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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살 아파트, 사실 기둥은 멀쩡하다고? [집코노미 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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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코노미 유튜브 채널에서 진행된 라이브를 옮긴 글입니다.

▶전형진 기자
부패가 아니라 무능이어서 문제입니다. 설계도를 읽을 줄 모르고, 철근이 빠진 줄도 몰랐다던 '순살 아파트' 얘기입니다. 그런데 도대체 어디가 어떻게 문제라는 건지 뉴스를 봐도 쉽사리 이해되지 않습니다. 무량판은 뭐고, 전단보강근은 또 무엇인지, 그냥 철근과는 또 다른 것인지 말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순살 아파트의 문제를 이해하기 쉽게 정리해봤습니다.


검단 아파트 붕괴사고 때부터 뉴스에서 이런 그래픽 많이 보셨을 겁니다. 왼쪽의 벽식 구조가 아파트에 많이 쓰이는 공법이죠. 내력벽이 하중을 견디는 구조입니다. 가운데의 기둥식은 기둥과 보가 하중을 버티죠.

오른쪽이 무량판인데요. 무량(無梁)이란 말 그대로 기둥식 구조에서 대들보[梁]를 빼버린 것입니다. 보가 빠진 만큼 건축물의 한 층당 차지하는 높이가 줄어들고, 그래서 지하주차장 등의 설계에 많이 쓰입니다. 똑같은 깊이를 파도 층을 늘릴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이렇게 보자니 여전히 어렵죠.


왼쪽은 우리가 명절마다 꺼내는 차례상입니다. 일반적인 차례상의 바닥 아래엔 두툼한 나무가 덧대져 있죠. 접이식 다리가 평소엔 숨겨져 있는 부분 말입니다. 이게 하중을 분산시키는 보 역할을 하기 때문에 상다리가 부러지게 차려도 부러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차례상은 기둥식 건물인 셈이죠.

오른쪽은 자취할 때 한두 번쯤 써보셨을 간이식탁이죠. 무량판 구조는 이런 간이식탁에 가깝습니다. 하중을 나눠주는 보 없이 기둥(상다리) 혼자 아슬아슬하게 무게를 버티는 것이죠.


검단 아파트와 이번 LH 아파트에서 빠져 문제가 된 전단보강근은 상다리의 접히는 부분, 그러니까 힌지와 그 나사에 해당합니다. 기둥과 상판을 연결해주는 철근이라는 거죠. 힌지 나사가 덜 조여진 상태에서 간이식탁을 밟고 올라가 전구를 간다면 어떻게 될까요. 식탁은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무너질 겁니다. 전구도 나가고 이빨도 나가게 되겠죠.

그런데 여기까지 보자니 이상한 점도 있으실 겁니다. 순살 아파트라는 멸칭은 기둥의 철근을 모두 빼먹었다는 데서 비롯된 것인데, 저는 상다리(기둥)의 문제가 아니라 힌지의 문제라고 설명하고 있으니까요.

네, 사실 순살 아파트들의 기둥엔 문제가 없습니다. 주근(柱根), 그러니까 기둥에 넣는 철근을 빼먹은 게 아니니까요. 모두 기둥과 상판을 이어주는 전단보강근이 빠져 일어난 문제입니다. 건설사들을 옹호하려는 게 아니라 객관적 사실이 그렇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순살 아파트란 표현은 틀린 것이죠. 다만 어렵게 무량판 구조를 설명하는 것보다 대중을 이해시키기 쉽다는 점에서 순살이란 표현이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어떤 철근이든 빠지면 안 된다는 점은 같습니다. 서두에 말씀드린 대로 철근을 넣어야 한다는 것도 몰랐고(설계), 어디에 넣어야 하는지도 알지 못했고(시공), 이 같은 부실이 발생했다는 것도 파악하지 못한 게(감리) 문제입니다. 철근을 빼먹으려고 빼먹은 게 빠졌다는 사실도 몰랐다는 것이죠. 부패한 게 아니라 무능했다는 게 건설강국의 씁쓸한 민낯이었습니다.

기획·진행 전형진 기자 withmold@hankyung.com
촬영 조희재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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