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의 나라 하면 먼저 네덜란드가 떠오른다. 세계적인 봄꽃 축제도 네덜란드의 큐켄호프 꽃축제를 으뜸으로 꼽는다. 1949년 네덜란드는 옛 백작부인 저택의 텃밭이었던 큐켄호프에 대규모의 꽃 정원을 조성했다. 그 목적은 네덜란드와 유럽 각지에서 온 꽃을 전시함으로써 화훼 산업과 무역을 장려하는 것이었다. 이후 매년 봄이면 수백만 송이의 다양한 꽃이 만발해 장관을 이루면서 세계 최대의 성대한 봄꽃 축제로 발전했다.
이 축제에 등장하는 꽃들 중 주된 종목은 역시 튤립이다. 튤립은 겨울에도 춥지 않고 습한 토양에서 자라기 때문에 네덜란드의 기후 조건에 잘 맞는다. 이런 특성을 이용해 네덜란드는 튤립 재배에 매진했고 세계 제일의 생산국이 됐다. 튤립을 국화로 삼을 만큼 네덜란드에서 이 꽃은 명실상부한 국가적 상징이다.
튤립이 언제부터 이렇게 네덜란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일까? 본래 튤립은 중앙아시아가 원산지로, 오스만제국의 궁정에서 애호하던 꽃이었다. 유럽에는 16세기 중엽 아랍으로부터 전해지기 시작했고, 네덜란드에는 1593년 식물학자 샤를 드 레클루즈(Charles de l’Écluse)가 터키에서 처음으로 들여왔다. 그는 레이든대에서 튤립을 재배, 연구하면서 돌연변이, 질병, 이종교배 등을 이용해 수많은 새 품종을 개발했다.
당시 네덜란드는 역사적인 황금기를 맞아 경제적 호황을 누리고 있었다. 부를 바탕으로 세상에 대한 과학적 탐구가 이어졌으며, 더불어 식물학이나 원예학이 발달했다. 이때 자국에서 개발한 희귀한 튤립 품종들은 학자들에게는 물론 세간에도 높은 관심거리가 아닐 수 없었다. 그중 인기 있는 것은 흰 바탕이나 노란 바탕에 빨강, 자주, 보라 등의 줄무늬나 반점이 있는 것이었다.
새로운 튤립 품종에 ‘총독(Viceroy)’이나 ‘영원한 황제(Semper Augustus)’ 같은 이름을 붙일 정도로 튤립은 모든 꽃 중에서 제일 귀한 대접을 받았다. 튤립의 수요가 늘고 무역이 활발해지자 가격이 상승했고, 사람들은 나중에 되팔아 돈을 벌기 위해 앞다퉈 튤립을 사들였다. 꽃에 대한 관심이 아름다움을 향유하는 수준을 넘어 투기 목적으로 변질된 것이다. 이와 같은 1630년대 튤립에 대한 과열된 투기 현상을 ‘튤립 마니아(Tulipomania)’라고 한다. 당시 카탈로그를 보면 튤립 구근 하나 값이 교사의 연봉보다 20배나 비싼 것도 있었으니 그 열기가 어느 정도였는지 상상을 초월한다.
이즈음 네덜란드에서는 각종 꽃을 상세히 묘사하는 정물화가 크게 유행했는데, 이때 튤립은 중요한 위치에 빠짐없이 등장했다. 이를테면 꽃 그림의 대가 암브로시우스 보스카르트(Ambrosius Bosschaert the elder)는 튤립을 반짝이는 유리병이나 고급스런 중국 도자기에 담아 꽃의 가치를 돋보이게 했다. 튤립은 뾰족한 꽃잎들이 위쪽으로 벌어져 왕관 같고, 노란 꽃술은 황금을, 길쭉한 잎사귀는 칼을 닮았다. 그래서 튤립은 고귀함과 권위, 부와 영원함, 분별력과 용맹 같은 최고의 가치들을 상징한다.
보스카르트는 튤립이 다른 꽃들과 함께 어우러지게 묘사하기도 했는데 꽃병 뒤에 푸른 하늘과 자연 풍경을 은은하게 배치하는 것은 그가 개발한 독특한 형식이다. 야외 배경은 깊은 공간을 열어주고 꽃들에게 신선한 기운을 불어넣으며, 그 꽃들이 본래 자연에서 왔음을 상기시킨다. 그와 동시에 이제 자연을 떠나 꽃병 속에서 ‘죽은 자연(정물)’이 됐음을 깨닫게 한다.
이런 정물화에는 곤충이나 조개껍데기도 자주 등장한다. 식물에는 곤충이 따르기 마련이므로 지극히 자연스럽다고 할 수 있지만 사실 이들은 제각기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애벌레는 지상의 것에 대한 탐욕을 나타내며 잠자리와 도마뱀은 악을 상징하고 나비는 자유로운 영혼을 뜻한다. 곤충과 도마뱀은 허물을 벗기 때문에 일시적인 삶과 부활을 의미하기도 한다. 한편 조개껍데기는 먼 외국에서 가져온 것으로 네덜란드의 해외 무역을 암시하며 실제로 호사가들이 즐겨 수집하곤 했다. 그러나 조개껍데기란 생명이 빠져나간 것이므로 해골처럼 죽은 잔해에 지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꽃병 속에 넘치도록 꽂힌 꽃들도 모두 활짝 피어 절정의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지만 곧 시들어 버릴 운명에 놓여 있다. 네덜란드 화가들은 이처럼 정밀한 꽃 그림 속에 ‘죽음을 기억하라(Memento mori)’는 인생에 대한 교훈을 잊지 않고 담아 놓았다. 이는 세속적인 것에 대한 과도한 욕심을 경계하라는 말로 ‘튤립 마니아’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후 튤립 구매가 줄어들면서 갑자기 시장 가격이 폭락하기 시작했다. 대혼란이 일어나자 정부에서 조정에 들어갔고, 미리 어음을 주고 비싼 튤립을 산 사람들은 엄청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이 현상을 일컬어 ‘튤립 파동’, ‘튤립 버블’이라 하며, 오늘날까지도 자본주의 경제의 단면을 보여 주는 초기 사례로 거론되고 있다.
실제로 튤립 파동은 사람들의 헛된 꿈에 일침을 가했다. 그것은 잠시 경제적 타격을 입혔지만 애초에 풍부한 자본이 있었기에 돈이 몰리면서 생긴 현상이기도 했다. 네덜란드는 계속 원예업을 발전시켜 오늘날까지 또 다른 열성으로 튤립을 키우고 있다. 성대한 튤립 축제를 열어 관광객들이 아름다운 환상에 빠지는 황홀한 경험을 좇는 동안 막대한 경제적 수입과 문화 국가의 이미지라는 현실적 이익을 얻는다.
이제 튤립 축제는 네덜란드뿐 아니라 전 세계로 퍼졌고, 우리나라에서도 해마다 여러 곳에서 튤립 축제가 크게 열린다. 아름다운 꽃들의 잔치에서 우리는 무엇을 얻을 것인가. 감춰진 역사와 상징적 의미, 상업적 이익을 생각한다면 꽃의 무게는 한 송이도 결코 가볍지 않다. 그러나 무게를 알고 욕심을 거둔다면 그저 코끝을 스치는 향긋한 바람으로도 가히 족하지 아니한가. (끝) / 출처 한경 머니 제108호 . 필자 박은영 미술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