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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다이스에 볕들날 드디어 오나…카지노·호텔 방문객 급증 [안재광의 대기만성'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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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한한령·사드보복·노재팬·코로나
연이은 악재에 카지노·호텔 타격
올 들어 방문객 늘어나며 회복세

사람들은 뭔가 잘 안 될때 핑계를 많이 대죠. 약속시간 늦으면, 갑자기 그날 따라 차가 많이 막혀서, 성적이 떨어지면 하필이면 시험볼 때 배탈이 나서. 기업도 그래요. 뭔가 잘 안 되면 핑계거리를 찾곤 하죠. 사업 잘 하고 있었는데 하필이면 중국 기업이 치고 들어와가지고 힘들어 졌다든지, 정부가 허가를 갑자기 안 내줘서 어쩔수 없이 못했다. 대부분은 맞는 말이긴 한데, 어째 핑계처럼 들릴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회사를 보면 아 이건 진짜 핑계가 아니고 어쩔수 없었겠다. 이런 느낌이 듭니다. 파라다이스란 회사인데요. 인천공항 옆에 엄청 멋지게 호텔 지어놓은 그 파라다이스 입니다. 파라다이스를 호텔로만 알고 있는 분들도 많은데, 사실 이 회사는 카지노가 주력 사업이죠. 정확히는 외국인 카지노. 그런데, 지난 몇 년 간 '아,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정말 힘든 시간을 겪습니다. 안 망하고 버틴 게 다행이다 싶을 정도로요. 이번 주제는 '죽다, 사는' 파라다이스 입니다.

파라다이스는 '카지노의 대부'로 불렸던 전낙원 회장이 1968년에 세운 회삽니다. 이 분 이름 '낙원'이 파라다이스란 뜻이죠. 1968년은 서울 광장동의 워커힐 호텔에 서울에서 처음 카지노가 생겼을 때인데, 이 카지노 사업권을 따낸 게 바로 전낙원 회장이었어요.


전낙원 회장은 그 이전까지는 인천 오림포스호텔의 유화열 회장 밑에 있다가, 이 때 독립해서 나왔습니다. 오림포스호텔은 1967년에 국내 첫 외국인 전용 카지노가 생긴 곳입니다. 그러니까 전낙원 회장은 한국에 카지노 산업을 태동시킨 인물 입니다. 왜 카지노의 대부라고 하는 지 아시겠죠.

전낙원 회장은 워커힐 호텔 카지노 사업을 시작한 이후에 돈을 말 그대로 긁어 모읍니다. '조 단위' 재산이 있다는 말이 조선 팔도에 파다했어요. 1974년에 케냐까지 가서 당시 아프리카 최고급 호텔을 지었는데, 한국에서 잘 나간다는 정치인이나 기업인은 대부분 전낙원 회장의 초청을 받아서 머물렀다고 해요. 전낙원 회장은 당시에 한국에서 최고의 유명인사, 셀럽 같은 분이었어요. 전낙원 회장을 통하면 뭐든 된다, 모르는 사람이 없다 이런 평판을 얻습니다. 오죽하면 '밤의 대통령'이란 말도 있었어요.

디즈니 플러스의 드리마 '카지노'에서 최민식이 연기한 차무식이란 인물이 있는데, 아, 이 드라마 저는 재밌게 봤습니다. 현실판 차무식 같은 느낌. 이렇게 말하니까 좀 무섭네요.

전낙원 회장은 문화, 예술 이런 분야 사람들과도 잘 알았어요. 전낙원 회장의 누님이 수필가 전숙희 작가였거든요. 전숙희 작가는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회장을 지내면서 한국 문인을 대표하는 자리에도 있었는데요. 박정희 대통령의 부인 육영수 여사와도 매우 가까웠던 것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파라다이스가 계원 예중·예고 같은 학교를 둔 계원학원을 1979년 설립한 것도 이런 영향이 있었어요.

