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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가던 아이 눈동자가 떠올라"…자식 잃은 아버지의 통곡 [김수현의 THE클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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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러, '죽은 아이 그리는 노래' 작곡
뤼케르트 시에서 영감

아이 잃은 아버지의 심정 담은 작품
암울한 분위기와 긴장감 넘치는 선율
'단장지애' 아픔 구현

단장지애(斷腸之哀). 자식 잃은 부모의 슬픔을 이르는 말로, 창자가 끊어질 듯한 고통을 의미한다.
세상에는 직접 겪지 않고선 절대 그 마음을 헤아릴 수 없는 일련의 아픔들이 있다고 합니다. 그중 가장 고통스러운 것이 자식이 먼저 세상을 떠나는 일이라고 하죠. 부모는 아이가 탯줄에 묶여 우는 순간부터 그야말로 새로운 행성에 도달하는 듯한 감정을 느낀다고 하니, 생명 하나가 지는 것은 부모의 모든 세계와 세상이 무너지는 절망감 그 자체일 것입니다. 물론 한가지의 단어로는 감히 형용할 수 없는 심정일 테죠.

'단장지애'. 단어만 들어도 가슴이 아려오는 이들의 고통에는 신이라 할지라도 감히 유효기간을 정할 순 없을 겁니다. 하물며 그 대상이 인간이라면 불의의 사고로 아이를 잃은 이들의 아픔을 입막음할 권력은 주어지지 않죠. 그러나 우리는 너무나 쉽게 그 영역을 침범하곤 합니다. 사회적 파장이 컸던 어떤 이의 죽음이 시간이 지나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지면, 익명성의 힘을 빌린 대중은 말합니다. "이젠 지겨우니 그만하라". 10년이 20년이 지나도 그때의 시간에 멈춰있는 이들에게 누구보다 차갑게 말이죠.

먼저 떠나보낸 두 아이에 대한 그리움으로 죽을 때까지 400편 이상의 시를 남긴 아버지의 마음을 가슴 아린 음악으로 작품화한 말러의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를 오늘날 조명하고자 하는 이유입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단절된 사회를 겪고 있는 지금, 작품이 전하는 고통은 그들의 마음에 한 발자국 다가가기 위한 디딤돌이 될 것입니다. 무거운 분위기에 처절한 노랫말이 슬픔을 넘어 먹먹한 감정을 일으키는 음악, 말러의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를 가까이 들여다보겠습니다.
말러, 아이 떠나보낸 아버지의 마음을 음표에 담아내다
먼저 후기 낭만파 음악을 대표하는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Gustav Mahler, 1860~1911)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겠습니다. 보헤미아(체코) 칼리슈트 지방의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난 말러는 어릴 때부터 음악적 재능이 뛰어났다고 전해집니다. 6세에 처음으로 피아노를 접한 말러는 15세에 오스트리아 빈 음악원에 입학하게 되면서 정식 음악 교육을 받게 됩니다. 이후 20세가 되던 1880년 칸타타 '탄식의 노래' 작곡을 마치면서 작곡가로서 첫발을 내디딘 말러는 이때부터 임시 지휘 활동도 시작합니다.

말러는 살아생전 작곡가보다는 지휘자로 명성을 떨쳤던 인물입니다. 빈은 물론 프라하, 라이프치히, 뉴욕 등 세계 음악의 중심 도시에서 지휘자로 활동한 말러는 고용주도 함부로 할 수 없는 반열에 올랐다고 하죠. 그야말로 지휘자로서 금전과 명예를 모두 누리면서 남부러운 것 없는 삶을 살고 있었던 것인데, 말러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작곡 활동에 소홀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말러는 '타이탄(거인)', '부활', '천인 교향곡' 등 교향곡 10곡과 '대지의 노래',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 등 40여개의 가곡을 발표하면서 작곡가로서의 유의미한 발자취를 남겼죠.

