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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뒷 얘기

우한 폐렴조차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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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미현 정치부 기자)신종 바이러스 감염을 소재로 한 영화 컨테이젼은 현재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우한 폐렴) 사태와 비슷한 전개를 보입니다. 박쥐에서 옮겨왔을 것으로 추정되는 신종 바이러스, 개발되지 않은 치료제, 사람들의 패닉…. 한국의 현실과는 다른 모습도 있는데요. 바로 정치인들이 등장하지 않는 겁니다. 영화는 전문가 집단이 신종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으려 고군분투하는 데 초점을 맞춥니다. 대통령이 마스크를 쓰고 방역 현장을 돌아다니거나 정부의 무능을 공격하는 야당은 나오지 않습니다. 영화라는 장르 특성상 과장된 측면이 있다 해도 전문가 중심으로 대규모 감염 사태를 막는 미국 사회를 엿볼 수 있습니다.

자유한국당은 우한 폐렴을 정치 공세의 재료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황교안 한국당 대표는 우한 폐렴 대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을 쓰는 정부를 향해 "고질적 중국 눈치 보기에 국민 불신이 더 깊어진다"라고 했습니다. 정부가 중국의 눈치를 보느라 '우한'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도록 했다는 주장입니다.

청와대가 직접 나서서 표현을 고치는 의도가 무엇인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세계보건기구(WHO)가 특정 지역이나 동물 등의 이름을 새로운 감염성 질환에 붙이지 않도록 권고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WHO는 "특정 종교 또는 공동체 구성원들의 반발을 일으키고 무역 장벽을 만들며, 동물 등의 불필요한 학살을 유발할 수 있다"며 "이는 사람들의 삶과 생계에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라고 했습니다.

우한 폐렴 사태를 대하는 더불어민주당의 태도도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는 "성숙한 대응이 중요하다"며 "성급한 논란은 국민과 경제를 패닉에 빠뜨릴 수 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정치권과 언론의 협력이 중요하다. 국민을 더 불안하게 만드는 일이 가짜 뉴스 등 일부 행태로 부적절하게 나타나고 있다"라고 했습니다. 마치 야당과 언론이 국민을 불안하게 한다는 듯한 이야기였습니다.

다시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오릅니다. 정부의 총책임자가 TV에 나와 가짜 뉴스를 퍼뜨리는 블로거와 대담을 하는 장면입니다. 감염병 사태에서 가짜 뉴스가 활개를 치는 건 그만큼 국민이 불안하다는 방증입니다. 타당한 설명과 투명한 정보 공개만이 가짜 뉴스를 무력화할 수 있습니다. 여당의 원내대표가 윽박지른다고 될 일이 아닙니다.
한국에서 감염병 사태가 정치적으로 이용된 건 오래된 일입니다. 지난 2016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MERS)가 확산됐을 때 박근혜 전 대통령이 전화로 의료진과 통화하는 모습이 담긴 사진이 배포됐습니다. 벽에는 '살려야 한다'는 글이 쓰여 있었습니다. 문 대통령이 지난 28일 마스크를 쓴 채 국립중앙의료원을 방문한 사진과 묘하게 닮았습니다. 대통령이 현장을 진두지휘한다는 모습을 국민에게 알리려는 의도이지만, 실질적인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 정치적 행위라는 비판이 나옵니다.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당은 어땠을까요? 민주당 대표를 맡았던 문 대통령은 "박근혜 대통령의 진심 어린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격했습니다. 민주당은 "국민이 메르스와 사투를 벌이고 있는 동안 정부와 대통령은 국민 곁에 없었다"는 대국민 호소문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황 대표는 "모든 사안에 다 개입하고 간섭하던 청와대가 우한 폐렴 사태 때는 눈에 잘 띄지 않는다"라고 비판했습니다. 데자뷔입니다. (끝) / mwis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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