이렇게 잘 나갔던 전낙원 회장이 위기를 맞은 건 문민정부 들어선 직후인 1993년입니다. 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한 문민정부는 슬롯머신 업계의 대부 정덕진 씨를 구속했는데요. 당시 구속의 이유가 정치인들, 검찰, 경찰, 심지어 조폭까지 돈으로 관리한 것이 드러나서였어요. 이 사건이 사회적으로 큰 파문을 불러 옵니다. '6공의 황태자'로 불렸던 박철언 의원을 비롯해 높은 분들이 줄줄이 감옥에 갔거든요. 이 사건의 담당 검사가 바로, 홍준표 대구시장이었어요. 드라마 모래시계가 이 사건을 소재로 한 것입니다.

이 슬롯머신 사건이 여기서 안 끝나고 카지노로 확산하죠. 슬롯머신이 이런데 카지노는 더할 것 아니냐. 그래서 검찰의 칼끝이 카지노로 향합니다. 전낙원 회장도 재판 받고 감옥 갑니다. 혐의는 비자금 조성하고 외화 빼돌리고 세금 안 냈다.

이후에 정부는 파라다이스가 사실상 독점하고 있던 카지노 사업을 2000년대 이후 경쟁 체제로 바꾸는데요. 그 경쟁을 정부가 공기업을 세워서 직접 하기로 합니다. 특혜 시비를 차단하겠다는 것이었어요. 파라다이스 처럼 외국인을 상대로 한 카지노는 세븐럭, GKL로 상장이 되어 있죠. 또 파라다이스가 못하는 내국인 카지노는 강원랜드가 운영 하도록 해요.

현재 국내에 카지노가 총 열 일곱곳이 있는데, 외국인 카지노는 16곳입니다. 나머지 한 곳은 내국인 카지노 강원랜드죠. 사실 강원랜드가 국내 카지노 매출의 60% 이상을 다 가져가요. 나머지 40%를 놓고 16곳의 외국인 카지노가 싸우는 중인데, 그나마도 매출 1000억원 넘기는 곳은 네 곳 밖에 안 되죠. 이 중 두 곳이 파라다이스, 두 곳이 GKL입니다. 그러니까 외국인 카지노는 파라다이스와 GKL이 양분하고 있다, 이렇게 보시면 됩니다.

파라다이스가 핑계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큰, 사업적으로 힘듦이 있었다고 했잖아요. 파라다이스 실적을 보면 고스란히 드러나요. 우선 2015년 이익이 급감하는 게 보이시죠. 2013년 1300억원 했던 영업이익이 2014년 700억원대, 2015년 500억원대로 확 떨어져요. 이 때 메르스 전염병이 돌았거든요. 파라다이스는 중국인 큰손, VIP 의존도가 높은데 이 때 중국인 VIP가 뚝 끊겼습니다.

근데, 메르스는 '애들 장난' 수준이었죠. 2016년 중국 정부가 한한령을 발동하더니, 2017년에는 사드 보복으로 중국인의 한국 단체 관광을 아예 금지합니다. 이 때가 인천 파라다이스시티를 막 열었을 때인데, 이거 열자마자 파다이스는 '괜히 했다' 싶을 만큼 쓴맛을 봐요. 이익이 감소한 게 아니라 이익이 아예 없어져서 적자까지 내죠. 그래도 살 길은 있다고 중국의 사도 보복이 조금씩 완화되더니, 2019년 간신히 회사가 숨통을 터요. 이 때 매출이 1조원에 근접했고, 이익도 좀 남기게 됐습니다. 파라다이스시티도 본 궤도에 올랐고, 이제 좀 되나보나 했는데.