말러의 작품은 당시 대중에게 큰 관심을 받지 못했으나, 고귀한 가치는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듯 현재에는 시대를 초월하는 대작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말러의 작품은 후기 낭만파 음악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영역을 가장 잘 표현했을 뿐만 아니라, 가곡과 교향곡 간의 조화를 통해 현대음악으로 연결되는 틀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음악사에 남긴 의미가 상당하다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 중에서도 1904년 완성된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는 그의 독특한 음악 세계가 충실히 구현된 작품으로 꼽히는 대표적인 연가곡입니다. 영감은 독일 낭만파 시인 프리드리히 뤼케르트(Friedrich Ruckert, 1788~1866)의 시였다고 하죠.

뤼케르트는 급성 호흡기 질환 디프테리아로 두 아이를 먼저 떠나보내고 지워지지 않는 슬픔과 절망감으로 400편이 넘는 시를 적었다고 합니다. 시집은 뤼케르트가 세상을 떠난 뒤에야 출간됐는데, 이를 읽고 깊은 마음의 울림을 느꼈던 말러는 5편의 시를 골라 곡을 작곡하게 되죠. 그러나 말러는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 작곡을 평생 후회했다고 합니다. 작품을 낸 지 3년이 지난 1907년 자신의 첫째 딸 마리아 안나가 성홍열로 세상을 떠나는 일을 맞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악보 때문에 딸이 죽은 것 같아 한동안 심각한 죄책감에 시달렸던 말러는 이때부터 심장병을 앓게 되면서 건강도 악화됩니다. 죽기 직전 첫째 딸 무덤에 함께 묻히고 싶다고 언급할 정도였습니다.

먼저 떠나버린 자식을 향한 그리움과 사랑을 남김없이 글로 써 내려간 한 아버지와 그의 마음을 아름답고도 서글픈 선율로 전달하고자 했던 말러의 마음이 온전히 담긴 작품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 아이의 사망을 믿지 못하는 부모가 일상에서 문득 현실을 마주할 때 느끼는 절망감과 시간이 지날수록 선명해지는 고통을 마음에 담으며 음악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그리움과 애틋함…묵직한 주선율로 구현
'이제 태양은 저토록 찬란하게 떠오르려 하네' 제1곡은 오보에와 호른의 구슬픈 선율로 시작됩니다. 아버지가 아이를 떠나보낸 다음 날 눈 뜬 직후의 심경을 표현하는 곡으로, 작품 전반에 어두우면서도 쓸쓸한 분위기가 깔려있죠. 아버지는 "간밤에 아무런 불행도 없었던 것처럼"이라는 가사를 내뱉으며 현실을 부정하다가도, "나의 집 작은 빛이 꺼졌다"라고 소리치며 아이의 죽음을 고통스러운 심정으로 드러냅니다. 이때 호른이 등장해 아버지의 음성을 받치면서 끝없는 절망감을 극대화하죠. 이후 아버지가 아이에 대한 그리움을 "영원한 빛"이라고 표현하면 바이올린과 하프의 소리가 등장하면서 밝은 선율이 드리우고, 글로켄슈필의 맑은 울림으로 작품은 막을 내립니다.

제2곡 '이제야 알았네, 왜 너희들이 어두운 눈길을 보냈는지'에서는 아팠던 아이가 자신의 눈을 바라보던 것을 회상하는 아버지의 사무치는 감정을 표현합니다. 특히 아버지가 "그 두 눈빛"을 홀로 읊조리듯 장면에서는 아이가 자신을 쳐다보던 모습이 부모의 얼굴을 눈에 담고 세상을 떠날 것을 준비하던 것이었음을 깨닫는 아버지의 심정을 내비치죠. 이내 아버지가 "너희는 반짝이는 눈으로 말하려 했지. 아빠 곁에 있고 싶어요"라고 소리치면 이전에 없던 아주 밝으면서도 애처로운 오케스트라 선율이 드리웁니다. 아내 아버지가 아이의 눈동자를 "빛나는 별"이라고 표현하며 행복하면서도 괴로운 마음을 긴 음표와 가장 높은 음정 E를 통해 내뱉으면, 현악기와 청아한 하프 소리가 여운을 남기면서 곡은 마무리됩니다.

