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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식이 법'을 둘러싼 여야 공방 팩트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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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미현 정치부 기자)어린이 보호구역(스쿨존)에서 일어난 어린이 대상 교통사고에 가중처벌을 가능하도록 한 ‘민식이 법’을 두고 여야 공방이 거셉니다. 문재인 대통령까지 지난 2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안타까운 사고로 아이들을 떠나보낸 것도 원통한데 우리 아이들을 협상 카드로 사용하지 말라는 절규까지 하게 만들어선 안된다”고 했는데요. 자유한국당은 민식이 법이 처리되지 못하는 건 민주당 탓이라며 한국당에 책임을 돌리는 건 ‘가짜 뉴스’라고 주장했습니다. 민식이 법을 둘러싼 여야 주장이 사실인지 따져 봅니다.

① 한국당이 민식이 법에 필리버스터를 신청했다?

사실이 아닙니다. 지난 29일 국회 본회의에 민식이 법이 오를 예정이었습니다. 이날 오후 2시 본회의가 열리기 전 한국당은 상정 예정된 모든 법안에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를 신청했습니다. 같은 시각 민식이 법은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심사 중이었습니다. 법사위는 오후 1시43분에 시작해 2시36분에 끝났는데요. 법사위가 진행되는 도중에 ‘필리버스터 사달’이 난 겁니다.

한국당의 필리버스터 무더기 신청 뒤 민주당의 본회의 출석 거부로 본회의가 파행되면서 민식이 법 처리는 무산됐습니다. 다른 진보 야당도 공격에 가세했습니다. 여영국 정의당 원내대변인은 한국당의 필리버스터 신청에 대해 “정치개혁·사법개혁 법안은 물론이고 본인들이 처리를 약속한 비쟁점 법안인 ‘유치원 3법’과 ‘민식이 법’과 ‘해인이 법’ 등 어린이 생명 안전법, 또 청년 기본법, 과거사법, 소상공인 보호법안까지 막겠다는 것”이라며 “한 마디로 정신 나간 짓”이라고 했습니다. 한국당의 필리버스터 신청 법안 중 민식이법이 포함된 듯한 발언이었습니다. 여기에 민식이 부모 등 스쿨존 사고 피해 어린이 유가족이 한국당을 비판하고 나서면서 오해는 깊어졌습니다.

② 민주당이 민식이 법 통과를 막고 있다?

한국당은 민식이 법 통과를 위한 ‘원포인트 본회의’를 열자고 제안했지만 민주당이 거부하고 있습니다. 이를 두고 정작 민주당이 민식이 법 통과를 막고 있다는 게 한국당의 주장입니다. 민주당은 한국당의 필리버스터 철회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민주당이 결단을 내려야 본회의가 열리겠지만, 한국당도 책임을 피할 수 없습니다. 민식이 법을 협상의 지렛대로 삼고 있는 건 한국당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저희는 수많은 민생 법안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민식이 어머님 아버님, 태호·유찬이 어머님, 아버님, 저희는 모두 이 법안을 통과시키고 싶다”면서도 “국회의장께 제안한다. 선거법을 상정하지 않는 조건이라면 저희가 필리버스터를 신청한 법안에 앞서서 우리 민식이 법 등을 먼저 상정해서 통과시킬 것을 제안한다”고 했습니다.

③ 민식이 법은 운전자에게 과도한 처벌을 규정한 법이다?

여야 공방과는 별개로 뒤늦게 민식이 법의 내용에 대한 논란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민식이 법으로 불리는 특정범죄 가중처벌법 개정안에서 스쿨존 내 어린이 사망사고 발생 시 ‘무기 또는 3년 이상 징역’으로 처벌하도록 한 규정이 과도하다는 주장입니다. 안전 수칙을 지킨 운전자가 이런 처벌을 받는 것은 부당하다는 겁니다.

민식이 법은 스쿨존 내 어린이 사고 시 가중처벌을 가능하도록 했지만, 조건이 있습니다. ‘도로교통법 제12조 제3항에 따라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같은 조 제1항에 따른 조치를 준수하고 어린이의 안전에 유의하면서 운전하여야 할 의무를 위반한 경우’입니다. 즉 시속 30㎞ 이내로 운행하는 등 안전수칙을 지켰는데도 사고가 발생했다면 민식이 법의 적용을 받지 않습니다.

④ 민식이 법을 발의한 국회의원이 교통범죄 전과가 있다?

민식이 법을 대표발의한 강훈식 민주당 의원은 2003년 12월 무면허 운전으로 도로교통법을 위반해 100만원 처분을 받았습니다. 법안 제안자에 이름을 올린 이용득 민주당 의원 역시 도로교통법과 교통사고처리 특례법 위반 등의 전력이 있습니다. 조정식 민주당 의원 또한 2000년 7월 음주 측정을 거부하다 도로교통법 위반으로 150만원의 벌금형을 받았습니다. 이들 의원이 민식이 법을 발의할 자격이 있느냐는 게 일각의 주장입니다.

교통 범죄를 저지른 이들 국회의원들은 그 자체로 비판 받아 마땅합니다. 하지만 스쿨존 내 어린이 교통사고를 줄이려는 민식이 법의 취지까지 퇴색시키는 건 부적절합니다. 공론장에 오른 의견을 검토하는 것이 아닌 의견을 낸 이들의 자격을 따져 묻는 건 또다른 정치적 논란만 낳을 뿐입니다. 교통범죄 전력이 있는 자들은 향후 선거에서 검증하고 걸러낼 기회가 있을 겁니다. 민식이 법을 둘러싼 논의는 우리 사회가 어린이를 보호하는 데 얼마나 힘을 쓰고 있는지 따져보는 것으로 확대돼야 하지 않을까요. (끝)mwis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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