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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유지의 비극과 ES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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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ESG] 칼럼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가 세계인이 기대한 대로 결실을 맺고 온실가스 감축을 본궤도에 올려놓길 바라는 마음이다. 사실 총회 전만 해도 모든 것이 후끈 달아오르는 것처럼 보였다. 미국 바이든 정부는 5550억 달러의 기후변화 예산을 중추로 하는 ‘Build Back Better Framework’을 공개하며 당사국총회의 분위기를 띄웠고, 우리나라만 해도 2018년 대비 40% 감축이라는 너무나 야심 찬 2030 국가온실가스 감축 목표(NDC)를 속전속결로 채택하고 국제사회의 우호적 평가를 기대하며 나아갔다. 그런데 유럽의 LNG와 중국의 석탄 수요가 급증하고 에너지 가격이 요동치면서 불길한 징조가 보이기 시작했다. 이어 이탈리아 로마에 모인 G20 정상회의도 탄소중립의 구체적 방안 합의에 실패했다. COP26에 짙은 그림자가 드리운 것이다.

이런 상황을 보며 ‘공유지의 비극’이 떠올랐다. 미국의 생태학자 개릿 하딘이 만든 유명한 이 모형은 구성원의 이기심과 환경문제를 쉽고 간결하게 설명해준다. 우린 공유지의 비극을 어떻게 피할 수 있을까. 정부의 개입이나 시장 메커니즘 활용, 지역공동체의 자치 등 다양한 이론이 제시되긴 했다.

아무래도 가장 강력한 방식은 정부의 개입이다. 문제는 기후변화 같은 지구환경 문제를 해결할 ‘세계정부’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유사 세계정부의 역할을 위해 설치한 것이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nference of the Parties, COP)다. 당사국총회에서 꼭 필요한 합의를 이루지 못한다면 이는 무기력한 식물 정부와 다를 바 없다. 이래서는 정부 개입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을 것이다.

다음으로 시장 메커니즘의 활용을 생각해보자. 시장 메커니즘은 좁게 생각하면 가격 기능을 활용한 수요와 공급의 조절을 말하지만, 넓게 보면 민간이 주도하는 체제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기후변화협약은 하부의 이행 체제로, 지금은 종료된 교토의정서(1997)와 파리협약(2015)을 가지고 있다. 특히 파리협약 체제는 기후변화 대응의 역할을 정부 주도에서 기업, 지자체, 시민단체, 국제기구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로 넓힌 것이 특징이다. 여기서 기업과 ESG(환경·사회·지배구조)의 역할을 발견할 수 있다.

ESG는 출발이 민간부문, 그중에서도 투자와 금융을 지속 가능성 이슈를 관리하는 레버리지로 이용하자는 아이디어에서 나오지 않았던가. COP26에는 넷제로를 위한 글래스고 금융연합(The Glasgow Finance Alliance for Net-Zero, GFANZ) 등 민간의 자발적 연합체가 대대적으로 참가했다. GFANZ만 해도 총자산 130조 달러가 넘는 글로벌 은행, 투자사, 보험사 등이 참여해 그 영향력이 막대하다. 이들은 이번 회의에서 만족할 만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아도 ESG를 촉발한 주원인인 기후변화가 존속하는 한 지속적으로 활동할 것이다. 한편으로 ESG는 탄소국경세로부터 사내탄소세에 이르는 탄소가격제의 도입을 촉진하는 데도 일정 부분 모판 역할을 하고 있다.

이처럼 ESG에서 기인한 동력은 적지 않은 힘이 잠재돼 있다. 그 동력이 밑에서 위로 전달되어 세계정부를 다시 제대로 작동시키는 모습을 COP26을 보며 속으로 그려봤다. 물론 회의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어 파리협약 체제가 산뜻하게 작동한다는 소식을 듣는다면 더할 나위 없이 반가울 것이다.

이민호 법무법인 율촌 ESG 연구소장

오늘의 신문 - 2024.09.14(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