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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산수화 '몽유도원도'의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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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 머니) 비루한 삶에 휴식을 주는 것은 자연밖에 없다. 꽃이 피면 피는 대로, 태양이 작열하면 하는 대로, 붉은 바다를 이루고 있는 가을 산도 아름답고, 속세와 떨어져 있는 듯한 겨울 풍경을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안정을 주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유독 자연의 아름다움을 시나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을 최고로 여겼다. 조선 시대 산수화의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 작품이 안견(安堅)의 <몽유도원도>다.

세종대왕의 셋째 아들 안평대군이 어느 여름날 꿈속에서 무릉도원을 다녀온 후 그 감동을 잊지 못해 안견에게 꿈을 그림으로 남겨달라고 부탁한다. 안견은 사흘 후 <몽유도원도>를 완성했다(무릉도원은 중국의 시인 도연명의 글 <도화원기>에서 비롯된 말로 이 세상이 아닌 별천지를 뜻한다).

그림 왼쪽 평범한 산에서부터 시작하는 무릉도원은 중앙의 기암절벽을 지나 꼬불꼬불한 산길을 따라 걸으면 복숭아꽃이 만발하게 피어 있는 복숭아밭을 만나게 된다. 복숭아밭은 안평대군이 꿈속에서 만났던 장면을 의미하는데 빨간색과 연분홍색으로 채색된 복숭아꽃을 휘어 감고 있는 안개는 현실의 세계가 아닌 이상향을 나타낸다.

안견은 이 작품에서 복숭아꽃을 많이 보여주기 위해 부감법을 사용했다. 정면에서 복숭아밭을 바라본다면 몇 개밖에 그릴 수 없지만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부감법을 사용하면 복숭아밭을 많이 보여줄 수 있어서다. 또한 안견은 무릉도원을 만나는 과정을 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오른쪽에서 왼쪽 방향으로 그렸던 전통 방식에서 벗어나 왼쪽에서 시작해 오른쪽으로 이야기를 전개시켰다.

안평대군은 <몽유도원도>에 감동을 받아 3년 후 당대를 대표하는 학자들과 예술가들에게 그림을 보여주며 시를 짓게 해 안평대군 자신을 비롯해 신숙주, 박팽년 등 22명의 글 23편을 실었다.

안견에 대해 자세히 알려진 바는 없으나 화원 출신으로 당시 도화원의 최고 벼슬인 종6품 선화까지 올라갈 수 있었던 규정을 깨고 정4품 벼슬인 호군까지 지냈을 정도로 당대에도 천부적인 재능을 인정받았다. 안견은 장르를 가리지 않고 재능을 보였지만 특히 산수화에 뛰어났다.

산수화가 발달한 우리나라와 달리 서양에서 풍경화의 역사는 짧다. 중세의 서양화에서 자연은 역사화나 초상화 등의 배경에 지나지 않았었다. 하지만 일부 계층에만 국한된 여행이 19세기 산업이 발달하면서 시민계층에게까지 확산된다. 그들이 그림의 소비계층으로 떠오르면서 여행 중에 보았던 풍경에 대한 욕구가 커져 갔다. 풍경화에 대한 수요가 늘기 시작하면서 화가들은 이상적인 풍경화에서 사실성이 가미된 풍경화를 그리게 된 것이다. (끝) / 출처 한경 머니 제82호. 필자 화가 박희숙

오늘의 신문 - 2024.05.09(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