근데, 엄청난 게 또 터지죠. 사드보다 더한 코로나 팬데믹이요. 회사가 완전히 초토화 됩니다. 매출이 반토막 났고, 이익은 당연히 안 났고 적자만 860억원에 달했어요. 외국인이 아예 안들어왔으니, 이 정도라도 한 게 다행이라고 할까요. 2021년에도 매출이 회복되긴 커녕 더 떨어졌고, 적자도 이어집니다. 이 때가 아마 파라다이스 창립 이래 가장 어려운 해였을 겁니다. 직원들 구조조정까지 하죠. 그러다가 2022년, 작년에는 간신히 매출이 조금씩 오르고, 흑자도 조금이긴 하지만 내긴 내요. 아, 정말 길었죠. 힘든 시기. 이러다 말겠지 했던 전염병, 외교 갈등 이런 것들이 몇 년씩 이어졌으니까요.

올해는 시작이 좋아요. 1분기 매출이 92%나 늘어서 1900억원을 넘겼고, 영업이익은 작년 연간 이익보다도 많은 190억원이나 했어요. 관광객들도 조금씩 돌아오고, 호텔 방도 많이 차고, 무엇보다 VIP 큰손들이 카지노 하러 옵니다. 그런데, 참 파라다이스가 힘든 게, 요즘은 한국과 중국의 외교가 거의 파탄 수준이잖아요. 한-중 수교 이래 이정도로 격한 말을 주고 받은적이 있었나 싶습니다.

앞서 파라다이스는 중국인 VIP 의존도가 높다고 했는데, 이 VIP 중국인이 누굽니까. 중국에서 힘 좀 쓰는 공무원이나 기업체 사장님, 전문직 분들일텐데. 이분들이 정부 눈치 보여서 한국에 카지노 하러 올 맛이 안 나겠죠. 이렇게 좀 되는가 싶으면 뭔가 하나씩 터져서 파라다이스는 실적이 좋아져도 주가가 반응을 안 해요. 올 들어 실적은 계속 좋아지는데, 주가는 17%나 떨어졌어요. 투자자들은 그런 것 같아요. 중국인들 들어오면 파라다이스 확 살텐데. 메르스때, 사드때, 코로나때 여러번 희망고문 했기 때문에. 이번에는 안 속는다. 나중에 한-중 관계 복원되면 그 때 주식 사겠다.

파라다이스는 전낙원 회장 사후에 그의 아들 전필립 회장이 이끌고 있는데요. 전필립 회장의 전략은 크게 두 가지 인 것 같아요. 우선, 카지노 비중을 낮추고 호텔 사업을 확장하겠다. 파라다이스가 올 1분기에 올린 매출 가운데 약 70%가 카지노였습니다. 이 말은 나머지 30%는 카지노 이외에 호텔로 벌었다는 얘깁니다.

전필립 회장은 2017년 당시 사드 보복 당할 때, 장사가 안 될 게 뻔한데도 인천 파라다이스시티를 열었어요. 카지노 회사 아니고, 복합 리조트 회사로 거듭나고 싶은데, 장사 좀 안 될 것 같다고 이걸 접을 순 없었겠죠.개장식에 저도 취재하러 갔었는데, 전필립 회장이 이런 말을 했어요. "카지노가 슈퍼라면, 복합리조트는 백화점이다" 이런 거죠. 동네 구멍가게 하다가 이제 좀 사업 하는 것 같네.

여기 가본 분들 많으시죠. 정말 큽니다. 호캉스 성지로도 불리죠. 호텔 당연히 기가 막히게 잘 되어 있고, 수영장이나 스파도 규모가 엄청나요. 거기에 실내 놀이공원, 클럽, 쇼핑센터, 박물관까지 없는 게 없습니다. 한번 들어가면 하루 만에 못나와요.

