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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명맥 끊긴 '태양광 산업의 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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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정 마켓인사이트부 기자) 국내 폴리실리콘 사업 전망이 어둡습니다. 사실상 명맥이 끊겼단 평가가 주를 이룹니다. 폴리실리콘은 '태양광 산업의 쌀'로 불립니다. 태양광 산업의 기초 소재이기 때문이죠.

국내에서 태양광용 폴리실리콘 산업은 OCI의 군산 공장이 2008년 생산을 개시하면서 시작됐습니다. 이후 한국실리콘, KCC, 웅진폴리실리콘, 한화케미칼, 삼성정밀화학 등이 잇따라 시장에 참여했습니다. 국내 폴리실리콘 산업이 빠르게 성장하는 분위기였습니다.

하지만 2011년 유럽 재정위기로 폴리실리콘 가격이 급락하면서 전 세계적인 산업 내 구조조정이 진행됐습니다. 이 과정에서 국내 기업들도 투자 계획을 철회하거나 축소했습니다. 일부 기업은 아예 사업을 정리했고요. OCI 등이 흔들림없이 국내 태양광용 폴리실리콘 생산을 이어갔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경쟁은 심화하고 업황은 둔화됐습니다. 가동률이 떨어지면서 생산량이 줄었고, 국내 기업들의 실적도 나빠졌습니다. 결국 지난 2월 OCI와 한화솔루션이 국내 태양광용 폴리실리콘 사업 철수를 발표했습니다.

국내 신용평가사 중 한 곳인 나이스신용평가는 한국의 폴리실리콘 사업의 재개 가능성을 매우 낮게 평가했습니다. 외부 여건과 국내 기업들의 경쟁력을 따져본 결과입니다. 그간 대규모 투자가 이뤄졌던 태양광용 폴리실리콘 산업이 올해를 기점으로 국내에서 생산이 중단될 것이라고 봤습니다.

내외부 요인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죠. 폴리실리콘 수요는 태양광 발전 설치량에 크게 좌우됩니다. 2018년 이후 태양광 설치량 증가율에 연동해 폴리실리콘 수요 성장률도 둔화됐고요. 태양광 산업의 가치 체인 상에서 폴리실리콘의 경우 다른 제품에 비해 상대적으로 초기 투자비가 큽니다. 진입 장벽도 높고요. 또 폴리실리콘 신규 라인 건설이 일반적으로 2~5년 걸려 수요 증감에 비해 비탄력적으로 공급이 움직이는 특성이 있습니다.

수요 성장기에 다수 기업들이 설비를 증설했지만 공급은 계단식으로 확대돼 구조적으로 수급 불균형이 심화된 것입니다. 폴리실리콘은 생산 원가의 20~40%를 전력 비용이 차지합니다. 중국 기업들이 유리한 구조죠. 중국 신장을 비롯한 서북 지역에 있는 중국 기업들은 중국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으로 싸게 전력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최상위 원가 경쟁력을 자랑하게 된 배경이죠.

사실 폴리실리콘 산업을 얘기하려면 중국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수요, 공급, 생산, 가격 등 모든 요소를 중국이 뒤흔들고 있거든요. 태양광 가치 체인을 보면 폴리실리콘을 녹여 결정으로 만든 원통형 덩어리인 잉곳과 잉곳을 얇은 판으로 절단한 웨이퍼 산업의 경우 중국 기업이 90% 이상을 점유하고 있습니다. 국내 폴리실리콘 생산량의 대부분이 중국으로 수출됩니다.

이런 가운데 중국은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OCI와 한화솔루션이 생산하는 폴리실리콘에 대해 각각 4.4%, 8.9%의 반덤핑 관세를 부과했습니다. 국내 기업들의 가격 경쟁력이 약화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이렇게 불리한 외부 환경이 이어지자 국내 기업들이 폴리실리콘 생산에서 손을 떼게 됐습니다.

올 초 군산 공장의 태양광용 폴리실리콘 생산을 중단한 OCI는 이번 결정으로 폴리실리콘 관련 영업적자를 줄이게 됐습니다. 물론 생산능력이 크게 감소해 시장 지위가 약화하게 됐지만요. 나이스신용평가가 OCI의 본원적인 사업 경쟁력과 수익창출능력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한화솔루션은 사실 큰 영향을 받진 않습니다. 폴리실리콘 사업이 한화솔루션의 연결 실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출의 5% 미만이거든요.

나이스신용평가는 향후 국내에서 폴리실리콘 사업이 재개될 가능성이 낮다고 내다봤습니다. 국내 기업에 불리한 교역 조건이나 원가 구조를 보면 사업 경쟁력을 갖추기 쉽지 않거든요. 이재윤 나이스신용평가 수석연구원은 "2015년을 정점으로 국내 생산량이 지속적으로 축소됐다. 공급 과잉이 심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우수한 원가 구조를 갖춘 중국 기업들의 시장 지배력이 확대되고 있다. 올 초 OCI와 한화솔루션의 사업 철수를 기점으로 국내 태양광용 폴리실리콘 사업은 실질적으로 중단됐다"고 말했습니다. (끝)/ke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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