합해 에피제네틱 변화를 유도함으로써 암종 특이적 유전자 발현을 조절한다는 새로운 기전을 제시했다.

연구진은 염색질 면역 침강-염기서열 분석(ChIP-seq)을 통해 MYC와 결합하는 인핸서가 암 유형에 따라 상이함을 발견했다. 특히 삼중음성유방암에서는 STAT3, FOXA1과 같은 전사인자가, 에스트로겐 수용체 양성 유방암에서는 에스트로겐 수용체가 MYC과 공동으로 인핸서에 결합해 MYC의 암 특이적 인핸서 점유를 이끌어낸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흥미롭게도 MYC에 의해 조절되는 인핸서 표적 유전자들은 암 유형별로 매우 달랐으며 인핸서 표적 유전자가 얼마나 발현되는지는 각 암종의 예후와 밀접한 연관성을 보였다. 반면 MYC가 프로모터에 결합해 조절하는 표적 유전자들은 암 유형에 관계없이 세포 증식 촉진 등 MYC의 고전적 기능과 연관돼 있었다. 이는 MYC의 암 특이적 기능이 주로 인핸서에서의 에피제네틱 조절에 의해 매개됨을 시사한다.

실제로 연구진은 MYC 저해제를 처리해 MYC의 인핸서 결합을 억제했을 때, 인핸서 부위의 H3K9 히스톤 탈메틸화와 아세틸화가 감소하고 이로 인해 인핸서 활성 인자인 BRD4의 결합이 줄어드는 것을 관찰했다. 이는 MYC가 GCN5 히스톤 아세틸화 효소를 인핸서로 모집함으로써 H3K9 아세틸화를 촉진하고, 이를 통해 BRD4를 포함한 전사 활성 인자들의 결합을 유도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편 MYC에 의한 인핸서 활성화는 인핸서RNA(eRNA)의 전사 증가와도 연관돼 있는데, 이는 MYC가 RNA 중합효소Ⅱ의 인핸서 모집을 직접 촉진함으로써 전사를 활성화시킨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결과는 MYC에 의한 인핸서 조절이 단순히 히스톤 변형뿐 아니라 더 나아가 eRNA 전사와 같은 에피제네틱 과정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시사한다.

결론적으로 이번 연구는 MYC가 암 특이적 전사인자들과의 협동을 통해 암 특이적 인핸서에 결합하고, 이를 통해 H3K9 히스톤 변형, eRNA 전사, 전사 활성 인자 모집 등 다양한 에피제네틱 변화를 유도함으로써 각 암종 고유의 발현 프로그램 및 생물학적 특성을 결정짓는다는 새로운 분자적 기전을 제시했다. 이는 MYC에 의한 암 특이적 에피제네틱 변화를 억제하기 위한 새로운 치료 전략으로서 BET 억제제나 GCN5 억제제의 가능성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히트-앤드-런 에피게놈 에디팅에 의한 유전자 사일런싱
저널 / 네이처
제목 / Durable and efficient gene silencing in vivo by hit-and-run epigenome editing
DNA의 서열을 변형시키지 않고 DNA 메틸화 혹은 히스톤 마크 등의 에피제네틱 마크만을 변형시켜 특정한 유전자의 발현을 억제시키는 ‘유전자 사일런싱’은 CRISPR 등의 게놈 에디팅에서 나오는 불가역적인 DNA 변형이라는 부작용을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치료법으로 주목받았다.

그러나 이전에 시도된 에피게놈 에디팅은 에피게놈 조절 유전자의 지속적인 발현을 위해 바이러스 벡터를 사용했기 때문에 벡터 삽입 등에 의한 돌연변이 유도 등의 위험성이 있었고, 지속적인 에피게놈 유전자의 발현에 의한 오프타깃 효과에 의한 부작용의 위험성이 있었다.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여러 가지 에피제네틱 조절 단백질을 동시에 발현해 표적 유전자에 대해서 특이적인 유전자 사일런싱을 얻는 방법이 개발됐다.

구체적으로 KRAB 전사억제인자, DNA 메틸트랜스퍼레이즈A(DNMT3A)의 촉매반응 도메인(cdDNMT3A), 이의 보조인자인 DNMT3L을 특정 DNA 서열에 결합하는 DNA 결합 도메인과 결합시킨 엔지니어링된 전사억제인자(ETR)를 이용해 유전자 사일런싱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저자들은 이러한 플랫폼이 고지혈증의 타깃 유전자인 PCSK9과 같은 유전자 발현을 사일런싱시켜 콜레스테롤 감소 효과를 얻을 수 있을지를 확인했다.

PCSK9에 대한 효과적인 에피게놈 사일런싱을 수행하기 위해 dCas9, TALE, ZFP 기반의 ETR 플랫폼을 이용해 세포주 수준에서 PCSK9의 유전자 사일런싱 효율을 조사했고, 이 결과 ZFP-ETR이 PCSK9의 유전자 사일런싱에 가장 효과적임을 확인했다. 이후 RNA-Seq, 홀지놈 메틸화 분석 등을 통해 이렇게 디자인된 ZFP-ETR이 PCSK9의 전사를 특이적으로 억제하고, 오프타깃 이펙트 역시 최소로 나타남을 확인했다.

이렇게 개발된 ZFP-ETR의 실험동물 수준에서의 효과를 관찰하기 위해 ZFP-ETR의 mRNA를 지질나노입자 형태로 제형화해 마우스에 주사하고 PCSK9 단백질 레벨이 대조군 대비 40% 수준으로 떨어졌으며, 이런 효과는 주사 후 330일이 지나도 계속 유지됐다.

흥미롭게도 부분 간 절제술을 시행하고 간세포가 재생되는 상황에서도 PCSK9 수치는 낮게 유지됐고 PCSK9 프로모터는 메틸화가 유지됐다. 이러한 결과는 간 재생 과정을 거쳐 증식된 간세포에서도 PCSK9 유전자의 사일런싱은 지속적으로 유지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ZFP-ETR의 복잡성을 줄이기 위해 3개의 별도 mRNA로 존재하던 ZFP-ETR을 최적화해 단일 mRNA로 만든 EvoETR(Evolved ETR)을 제작하고, 이 역시 효과적으로 작용함을 보여주었다.

결론적으로 본 연구에서는 생쥐 간에서 PCSK9 유전자를 에피제네틱으로 안정적으로 장기적으로 사일런싱시킬 수 있음을 최초로 입증했으며, 간 재생 과정에서도 이러한 사일런싱이 유지됨을 확인했다는 점에서도 의의가 크다. 이러한 연구 결과는 PCSK9 유전자의 발현을 억제해 혈중 콜레스테롤을 조절하는 유전자 치료요법에서 CRISPR-Cas9에 의한 유전자 에디팅 이외에도 에피게놈 에디팅 역시 대안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저자 소개>
남궁석
고려대 농화학과를 졸업한 뒤 동 대학원에서 생화학 전공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예일대와 펜실베이니아대에서 박사후연구원을 했다. 2013년부터 2017년까지 충북대 농업생명과학대 축산식품생명과학부 초빙교수로 재직했다. 지금은 Secret Lab of Mad Scientist(SLMS)라는 이름으로 과학 저술 및 과학 관련 컨설팅 활동을 하고 있다. <과학자가 되는 방법>, <암 정복 연대기>의 저자다.

**이 글은 바이오 전문 월간 매거진 <한경 BIO Insight> 2024년 4월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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