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불황에도 이른 은퇴 후 인생을 즐기고 싶어 하는 파이어(F.I.R.E)족이 늘어나고 있다. F.I.R.E(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족이란, 50대 이전에 경제적 조건을 갖춰 은퇴하는 사람을 일컫는 신조어다. 경기호황일 무렵 2030대 사이에서 부동산 및 주식·코인 등에 영끌 투자 역시 파이어 족들이 빠른 시간 내 은퇴자금을 모으려는 움직임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니즈는 경기불황인 현재에도 지속되고 있다.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전국 만 19~59세 급여소득자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직장생활 평가 및 F.I.R.E족 관련 인식 조사’를 실시한 결과, 경제적 자유를 얻어 이른 시기에 은퇴를 원하는 직장인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제 응답자 10명 중 8명(81.3%)이 일하지 않아도 생활에 지장이 없는 ‘경제적 자유’에 대한 니즈를 높게 평가한 가운데, F.I.R.E족에 대한 인지도가 이전보다 소폭 증가(24.7%(2021)→47.3%(2022)→52.3%(2023))했다. 20~40대 응답자의 61.5%가 50세 이전 은퇴 의향을 내비쳤으며, 이미 F.I.R.E족의 기준을 넘어선 50대의 경우에도 언젠가 경제적 자유를 얻어 은퇴를 하고 싶다는 응답이 78.8%에 달했다.

특히 현 직장에 대한 불만이 높은 응답자일수록 이른 은퇴를 원하는 비율이 높게 나타난 특징(20~40대 직장 불안정 54.5%, 불만족 79.4%, 비교적 이상적 59.5%, 50대 직장 불안정 80.3%, 불만족 89.7%, 비교적 이상적 76.1%)을 보였다. 이는 직장생활에서의 불만과 스트레스가 삶 전반에 영향을 주고 있는 것으로 짐작할 수 있는 결과다.
직장인이 평가하는 F.I.R.E족이 유행하게 된 배경으로는 주로 현재의 삶이 너무 팍팍하고(39.9%, 중복응답), 열심히 일을 해도 많은 돈을 벌 수 없으며(36.1%), 국가가 개인의 노후를 보장해 주지 않는다(35.8%)는 점을 언급했다. 또한 다양한 문화 활동을 원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30.8%, 중복응답)이라는 응답도 적지 않았다.
주목할 점은 2030 청년세대에서 일을 열심히 해도 돈을 많이 벌 수 없고(20대 44.0%, 30대 41.2%, 40대 33.6%, 50대 25.6%), 국가가 노후를 보장하지 않는다(20대 40.4%, 30대 40.0%, 40대 34.8%, 50대 28.0%)는 응답이 높게 나왔다는 점이다. 실제 저연령층을 중심으로 회사의 경제적 보상에 대한 불만이 큰 편이었으며(20대 64.0%, 30대 71.6%, 40대 62.4%, 50대 62.0%), 이에 따라 월급 이상의 의미를 찾지 못하는(20대 59.6%, 30대 65.6%, 40대 50.0%, 50대 45.6%)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10명 중 7명, 은퇴 후 일 계속 하고 싶어···F.I.R.E족, 현실에선 불가능 인식 높아
응답자 10명 중 7명(67.9%)은 경제적 자유를 얻은 후에도 어떤 일이든 계속 하고 싶다고 답했다. 은퇴 후 꿈꾸는 삶의 모습으로 편의시설이 있는 도심에서 다양한 인간관계를 맺으며 취미생활을 즐기거나(38.0%) 복잡하지 않은 도시 외곽에서 소소한 취미생활을 하며 느리게 살고 싶다(30.3%)는 응답이 많은 편이었다.

