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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수치 숨기는 국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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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석 건설부동산부 기자) “왜 한경만 다른 PIR(연소득 대비 주택구입가격 배수) 수치를 쓰는 겁니까.”

국토교통부 사무관이 지난 1일 오후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이렇게 말했다. 본지 6월2일자 A26면에 게재된 ‘더 힘들어진 수도권 내집 마련 월급 모두 모아도 9년 걸린다’ 기사를 온라인에서 확인한 직후다. 그는 “보도자료에 ‘중위수 PIR’이 있는데 한경은 ‘평균 PIR’ 수치를 썼다”며 “다른 언론사들은 중위수 PIR를 쓰는데 한경만 다르게 쓴 것”이라고 지적했다. 원치 않는 숫자가 기사로 나간 것이 불편한 모양이었다.

이날 국토부는 ‘2019년도 주거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주거실태조사는 국민의 주거환경과 가구 특성 등 기초자료 수집을 위해 2006년부터 시행했다. 국토연구원과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작년 6~12월 표본 6만1170가구를 대상으로 개별 면접 조사했다.

여기엔 PIR 정보가 담긴다. 쉽게 말해 몇 년치 소득을 모아야 집을 살 수 있는지 나타내는 지표다. 수치는 두 가지 종류로 산출된다. 한 지역에서 거래된 주택의 중간 가격을 기준으로 한 중위수 PIR과 그 지역에서 거래된 주택 가격의 평균치를 활용하는 평균 PIR이다. 두 수치 중 무엇이 더 정확할까. 한 통계전문가는 “둘 다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수치”라며 “이들 중 어떤 수치를 쓸 것인가는 선택의 문제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두 수치 중 어느 것을 써도 괜찮다는 의미다.

국토부도 이를 알고 있다. 국토부가 지난해 발표한 ‘2018년 주거실태조사 결과’ 보도자료에도 중위수와 평균 수치가 함께 기재돼 있다. ‘2017년 주거실태조사 결과’에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번 2019년 주거실태조사 결과에서만 평균 PIR이 빠졌다. 이 수치를 조사를 하지 않은 게 아니다. 예전처럼 조사했지만 보도자료에 넣지 않은 것이다. 이에 대해 국토부 관계자는 “주택거래가격 중 과도하게 높거나 낮은 가격은 평균치에 왜곡을 가져올 가능성이 있다”며 “이 때문에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중위수를 중점적으로 다뤘다”고 설명했다.

조사에 따르면 수도권 중위수 PIR은 2017년 6.7배, 2018년 6.9배, 2019년 6.8배로 나타났다. 평균 PIR은 온도차를 보인다. 2017년 6.7배, 2018년 8.6배, 2019년 9.0배다. 중위수 PIR을 따르면 2019년 기준으로 수도권에서 집을 사려면 6.8년치 월급을 모아야 한다. 평균 PIR 수치는 9년치 월급을 모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최근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 집값이 상승한 것을 감안하면 매년 오른 평균 PIR에 눈길이 간다. KB부동산 리브온에 따르면 수도권 아파트 중위가격(이하 5월 기준)은 2018년 4억6249만원, 2019년 4억9165만원, 올해 5억5206만원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은 7억5144만원, 8억2926만원, 9억2013만원으로 껑충 뛰었다. 이 때문에 이날 오전 정부세종청사 국토부 기자실에서 열린 백브리핑에선 “왜 집값이 올랐는데 (중위수) PIR 수치는 오히려 떨어졌느냐” “어떤 방식으로 조사하기에 이런 수치가 나온 것이냐” 등의 질문이 이어졌다. 이에 대해 국토부 관계자는 “통계적으로 조사해 나온 수치”라는 답변만 되풀이했다.

거실태조사 결과는 지난 1년간 국토부 주택정책의 성적표와 같다. 누구나 좋은 성적표를 받고 싶을 것이다. 주거실태조사 결과 보도자료에 매년 넣던 평균 PIR 수치를 올해만 넣지 않은 이유는 ‘9배’라는 숫자가 부담스럽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주거실태조사 결과에 국민이 가장 궁금해하는 ‘서울 집값’ 성적이 포함되지 않은 점도 의문이다. 국토부는 맞춤형 주거복지정책 수립을 위해 2018년부터 표본 수를 기존 2만 가구에서 6만 가구로 늘렸다.

그런데도 전 국민의 20%인 1000만 명이 거주하는 서울 지역 데이터를 따로 확보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예산 문제로 서울 표본 수를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수준으로 늘리는 데 한계가 있다”는 국토부 답변도 납득하기 힘들었다. 이 조사를 수행한 국토연구원에 따르면 주거실태조사 예산은 총 4억원이다. 국토부의 한 해 예산은 16조원이 넘는다.

이 같은 거대 부처가 ‘주택정책 1년 성적표’ 중에서도 가장 핵심인 ‘서울 성적’ 채점을 위해 수천만원의 비용을 더 투입할 순 없었을까. 일각에서 “서울 수치를 뽑아봤자 국토부에 이로울 게 없으니 일부러 안 하는 것”이라는 추측이 나오는 이유다.

정부의 부동산정책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건 서울 집값이다. 2017년 8·2대책도, 2018년 9·13대책도, 3기 신도시와 ‘역대급 규제’로 꼽히는 작년 12·16 대책도 결국 급등하는 서울 집값을 잡기 위해 꺼내든 카드였다. 국토부 주장대로 작년 수도권 중위수 PIR이 2018년과 비슷한 수준이고, 2017년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면 20회에 달하는 주택정책은 왜 내놓은 것일까.

결국 2019년 주거실태조사 결과에 여전히 ‘서울 집값’이 없는 것은 물론 그동안 제공해오던 평균 PIR 마저 사라졌다. 국토부가 ‘불리한 점은 감추고 유리한 부분만 강조하려 한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는 대목이다. 문제점이 있다면 있는 그대로 밝히고 이에 대한 대응 방안을 고민하는 것이 바람직한 자세다. 한 부동산학과 교수의 “잘못된 진단은 엉뚱한 처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를 되새겨 볼때다.(끝) / iskr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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