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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재집권 시나리오...첫 타깃은 퇴직연금 ESG 투자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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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미국 대선에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출마에 나서며 재집권 가능성이 열렸다. 전 세계에서 ESG 관련 시장 규모가 커지고 법제화 흐름이 강화되는 가운데, ESG와 기후변화를 부정하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몰고올 변화가 우려된다. 퇴직연금의 ESG 투자 금지를 비롯해 '아젠다 47'에 담긴 트럼프 2기의 ESG 공약을 살펴본다

[한경ESG] 정책 인사이트 - 트럼프의 ESG 공약 ①



새해가 밝았다. 1월은 다가올 한 해를 전망하는 시기다. 걱정보다는 희망을 마음에 담아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업무를 맡고 있거나 ESG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 2024년은 희망보다는 불안감이 더 크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 이유는 바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전 대통령 때문이다.

벌써 7년 전 일이다. 많은 이가 버라이어티쇼 같은 대선 과정을 지켜보며 ‘설마 저런 사람이 공화당 대선후보가 되겠어?’, ‘설마 저런 사람이 세계 최강대국 미국의 대통령이 되겠어?’ 하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트럼프가 이를 현실로 만들었다. 수많은 언론의 예측과 여론조사 결과를 뒤집으며 제45대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대통령이 된 후에도 미국 대통령으로서 이전에 경험 혹은 상상도 해보지 못한 발언과 정책으로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그리고 4년 후, 트럼프는 조 바이든 현 대통령에게 패해 연임에 실패했다. 트럼프는 선거 결과를 부정했고,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미국 의회의사당에 난입해 폭력을 휘둘렀다. 의회 폭동, 선거 결과 뒤집기 시도 등 91개 혐의로 4건이 기소됐다. 화려했던 등장만큼 떠들썩한 퇴장이었다.

트럼프 1기 때보다 커진 ESG 투자 시장

지난 대선 패배 이후 다시 돌아오겠다는 트럼프의 주장과 달리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가 다시는 미국 정치 무대에 오르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트럼프의 상상이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오는 11월 5일에 열릴 미국 대선 가상 대결에서 트럼프가 이긴다는 결과가 나타난 것이다.

이제 ‘트럼프가 재집권한다면’을 전제로 그의 ESG 정책과 공약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 트럼프 1기 정책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Anything But Obama(ABO)’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취임 후 전임 오바마 행정부의 정책 대부분을 뒤집었다. 트럼프는 ESG도, 기후변화도 모두 부정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실제 트럼프 1기 행정부가 ESG 전반에 미친 영향은 그리 크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가장 큰 이유는 트럼프가 집권한 2017년에는 그가 뭔가를 크게 뒤집을 만큼 ESG가 활발하지도, 관련 정책이나 제도가 많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면서 기후변화, 인권 등 환경과 사회 이슈에 대한 시민의 관심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팬데믹 극복을 위해 대규모로 공급된 자금의 상당 부분은 ESG 펀드와 관련 산업으로 흘러들었다. 글로벌지속가능투자연합(GSIA)은 2020년 전 세계 ESG 투자 자산을 2016년 22조3830억 달러 대비 54% 늘어난 35조3010억 달러로 집계했다. 미국의 경우 전 세계 평균보다 높은 성장률을 보이며, 2020년 기준 ESG 투자 규모가 17조 달러로 트럼프 집권 이전 대비 2배가량(96%) 늘어난 것으로 추산했다.

ESG 관련 법이나 제도도 강화됐다. 전 세계적으로 기후변화와 ESG 관련 기업 및 금융 공시의 의무화, 녹색 분류체계, 녹색 채권표준, 공급망 지속가능성, 그린워싱제도 등이 동시다발적으로 도입되고 있으며, 저탄소·친환경 제품에 대한 보조금도 강화됐다. 미국에서도 기후 공시 의무화, 펀드 이름법 규정,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통한 전기차·재생에너지 보조금 등이 도입됐거나 추진되고 있다.

