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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가 부추긴 주류 업계 지각변동…승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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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정 마켓인사이트부 기자) 유례 없이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산업 지형을 빠르게 바꾸고 있습니다. 각 산업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구조개편이 속도를 내고 있죠. 글로벌 가치사슬 자체가 재편되면서 각 기업의 중장기 경영 전략과 운영 방침에도 전방위적인 변화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주류 산업도 코로나19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는 업종 중 하나입니다. 국내 신용평가사 중 한 곳인 한국기업평가는 최근 코로나19 이후 주류 업계가 어떻게 달라질지에 대한 심층 분석을 했습니다. 한국기업평가가 신용등급을 부여하고 있는 하이트진로와 롯데칠성음료를 중심으로 코로나19 이후 주류 업계의 사업 환경 변화를 전망해본 겁니다. 사업 환경 변화에 대한 정확한 예측과 분석은 개별 기업의 신용등급을 매기는 데도 중요한 요인이거든요.

코로나19가 발생하기 전만 해도 주류 업체들의 기대감은 컸습니다. 일본 불매 운동 영향으로 수입 맥주 시장이 위축되고 주류 가격 명령제 폐지, 맥주의 종량세 전환 등으로 그간 사업 환경을 제약하던 요인들이 꽤 개선될 예정이었습니다. 실적 개선의 변곡점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답니다.

하지만 코로나19 대유행이라는 예상치 못한 변수가 나타나면서 주류 업계는 새로운 변화에 직면했습니다. 전염병 확산을 막기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는 업소용 채널에 큰 타격을 주고 있죠. 음식점이나 주점 등 업소용 채널은 소주와 맥주 시장의 약 절반을 차지하고 있거든요.

코로나19가 종식되더라도 대면 접촉은 당분간 기피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기존 모임과 회식 문화 등이 과거 수준으로 돌아가긴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많죠. 사실 코로나19 이전에도 주류 업계의 고민은 많았습니다.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고 주 52시간 근무제가 자리를 잡으면서 회식이 크게 줄었답니다.

회식은 주류 시장의 큰 축을 형성해왔죠. 여기에 집 밖에서 많은 사람들과 함께 술을 마시는 게 아니라 집 안에서 혼자 술을 마시는 '홈술·혼술' 문화가 확산하면서 전반적인 음주량이 감소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주류 업계는 성장성 확보를 위한 투자를 계속해왔습니다. 특히 신규로 시장에 진입한 후발주자들이 적극적으로 설비투자에 나섰습니다. 수요 대비 높은 수준의 증설로 공급 과잉이 나타나게 된 것이죠.

그나마 올 들어 부각된 사업 환경 개선 요인으로 실적 회복을 점쳤는데 코로나19를 맞닥뜨리게 된 겁니다.

그럼 코로나19 영향권에 있는 올 1분기 주류 업체들의 실적을 보겠습니다. 올 1분기 영업실적을 보면 업소용과 가정용 채널 비중이 따라 매출 영향이 차별화 돼 나타났습니다. 대부분 업체가 지난해 1분기에 비해 매출이 크게 줄었습니다. 다만 '진로이즈백'과 '테라'의 판매 호조로 점유율이 크게 뛴 하이트진로의 경우 지난해 초에 비해 높은 매출 성장률을 기록했죠. 브랜드 파워가 높아진 덕분입니다.

하이트진로는 올 1분기 실적 개선을 이룬 건 신제품을 앞세워 단기간에 시장 장악력을 높인 영향입니다. 코로나19 상황에서도 가정용 채널에서 우수한 판매를 나타냈죠. 매출이 늘다 보니 고정비 부담이 줄고 코로나19로 각종 판촉을 축소하면서 수익성도 좋아졌죠.

이에 비해 롯데칠성음료는 올 1분기 부진이 심화했습니다. 일본 불매 운동의 영향이 이어진 가운데 업소용 채널이 힘을 쓰지 못했거든요. '처음처럼'과 '피츠' 등 롯데칠성음료의 주력 제품은 업소용 채널 비중이 높답니다. 이 때문에 롯데칠성음료의 시장 점유율은 소주는 약 5%포인트, 맥주는 약 1%포인트 이상 하락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한국기업평가는 "주류 업계가 코로나19 이전에도 이미 성장 둔화에 따른 한계 상황에 봉착해 있었다"고 진단했습니다. 이런 분위기가 바뀌기는 쉽지 않다고도 예상했습니다. 경기 둔화, 과도한 음주 자제라는 사회 분위기, 저출산, 고령화, 1인 가구 등의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영향이죠. 코로나19 영향이 장기화하면 전체 주류 소비는 올 1분기 감소 수준에서 크게 나아지지 못할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업소용 채널의 경우 브랜드 중심의 과점 구도에서 다수 브랜드가 경쟁하는 모습이 전개될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과거처럼 단일 브랜드의 술을 마시는 단체 모임과 회식자리가 줄어들 전망이라서죠. 주류 시장 경쟁의 주요 무대가 업소용에서 가정용 채널로 이동할 것이라는 분석도 내놨습니다. 가정용 채널에서 주도권을 확보하는 업체가 우수한 실적을 거둘 것이란 의미입니다.

2021년 이후 시행을 앞두고 있는 주류 위탁제조(OEM) 허용, 신제품 출시 주기 단축, 첨가 재료 확대 등의 규제 완화 조치를 감안하면 소비자들의 요구에 발 맞춘 프리미엄 제품과 다양한 맛의 신제품 출시가 촉진될 것이라는 전망입니다. 염재화 한국기업평가 선임연구원은 "코로나19로 인한 업소용 채널 위축이 업계 전반의 실적 저하를 야기했지만 가정용 채널의 성장과 정부의 대대적인 규제 완화 조치로 이어져 주류 업계의 수요·공급 요인을 모두 크게 변화시키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끝)/ke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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