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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 검증으로 신뢰 확보…SBTi 승인 기업 급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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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제로 목표에 대한 철저한 검증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늘고 있다. 직간접 온실가스 배출을 포함한 외부 총배출량을 모두 검증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강하다. 넷제로 목표에 대한 과학적 검증을 통해 이해관계자의 신뢰를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한경ESG] 2024 ESG 철저 예측 - 넷제로 경로 검증



최근 넷제로(net-zero) 목표를 설정하는 기업이 급속도로 늘고 있다. 기후변화는 환경뿐 아니라 금융 리스크라는 인식이 빠르게 확산하고 있어서다. 2015년 기후변화 관련 재무정보공개 협의체(TCFD) 설립을 계기로 기후변화가 금융 안정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하면서 금융기관의 기후 리스크 관리가 주목받기 시작했다.

전 세계 주요 금융기관은 리스크 관리 시스템에 기후변화를 반영했고, 금융기관의 투자 또는 대출 대상이 되는 기업에도 기후변화 대응 전략 수립과 이행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온실가스배출량 감축목표를 설정하는 기업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탄소정보공개 프로젝트(CDP)에 따르면, 국내 기업도 2020년 80곳에서 2022년 180곳으로 2배 이상 늘었다. 온실가스 감축목표의 수립 자체는 더 이상 새롭지 않다. 이제 관심은 누가 어떤 목표를 수립했느냐, 그리고 이를 제대로 이행하느냐로 넘어가고 있다.

기후 과학에 근거한 감축목표·경로 요구

이때 중요한 것이 넷제로 목표다. 이해관계자들은 기업에 단순한 온실가스 감축목표가 아니라 1.5℃ 목표에 부합한 넷제로 목표를 요구하고 있다. 넷제로 목표는 이론적으로는 간단해 보이지만, 기업에 적용하거나 외부에서 어떤 기업이 더 높은 수준의 목표를 수립했는지 비교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예를 들어, 같은 섹터 내 시가총액이 비슷한 두 기업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두 기업은 판매 상품 종류도 유사하고, 매출액 대비 배출량도 비슷한 수준이다. A 기업은 단기 목표로 2030년까지 스코프 1·2 배출량 40% 감축, 넷제로 목표의 경우 2040년 스코프 1~3 배출량 70% 감축 및 상쇄 30%를 목표로 세웠다. 스코프 3의 경우 절대량이 아닌 원단위 감축 목표를 설정했다.

B 기업은 2050년 스코프 1·2 95% 감축, 상쇄 5%로 목표를 수립했으나 스코프 3는 포함하지 않았다. 두 기업의 목표는 언뜻 둘 다 배출량을 충분히 감축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기간, 배출량 범위 및 감축량과 유형 모두 다르다. 두 기업의 목표는 적절한 걸까? 또 어느 것이 더 목표 수준이 높다고 할 수 있을까? 이를 쉽게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현재 넷제로투자자연합(NZAOA), 레이스투제로(Race to Zero) 캠페인 등 다양한 이니셔티브에서 기업이나 금융기관의 넷제로 목표에 대한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그중 대표적인 곳이 과학 기반 감축목표 이니셔티브(SBTi)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SBTi의 넷제로 목표 기준은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에서 제시하는 기후 과학에 근거한다. IPCC는 1.5℃ 달성을 위해서는 2050년 이전 넷제로뿐 아니라 2030년까지 43%의 배출량을 감축해야 한다고 밝혔다. 온실가스는 대기 중에서 바로 분해되지 않고 누적되며 지속적으로 온실효과를 일으켜 단기적으로 빠르게 감축하는 것이 관건이기 때문이다. 이에 SBTi에서는 2050년 이전에 넷제로를 달성하겠다는 장기 목표와 함께 2030년 전후를 목표 연도로 하는 단기(중기) 목표 수립을 요구한다.

감축목표에 포함되는 배출량 범위는 스코프 1·2뿐 아니라 스코프 3 배출량도 포함하도록 하고 있다. 여기서 스코프 3란 기업 가치사슬 내 온실가스배출량을 뜻한다. 공급망 배출량, 판매된 제품의 사용으로 인한 배출량 등이 포함된다. 스코프 3 배출량은 스코프 1보다 약 14배 큰 것으로 나타나 감축 노력이 필수적이다.