'네 엄마가 문을 열고 들어설 때면' 제3곡은 연가곡 중 가장 우울하고도 무거운 분위기를 지니는 작품입니다. 엄마가 방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 언제나 함께 있었던 아이의 모습이 사라진 서글픔을 쏟아내는 곡으로, 일상에서의 상실감을 드러내기 위해 잉글리쉬 호른과 바순이 주로 등장하면서 암울한 분위기를 고조시킵니다. 아버지의 애틋함이 절정에 다다르는 순간은 "너의 귀여운 얼굴이 나타날 것 같은 그곳"이라고 소리치는 부분입니다. 성악가의 두터우면서도 강한 음색이 절실한 부분으로, 비올라와 더블베이스가 숙연한 분위기를 극대화하죠. 이후 오보에와 플루트의 아름다운 선율이 등장하면, 아버지가 "아이야. 나의 모든 것아. 기쁨의 빛이 너무 일찍 꺼져버렸구나"라고 부르짖으며 아이들을 잃은 절망감을 온전히 전달하죠. 이내 성악가의 음성이 점차 줄어들면서 작품은 끝을 맺습니다.

제4곡 '때로 난 아이들이 그저 놀러 나간 것이라 생각하지' 작품은 유일한 장조 곡입니다. Eb장조 밝은 분위기로 시작하는 이 곡은 아이들이 죽은 현실을 회피하고 싶은 아버지의 마음이 담겨있습니다. 아버지가 "아이들이 곧 집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읊조리는 부분에서는 현악기 전체가 성악가의 목소리를 받아내면서 풍부하고도 따뜻한 분위기를 형성하죠. 이후 아이들의 순수함을 드러내는 하프 소리와 바이올린의 고음이 등장하면, 희망적 상상에서 현실로 돌아온 아버지가 애써 슬픔을 누른 채 "천국에서 다시 만나자"고 말하며 작품을 내립니다.
'이런 날씨,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날에' 마지막 곡은 아이의 장례식을 치르는 부모의 비통한 감정을 담고 있는 작품입니다. 전주에서 바이올린의 날카로운 소리와 관악기의 강렬한 소리가 부딪히면서 긴장감을 유발하면, 아버지가 "이렇게 폭풍이 부는 험한 날씨에 아이들을 밖으로 내보내지 말았어야 했는데"라는 가사를 반복하면서 고통스러운 심정을 드러냅니다. 이때 현악기가 피치카토, 악센트, 트레몰로 기법을 잇따라 사용하면서 불안한 감정을 극대화시키죠. 그러다 이내 첼레스타가 맑은 종소리를 내듯 등장하면, 아버지는 아이들과 마지막 작별을 하려는 듯 마음을 다잡고 읊조리듯 말을 건넵니다. 자장가를 들려주듯 말이죠.

현악기의 서정적인 선율이 흐르면 아버지는 이전과 다른 부드러운 음성으로 아이들의 마지막을 배웅합니다. "이렇게 폭풍이 울부짖는 날에도 아이들은 엄마 품에 있는 것처럼 편안할 거야. 이젠 하느님이 지켜주실 테니"라고 속삭이면서 아이들의 행복을 간절히 바라죠. 플루트의 맑고 청아한 음색이 아이들이 떠난 곳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면 아버지는 슬픔을 애써 숨긴 채 마지막 노랫말을 건넵니다. 이후 호른이 아버지의 깊은 애통함을 대변하듯 무거운 선율을 연주하면 현악기의 부드러운 음색이 드리우면서 전체 작품은 막을 내립니다.

여러 차례 변하는 선율에도 묵직한 절망감이 가슴 깊숙이 남아 오랫동안 귓가에 울리도록 하는 말러의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 애절한 가사와 깊은 표현력으로 세상의 끝에 서 있는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이 작품이 우리 사회의 따뜻함을 되살리는 햇살이 되길. 삶의 무게에 지쳐 무심코 내뱉는 우리의 차가운 한 마디가 과거에서 한 발자국도 떼지 못하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비수로 꽂히는 일이 벌어지지 않길. 상처가 있는 이들을 보듬고 사람의 힘으로 막을 수 있는 불의의 사고가 더는 발생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모두 한 목소리를 내는 우리가 되길 바라봅니다.

김수현 한경닷컴 기자 ksoohy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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