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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부추긴 '슈퍼 울트라 주총 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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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정 마켓인사이트부 기자) 매년 3월 상장사들의 정기 주주총회 시즌이면 자주 오르내리는 말이 있습니다. 바로 슈퍼 주총 데이입니다. 특정일에 상장사의 정기 주총일이 집중되는 걸 말합니다.

상장사들의 주총이 특정일에 몰리면 주주들의 권익 확보 차원에서 좋지 않습니다. 투자한 기업들의 주총을 모두 챙기고 싶어도 물리적으로 불가능하거든요. 이 때문에 정부는 상장사 주총 활성화 방안까지 마련했습니다. 소액주주의 주총 참여 환경을 개선하고 주총 분산 개최를 유도하기 위해서랍니다. 소액주주의 주총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증권사 등을 통해 주총 안내를 강화하고 전자투표 참여를 장려하기 위한 유인책도 고민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한국상장회사협의회 등은 매년 주총 집중일을 발표하고 있습니다. 주총 자율 분산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주총 집중일에 주총을 열게 되면 그 사유를 주주들에게 소명하도록 의무를 부과한 것이죠.

이런 노력에도 매년 특정일에 주총이 쏠리는 현상은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상장사들이 주총 공고를 내면서 밝히는 사유도 거의 유사합니다. "사전에 확정된 등기임원의 주요 경영 활동 관련 일정과 외부감사인의 감사 일정, 감사보고서 수령 시점 등 대내외 일정을 고려해 주총 일정을 수립했다"는 겁니다. "연결 대상 종속회사의 재무제표 수령일을 고려해 불가피하게 주총 집중일에 개최하게 됐다"는 설명도 많습니다. "새로 선임할 사외이사 후보자의 참석 일정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는 사유도 자주 보입니다. 결론은 여러 복합적인 사정으로 인해 주총 집중일에 주총을 개최하게 됐다는 겁니다.

상장사들의 사정이 그렇기도 합니다. 올해 같은 경우는 상장사들이 신(新)외부감사법(주식회사 등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여파로 더욱 골머리를 앓았습니다. 주총 일정을 잡기도 어려웠죠. 올해부터는 신 외감법에 따라 자산총액 2조원 이상인 상장사는 내부회계제도에 대해서도 감사를 받아 이번 주총에 감사보고서를 내야 합니다. 기존에는 검토만 받아도 됐지만 올해부터는 사업보고서와 마찬가지로 회계법인의 감사의견을 받아야 하는 겁니다.

국내 대형 회계법인들은 감사 관련 인력을 전년보다 10% 이상 늘렸지만 여전히 쏟아지는 업무를 감당하지 못했습니다. 통상 연초에 회계법인 업무가 집중되는 데다 평소에 비해 과다하게 감사 업무가 더해진 탓입니다. 이렇다 보니 지연되는 감사 일정으로 상장사들은 예년에 비해 더 늦게 주총 일정을 잡게 됐습니다.

올해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까지 발목을 잡았습니다. 3월 초에서 중순 사이에 주총 일정을 잡았던 상장사들조차 시간이 흐르면 코로나19 확산세가 잦아들 것이라는 판단에서 이달 말로 앞다퉈 주총 일정을 변경한 겁니다. 불가피하게 3월 말에 상장사들의 주총이 더 몰리게 된 것이죠.

올해 주총 집중일은 3월 20일, 3월 25~27일, 3월 30일입니다. 유가증권시장 상장사만 보면 현재까지 총 711개 기업이 3월에 주총 일정을 확정했습니다. 이 중 62%인 443개 기업이 3월 4주차에 주총일을 잡았습니다. 주총 분산 프로그램을 시행하기 전보다는 특정일에 주총이 몰리는 현상이 완화되긴 했지만 슈퍼 주총 데이가 여전하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이와 관련 한 상장사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실제 다양한 사정이 발생해서 정말 주총 집중일 밖에 일정이 나오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대놓고 말은 안 하지만 '극성' 개인주주들의 주총장 참석률을 낮출 수 있고, 시장 안팎의 관심도를 분산시킬 수 있어 주총 집중일을 선호하는 측면도 있죠." (끝)/ke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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