서울에도 원래 파라다이스 사무실로 썼던 장충동 건물을 인근 땅까지 터서 호텔 건물로 올리는 것을 추진하고 있어요. 이건 파라다이스의 숙원 사업이죠. 워커힐에 55년 간 세살이 하고 있는데, 자기 건물 갖는거요. 서울에 호텔 지으면, 워커힐에 있는 카지노를 이쪽으로 옮겨올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사실 워커힐은 서울 동쪽 끝에 있어서 외국인들이 가는 게 좋진 않아요. 워커힐에 비하면 장충동은, 서울 한복판이니까 장사가 훨씬 잘 될겁니다.

파라다이스는 2016년에 미국에 있는 호텔도 인수했는데요. 디즈니, 유니버설 같은 테마파크가 몰려 있는 플로리다 올랜도에 있어요. 객실이 167개 밖에 안 되는 작은 호텔인데, 구글 평이 굉장히 좋더라고요. 운영을 잘 하나봐요.

이 호텔들 장사도 엄청 잘 되고 있습니다. 1분기가 원래 비수기라 방이 잘 안 차는데, 올 1분기 파라다이스시티의 객실 점유율은 75%나 했어요. 작년 1분기가 57%였으니까, 엄청 올라갔죠. 심지어 여름 휴가철인 작년 3분기 69% 보다 높았네요. 파라다이스 부산도 그렇고, 올랜도 호텔도 그렇고 다 잘 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호캉스 많이들 오니까 방값은 뭐, 당연히 뛰고 있습니다. 1분기 객실 판매가 평균이 36만6000원. 여름 성수기 땐 50만원 넘게 받을수 있겠습니다. 올 7월부턴 코로나 터지고 닫아놨던 부티크 호텔 아트 파라디소도 연다니까 더 잘 될 것 같아요. 이렇게 호텔을 늘려 나가서 브랜드 파워가 생긴다면, 메리어트나 힐튼 처럼 체인 호텔을 낼 가능성도 있습니다. 아무튼 요즘 추세는 허가 받기 어려운 카지노 보다는 호텔을 늘리는 것이에요.

또 다른 전략은 중국 큰손 손님에서 벗어나기인데요. 중국인 안 오면 다른 나라 손님들 받아야죠. 뭐, 좀 아쉽긴 하지만. 언제까지 중국만 보고 있을 겁니까. 그래요, 우선 일본인들이 많이 오고 있어요. 인천 파라다이스시티는 일본의 세가사미란 기업과 손을 잡고 지은 곳이에요. 지분율이 파라다이스가 55, 세가사미가 45 입니다. 세가사미 주력 사업이 빠칭코 기계 파는 겁니다. 빠칭코 하는 사람이 테이블 게임을 얼머나 하는 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도움이 당연히 되겠죠.

2023년 5월이 가장 최신 데이터인데, 이 달에 파라다이스에 온 일본인이 6951명. 4월에 비해 30%나 늘었어요. 이에 비해 중국인은 1900여명. 16% 느는 데 그쳤죠. 또 기타, 동남아나 중동 이런 곳에서 오신 분들도 중국인에 비해 훨씬 많았어요. 파라다이스가 광고 모델로 배우 박서준을 썼는데요, 일본에서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 인기가 엄청났거든요. 일본 손님들 많이 받겠다는 의지가 보이죠.

파라다이스는 카지노 회사로 출발했고, 과거 좀 어두운 이미지가 있어서 그런지 주가 관리나 회사 홍보, 이런거 좀 소극적이에요. 전필립 회장도 대외행사에는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요. 하지만 앞으로 리조트, 호텔 사업 확장하려면 브랜드 파워도 더 키워야 하고 투자도 많이 해야겠죠. 경영진이 회사의 비전을 적극적으로 밝히고, 주주나 투자자들과 활발하게 소통하면 좋겠습니다. 주가 떨어지면 자사주 사서 소각도 하고 그럼 더 좋겠죠. 동네 슈퍼 아니고, 이제 백화점 한다면서요. 온갖 악재로 제대로 액땜한 파라다이스, 앞으로 어떤 좋은 일 겪을 지 눈여겨 보겠어.

안재광 기자 ahnj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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