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는 집주인 A씨가 세입자 B씨를 상대로 제기한 건물 인도 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단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돌려보냈다.
A씨는 2019년 1월 B씨와 서울 서초구에 있는 아파트에 대해 보증금 6억3000만원에 2년짜리 전세 계약을 맺었다. B씨는 계약 만료일을 약 3개월 앞둔 2020년 12월 “계약갱신을 청구한다”는 내용증명을 보냈다. 하지만 A씨는 “계약 만료 후 아파트에 실거주할 계획”이라며 거절했다. 이후 B씨가 아파트 인도를 거부하자 A씨는 소송을 제기했다.
주택임대차보호법 제6조의 3 제1항은 ‘임대인은 임차인이 임대차 기간이 끝나기 6개월 전부터 2개월 전까지의 기간에 임대차계약 갱신을 요구할 경우 정당한 사유 없이 거절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만 이 조문 1항의 8호는 ‘임대인(직계 존비속 포함)이 주택에 실제 거주하려는 경우’에 계약갱신 요구를 거절할 수 있다고 정한다.
A씨는 “노부모를 거주하게 할 계획이라 주택임대차보호법이 정한 갱신 거절 사유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B씨는 “A씨가 처음에는 남편과 자녀가 들어와서 산다고 했다가 소를 제기한 뒤에는 노부모 실거주로 말을 바꿨다”고 반박했다.
1·2심 법원은 A씨가 실거주 주체를 변경했지만 적법하게 갱신 거절권을 행사했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임대인과 그 가족이 주택에 실제 거주하려 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책임은 임대인에게 있다”며 “A씨는 실제 거주자에 관해 말을 바꿨음에도 합리적인 설명을 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계약갱신권 갈등 교통정리 됐지만…"임차인 권리 지나치게 보호" 지적
26일 주택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에 따르면 2019년 49건이던 계약갱신·종료 관련 분쟁 접수는 제도가 시행된 2020년 154건, 이듬해 307건으로 급증했다.
계약갱신청구권을 둘러싼 임대차 분쟁은 대부분 ‘실거주 목적’ 등 주택임대차보호법에서 허용한 거절 사유를 놓고 집주인과 세입자 간 갈등을 빚은 데서 비롯됐다. 이 제도가 시행된 이후 법원에서조차 집주인의 ‘실거주 의사 입증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두고 엇갈린 판단이 나왔을 정도로 혼란이 이어졌다.
그러던 차에 대법원이 “임대인에게 입증 책임이 있다”고 판단하면서 새 기준이 마련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대법원은 “‘실제 거주하려는 의사’의 존재는 임대인이 단순히 그런 의사를 표명했다고 해 곧바로 인정될 수는 없다”며 “통상적으로 수긍할 수 있을 정도의 사정이 인정돼야 한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실거주 의사’ 인정 기준도 새롭게 제시했다. 대법원은 판결 과정에서 “임대인의 주거 상황, 사회적 환경, 임대인이 실제 거주하려는 의사를 가지게 된 경위, 임대차계약 갱신 요구 거절 전후 임대인의 사정, 거주 의사와 배치·모순되는 언동의 유무, 이런 언동으로 인해 임차인의 신뢰가 훼손될 여지가 있는지 등 여러 사정을 종합해 판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원심은 임대인의 ‘실제 거주 의사’가 진정하다는 여러 사정을 충분히 심리하지 않은 채 임대인의 갱신 요구 거절이 적합하다고 잘못 판단했다”고 결론 내렸다.
대법원 관계자는 “실거주 증명 책임의 소재가 임대인에게 있다는 점과 임대인에게 실거주 의사가 있는지 판단하는 방법에 대한 법리를 최초로 제시한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대법원 판결로 전세 가격을 올려 받기 위한 ‘허위 실거주 목적’의 갱신청구 거절이 어려워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다만 일각에선 과도한 임차인 보호라는 지적도 있다.
민경진 기자 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