트럼프의 집권 플랜 어젠다 47

트럼프 전 대통령은 차기 대선 예비 공약을 ‘어젠다 47’이라는 이름으로 발표했다. 어젠다 47에는 퇴직연금의 ESG 투자 금지부터 에너지, 기후변화, 성소수자, 중국의 인권 이슈 등 ESG와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공약이 다수 포함된다. 트럼프의 예비 공약을 통해 만약 트럼프가 재집권한다면 ESG와 관련해 어떤 변화를 추진할지 가늠해볼 수 있다.

어젠다 47에서 가장 명시적으로 ESG를 언급한 공약은 ‘ESG 투자’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급진 좌파의 ESG 투자로부터 미국 국민을 보호하겠다”고 주장한다. 대통령 취임 첫날, 행정명령을 통해 퇴직연금(401K)의 환경·사회·지배구조를 고려한 투자를 금지하고, 추후 입법을 통해 이를 영구적으로 막겠다고 밝혔다.

미국인에게 퇴직연금은 매우 중요하다. 미국은 전체 인구의 약 40%가 그달의 월급을 받지 못하면 생활을 이어가지 못할 정도로 저축률이 낮은 국가다. 공적연금 보장률 또한 낮아 미국인에게 퇴직연금은 노후를 보장하는 핵심 수단으로 인식된다. 그중에서도 고용주가 적립금의 일부를 매칭으로 지원해주고, 가입자가 직접 펀드에 투자할 수 있는 401(K) 퇴직연금제도가 최근 큰 관심을 받고 있다. 401(K)를 포함한 미국의 확정기여형(DC) 퇴직연금 규모는 2022년 기준 10조 달러로 미국 전체 주식 및 채권 시장의 10%에 이르는 수준이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로 꼽히는 블랙록과 뱅가드의 성장 배경도 퇴직연금펀드 운용에 있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퇴직연금 운용사의 ESG 요소 반영 금지

퇴직연금(401K)펀드 운용사가 ESG를 고려할 수 있게 하느냐, 그렇지 않느냐 여부가 중요한 이유다. 실제로 지난해 3월,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 후 처음으로 거부권을 행사한 법안도 ‘퇴직연금의 ESG 투자 금지 결의안’일 정도로 미국에서는 매우 중요한 이슈다. 개인 은퇴 계좌(IRA)를 제외한 미국의 퇴직연금제도는 근로자퇴직연금보장법(ERISA)에 근거해 운영된다. 미국에서 401(K) 퇴직연금의 ESG 이슈가 논란이 될 때는 대부분 ERISA에 있는 수탁자책무, 즉 퇴직연금 펀드 운용사가 가입자에게 가지는 책무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와 관련된다. ERISA에는 연금 운용사가 가입자의 재무적 이익을 극대화하도록 하는 의무 사항을 두는데, ESG가 재무적 이익에 부합하느냐에 대한 해석이 논쟁의 핵심이다.

트럼프는 2019년 퇴직연금의 ESG 반영을 어렵게 하도록 하는 행정명령을 내렸고, 해석 권한을 가진 노동부는 2020년 수탁자책무를 매우 좁게 해석하는 규정을 발표했다. 2021년 5월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다시 퇴직연금을 포함해 연방정부가 권한을 가진 모든 업무에 기후 리스크를 반영하라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노동부는 2022년 퇴직연금 운용사가 기후 리스크 및 ESG 요소를 고려하도록 하는 ERISA 해석 규정을 도입했다. 이에 공화당은 노동부의 해석 규정을 무효화하기 위한 결의안을 발의했고, 결의안은 하원과 상원을 통과했지만 결국 바이든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일단락되었다.

트럼프가 어젠다 47을 통해 밝힌 공약은 우선 취임 후 곧바로 노동부의 해석 규정을 변경해 퇴직연금 운용사의 ESG 요소 반영을 금지하고, 궁극적으로는 ERISA의 개정 또는 새로운 법안으로 향후 있을지 모를 행정명령을 통한 개정을 원칙적으로 막겠다는 의미다. 과연 트럼프의 이러한 시도가 현실화될 수 있을까. 만약 현실화된다면 그 영향은 어느 정도일까.

김태한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수석연구원

오늘의 신문 - 2024.08.23(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