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퇴직하면서 1000만원을 더 주지 않으면 회사의 과거 회계 문제를 국세청에 제보하겠다고 공갈을 저지 근로자가 유죄 판결을 받았다.
서울북부지방법원은 지난달 14일 이 같이 판단하고 공갈죄 혐의로 기소된 피고 A씨의 재판에서 유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순순히 나갈 생각이 없던 A씨는 2020년 6월 대표이사 사무실을 찾아가 대표이사 B씨에게 “정상적인 퇴직금 외에 3개월분의 급여를 추가로 주지 않으면 인수인계를 제대로 하지 않고, 국세청에 이 회사의 과거 '가지급금' 문제를 제보해 세무조사를 받게 하겠다”라고 말했다. 특히 자신이 업무를 하던 기간도 아니었던 10년전 문제까지 들먹였다.
자신이 맡았던 업무가 경리 업무로 과거 회사의 회계 관련 내역을 들여다 볼 수 있던 점을 이용한 것이다.
이에 B 대표는 겁을 먹고 정상적인 퇴직금 580만원 외에 3개월 분 급여에 해당하는 1000만원을 추가 지급했다. 결국 A는 '공갈' 혐의로 기소됐다.
재판 과정에서 A는 "회사의 세무기장에 관한 문제점, 인수인계 여부에 대해 얘기했을 뿐, 위로금을 주지 않으면 세무조사 받게 하겠다고 말한 사실이 없다"며 공갈 사실 자체를 부정했다. 또 "B로부터 받은 1000만 원은 비밀유지각서 작성 및 퇴직하면서 인수인계를 성실하게 해줄 것에 대한 대가에 불과하다"고도 주장했다.
법원은 "오랜 기간 동안 일기를 꾸준히 써온 것으로 보일 뿐만 아니라, 그 내용 역시 구체적이므로, 피해자가 작성한 일기에 대한 신빙성을 쉽게 배척할 수 없다"며 A의 일기가 B의 공갈의 증거가 된다고 인정했다.
이어 1000만원을 지급한게 비밀유지각서 등의 대가 등이 아니라고도 판단했다. 법원은 "A가 근무한 기간이 약 1년 8개월에 불과하고, 퇴사 시 받을 퇴직금이 약 570만 원에 불과하므로, 피해자가 지급한 1000만 원은 A의 주장과 같이 인수인계 또는 비밀유지각서 작성에 대한 대가라고 보기에는 다소 과다해 보인다"고 꼬집었다.
특히 비밀유지각서라면 동종업체에서 일하고 있는 것도 납득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기업 운영 현장에서 이런 일은 종종 벌어진다.
실제로 지난 2020년에는 건설 회사를 퇴사하는 직원 2명이 “회사의 건설기술자 면허 대여 행태를 관련 기관에 신고하여 행정제재와 처벌을 받게 하겠다”는 취지의 협박해 사업주를 3억2000만 원을 갈취했다가 기소된 바 있다.
김상민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기업 내부의 사정을 잘 아는 퇴직자가 사소한 잘못을 빌미로 부당한 대가를 요구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말했다. 이어 "가해자들의 요구에 따라 퇴직 위로금, 비밀유지각서 등으로 꾸며서 돈을 지급하는 경우가 있지만, 갈취 의도가 뚜렷하고 해당 금액이 지나치게 큰 경우에는 충분히 공갈죄 등의 협의를 입증하는 게 가능하다"며 "녹취 등을 통해 가해자의 협박 내용 등에 대한 증거를 남겨 놓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