감축 수준의 경우, 잠재성장률 차이나 감축 잠재량 등을 고려해 섹터별로 다른 경로를 적용하도록 하는데, 평균적으로 연간 4% 이상 감축을 요구한다. 기업의 감축목표는 일반적으로 기준 연도 총배출량 대비 목표 연도 배출량을 감축하는 절대량 감축 목표와 매출액 또는 생산량을 기준 삼아 일정 액수(또는 개수 등) 대비 배출량을 줄이는 원단위 감축 목표 2가지가 있다. 원단위 목표는 섹터에 따라 허용하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한다. 감축량은 목표 유형에 따라 기준 연도 대비 a% 감축(절대량) 또는 기준 연도 대비 매출액 당 c% 감축(원단위) 등으로 나타난다. 마지막으로 상쇄의 경우 전체 배출량의 5~10% 이내로 제한한다.

SBTi 목표 승인 기업은 2020년 495개에서 2023년 12월 기준 4205개로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지역별로는 유럽이 2210개, 미국이 455개로 과반 이상을 차지한다. 하지만 일본 749개, 중국 128개, 대만 58개로 아시아 기업도 빠르게 늘고 있다. 국내 기업은 아직 26개로, 경제 규모에 비해서는 적은 편이다.

목표 설정에서 이행 점검으로

이렇듯 많은 기업이 SBTi에 목표를 제출하는 이유는 ‘그린워싱’과 ‘비교가능성’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최근 환경 NGO를 중심으로 특정 기업이 발표한 목표는 그린워싱이 아니냐는 문제를 제기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스코프 3 배출량을 제외한 넷제로 목표를 발표한 경우가 대표적이다. 내부에서 격론을 거치면서 힘들게 수립한 목표가 그린워싱이라며 비난당하기보다는, 이행 수준이 높지만 글로벌 스탠더드를 따라가는 것이 대외 이해관계자의 신뢰를 확보하는 데 유리하다고 판단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아울러 투자자를 비롯한 외부 이해관계자의 요구도 큰 몫을 한 것으로 생각된다. 온실가스에 대한 전문 지식이 부족한 투자자나 평가사가 다양한 섹터의 기업이 수립한 목표를 하나하나 살펴보고 어떤 목표가 적절한지 구분하기는 쉽지 않다. 이때 손쉽게 활용할 수 있는 것이 SBTi 같은 글로벌 기준이다.

SBTi는 목표 승인 기준을 모두 공개하고 있으며, 승인한 목표에 대해 외부에서 이해할 수 있는 간단한 문장으로 공개한다. 목표 검증 과정에서 기업은 온실가스배출량 산정 방법론과 감축 전략 등에 대해 제출하고, 목표가 기준에 맞지 않으면 수정하도록 한다. 검증 과정을 거친 목표는 모두 감축 수준이 1.5℃ 경로에 부합하게 된다.

관심은 자연스럽게 이들 기업이 실제 목표를 제대로 이행하고 있는지로 옮겨가고 있다. SBTi는 목표 승인을 받으면 CDP나 지속가능경영 보고서, 홈페이지 등 외부에서 확인할 수 있는 채널을 통해 매년 배출량을 공개하도록 요구하며, 이를 바탕으로 모니터링 보고서와 기업별 진척도를 확인할 수 있는 달성 현황판(progress dashboard)을 공개한다. 향후 목표와 성과 추적 방법 고도화, 성과에 대한 평가 지표도 개발할 예정이다.

넷제로 목표를 수립할지, 어떤 기준으로 수립할지 그리고 그 목표를 SBTi 같은 글로벌 이니셔티브를 통해 승인받을지 여부는 기업이 결정할 사항이다. 하지만 그 의사결정 과정에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기업의 온실가스배출량 관리를 위한 의지와 역량이 기업의 미래 경쟁력을 판단하는 핵심 지표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저탄소 사회에서 온실가스는 곧 ‘돈’이라는 인식이 정착되고 있기 때문이다.

김태한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수석연구원·김민아 연구원

오늘의 신문 - 2024.08.23(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