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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기다리는 여인들의 삶을 그린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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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 머니)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여인의 아름다움은 찬미의 대상이다. 동서양의 문화가 다르다고 할지라도 여인의 아름다움을 견줄 만한 피사체가 세상에는 없기 때문이다. 서양화에서 여인의 아름다움을 극찬한 화가가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Jean Auguste Dominique Ingres·1870~1867)라면 우리나라에는 신윤복(申潤福·~1813년 이후)이 있다. 표현 방법은 다르지만 두 거장은 여인의 아름다움을 고전적이면서 우아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여인의 아름다움을 칭송한 앵그르의 대표적인 작품이 <모아테시에 부인의 초상>이다. 붉은색 꽃이 수놓인 드레스를 입고 있는 모아테시에 부인은 거울을 등지고 핑크빛 장의자에 앉아 있다. 거울은 부인의 부드러운 어깨만 비추고 있어 복잡한 꽃무늬 장식의 드레스를 입은 앞모습과 대조를 이루고 있으면서 여인의 몸을 강조한다. 모아테시에 부인의 동양풍 장신구는 당시 오리엔탈리즘이 유행했음을 나타낸다. 장신구와 더불어 최신 유행 드레스는 부인의 부유함을 강조한다.

앵그르의 이 작품은 12년에 걸쳐 모아테시에 부인이 28세에 시작해 35세에 완성됐다. 그는 자연주의 거장답게 장신구, 부채, 그리고 소파를 덮은 벨벳 천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앵그르는 모델의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그녀가 지니고 있는 품위를 잘 표현해 일생동안 여인들의 초상화 주문이 끊이지 않았다.

앵그르의 여인 초상화에 장식적인 요소가 많다면 여인의 아름다움만 강조한 작품이 신윤복의 <미인도>다. 얹은머리를 한 여인이 입술을 꼭 다문 채 옷고름에 맨 노리개를 만지작거리며 서 있다. 풍성한 치마와 대조적으로 남자주색 선을 댄 삼회장저고리는 작은 듯 꽉 끼며 저고리 사이로 삐져나온 붉은색의 끈은 조여 맨 치마 윗단을 강조한다. 머리를 묶고 있는 자주색 댕기와 노리개의 청색 끈은 외모에 신경을 쓰는 여인임을 암시한다. 여인의 초승달 같은 눈썹, 마늘쪽 같은 코, 앵두 같은 입술은 여인이 조선시대 최고 미인임을 나타낸다.

신윤복은 여인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머리카락 한 올 한 올까지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는데 그는 “그린 사람의 가슴에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 실제와 똑같은 모습을 그려 낼 수 있었다”라는 말로 사실적으로 그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밝혔다. <미인도>는 우리나라 초상화 기법으로 그린 그림으로 여인의 아름다움을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기생집을 자주 드나들며 유흥을 즐겼던 신윤복은 <미인도>뿐만 아니라 기방문화를 <혜원전신첩>으로 남겼다. <혜원전신첩>은 국보 제135호로 모두 30점의 작품이 수록돼 있다.

그림 속 인물들의 마음까지 잘 나타냈다고 해서 전신첩이라고 불린다. 전신첩의 등장인물이 총 162명으로 여자만 72명 등장한다. 단원 김홍도의 <단원풍속집>의 경우 184명 등장인물 중에 여인이 20명 등장하는 데 비해 전신첩의 여인들은 신윤복의 관심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의미한다.

조선시대 기생은 지금과 달라 글과 그림, 그리고 공연이 뛰어났어야 했으며 일제강점기 때 기생조합이 만들어졌다. 일패, 이패, 삼패로 나누어졌으며 양산의 색깔로 구별했다고 한다. 이패부터는 공연예술을 담당했으며 기생의 공연을 보기 위해서는 미리 예약했어야만 했다. 일패는 기예는 물론 미모도 출중한 기생을 말한다. 일패는 시간당 돈을 받았으며 모시러 와야만 행차했다.

신윤복이 기방문화를 그린 작품 중 여인들의 사랑을 표현한 작품이 <월하정인도-달밤의 연인>이다. 초승달이 뜬 캄캄한 밤, 담 모퉁이 아래에서 여인은 옥색 쓰개치마를 꼭 여미고 앞만 바라보고 있고, 오른손으로 초롱을 든 남자는 여인을 바라보면서 왼손으로는 허리춤을 뒤적거리고 있다.

저고리 깃과 끝동, 자주색 신발은 여인이 남자를 만나기 위해 멋을 부리고 나왔음을 나타내며, 남자가 신은 가죽신의 코와 뒤축에 옥색은 남자가 한량임을 의미한다. 여인이 몸은 돌리고 있지만 버선 신은 발이 남자에게 향하고 있는 것은 마음이 남자에게 향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며, 붉어진 뺨은 연정을 의미한다.

신윤복은 두 사람의 사랑을 강조하기 위해 배경을 어스름하게 표현했다. 그림 옆 ‘달빛 고요한 야삼경. 두 사람의 속은 두 사람만 알지’라는 김명원의 시구는 정확하게 그림 속 연인들이 누구인가를 언급하지 않았어도 김명원이 사랑했지만 양반의 첩으로 들어간 기생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두 사람은 양반 몰래 만나다 스캔들을 일으켰다.

앵그르와 신윤복은 평범한 여자들보다는 사랑을 기다리고 있는 여인들의 삶에 주목했다. 앵그르가 여인의 일상을 상상해서 그렸다면 신윤복은 그들의 실제 생활을 그리고 있다. 신윤복은 조선시대 풍속화가로 한량과 기녀들 사이에 사랑과 일탈을 은밀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의 파격적인 소재는 산수화 일색이었던 조선 미술을 다양하게 만들었다. (끝) / 출처 한경머니 제80호. 필자 박희숙 화가.

오늘의 신문 - 2024.05.02(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