50대 응답자의 경우 도시 외곽에서의 거주 의향(50대 미만 근로소득자 25.6%, 50대 이상 근로소득자 42.9%)이 두드러졌는데, 복잡한 도시에서 직장 생활이 길었던 만큼 남은 생애는 조용하고 평화로운 곳에서 여유로운 삶을 즐기고 싶어 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나아가 F.I.R.E족으로 생활 할 의향이 있는 응답자의 경우에도 은퇴 이후 여행을 다니면서 여유를 즐기거나 번 돈을 마음껏 쓰고,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삶을 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현실적으로 F.I.R.E족 생활을 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서는 대체로 낮게 평가된 것으로 나타났다. 50대의 경우 상대적으로 긍정적 전망(20대 21.6%, 30대 23.2%, 40대 18.8%, 50대 29.2%)이었으나 이 역시 낮은 수준이었다. F.I.R.E족 생활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경제적 자유를 누리기 위한 자금 마련이 어렵다는 의견이 높았다.
직장인들이 생각하는 은퇴 후 경제적 자유를 누리기 위한 자금은 어느 정도일까. 직장인들이 경제적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는 10억~20억 정도의 자금이 필요하며(30.8%) 그 이상의 은퇴 자금을 언급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20억~30억 24.9%, 30억~40억 15.1%, 40억~50억 3.0%, 50억 이상 17.4%).
은퇴 자금 마련을 위해 주식 투자(20대 38.1%, 30대 38.4%, 40대 42.6%, 50대 40.6%)와 부동산 투자(20대 35.1%, 30대 36.6%, 40대 31.6%, 50대 29.4%)를 하는 경우가 높았다.
직장인 절반만 ‘직장생활 만족’···불만족 이유로 ‘적은 월급’, ‘빈약한 사내 복지’ 꼽아
한편 전체 응답자 중 절반가량(48.1%)만이 현재 직장생활에 만족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졌다. 상대적으로 50대 고연령층(20대 47.6%, 30대 41.2%, 40대 46.4%, 50대 57.2%)과 교사·공무원(직장인 49.2%, 전문직 51.5%, 서비스/영업직 36.4%, 생산/기술직 37.8%, 교사/공무원 57.7%)의 만족도가 높게 평가됐다.

현재 직장생활에 만족하는 이유로는 회사가 안정적이고(43.2%, 중복응답), 개인적인 시간이 충분해(38.7%) 워라밸이 가능하다(32.4%)는 점을 꼽았으며, 직장 내 좋은 사람들이 많기 때문(25.4%)이라는 응답도 있었다. 특히 저연령층을 중심으로 워라밸이 가능한 회사에 대한 만족도가 높은 특징을 보였는데(20대 47.1%, 30대 39.8%, 40대 24.1%, 50대 21.7%), 이는 상대적으로 일을 하며 개인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경향이 높은 2030세대에서 일과 삶의 균형을 더욱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반면 직장생활에 불만을 느끼는 이유는 주로 적은 월급(60.8%, 중복응답), 빈약한 사내 복지(44.2%), 일한 것에 비해 불공정한 대우(42.2%) 등을 꼽았다. 이어 회사에서 직원을 대하는 방식이 맘에 들지 않는다(31.7%)는 응답이 뒤를 이었다. 주목할 점은 이전 조사와 비교해 워라밸이 불가능한 회사에 대한 불만도가 소폭 증가(17.5%(2022) → 24.1%(2023))한 것으로 직장 생활을 평가하는 데 있어 워라밸의 가능 여부가 큰 영향을 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직장인 2명 중 1명만 ‘현재 업무에 만족감 느껴’
직장인들의 업무 만족도는 어느 정도일까. 자신 맡고 있는 업무에 대해서는 2명 중 1명(49.7%)만이 만족감을 느끼고 있었다. 주로 일이 적성에 맞고(46.3%, 중복응답), 시간을 여유 있게 쓸 수 있으며(31.8%),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30.0%)는 점을 업무에 만족하는 이유로 꼽았다. 또 전문성을 키울 수 있는 일(26.4%, 중복응답)과 경제적으로 안정을 줄 수 있는 일(23.9%)에 대한 만족감도 높은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고연령층의 경우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일에 만족감을 느끼는 경향(20대 16.9%, 30대 23.2%, 40대 23.7%, 50대 30.7%)이 두드러졌는데, 가족을 부양하고 노후를 준비하는 등의 경제적인 요구사항이 많다 보니 안정적인 수입을 확보하는 것이 업무 만족도에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결과였다. 한편, 업무 불만족도가 높은 직장인들은 현재 업무가 전문성이 부족하고(37.5%, 중복응답), 감정노동을 필요로 하며(36.9%), 적성에 맞지 않는다(32.7%)는 이유로 불만을 드러내고 있었다.
강홍민 기자 kh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