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바로가기

뉴스인사이드

취재 뒷 얘기

"비가 올 수도 있고, 안 올 수도 있다?"…기상청이 즐겨쓰는 단어 '대기불안정'의 의미는 뭘까

글자작게 글자크게 인쇄 목록으로

(박진우 지식사회부 기자) 요즈음 기상청이 즐겨쓰는 단어가 있습니다. ‘대기불안정’입니다. 기상청의 ‘통보문’을 보면 날씨 예보 뒤에 꼭 붙어나오는 단어입니다. ‘대기불안정’으로 곳에 따라 국지성 호우가 내릴 수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통보문을 보는 사람들은 궁금합니다. ‘비가 온다는 거야, 안 온다는 거야.’

대기불안정이란 용어는 기상학에서 쓰이는 단어를 그대로 가져온 것입니다. 영어로 ‘convection instability(대류불안정)’입니다. 지표면에서 뜨거워진 공기는 대기 상층으로 올라가서 식고, 차가워진 공기는 다시 지표면으로 내려옵니다. 이를 대류 현상이라고 부르죠. 대기가 안정되려면 따뜻한 공기는 위에, 차가운 공기는 아래에 있어야 합니다. 목욕탕에 가면 상대적으로 따뜻한 물이 수면쪽에 머무르는 것처럼 말이죠.

대기불안정은 따뜻한 공기가 아래, 찬 공기가 위에 있는데 그 기온차가 극심한 경우 나타납니다. 대류 현상이 활발해지는 것입니다. 지금 중부지방의 지표면 기온이 30도를 웃도는 반면, 대기 상층인 5㎞ 상공은 영하 2.5도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평상시에는 대기 상층과 지표면의 기온차가 20도 안팎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올해는 유별난 셈입니다. 고온다습한 지표면의 공기가 올라가면서 상층에서 내려오는 찬 공기와 마주치면 순식간에 국지성 호우로 변합니다.

대기가 머금을 수 있는 수증기량은 기온에 따라 다릅니다. 같은 면적의 대기라도 고온에서는 더 많은 수증기가 들어가는 반면 상대적으로 저온의 공기가 머금을 수 있는 수증기량은 적습니다. 대기의 온도가 고온에서 저온으로 큰 폭으로 떨어지면 수증기도 넘치게 됩니다. 이 수증기들이 순식간에 모이면서 국지성 호우가 되는 것입니다.

도심의 기온이 교외에 비해 높게 나타나는 ‘열섬현상’은 중부지방에서도 유독 서울에서 대기불안정과 국지성 호우가 잦아진 원인으로 꼽힙니다. 열섬현상도 서울 전체에서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서울 안에서도 기온이 균질하지 않습니다.

서울 종로구나 중구 등 특정 지역의 기온만 유달리 상승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그 지역의 따뜻한 공기만 집중적으로 상승하게 됩니다. 이 공기가 상승하고 남은 빈 자리로 다시 뜨거운 공기가 몰려듭니다. 이 지역에서 대기 상층의 찬 공기와 뜨거운 공기가 부딪치면 서울 안에서도 몇개 자치구 단위로만 국지성 폭우가 쏟아지게 됩니다.

북극에서 내려온 찬 공기도 서울의 대기불안정이 심한 이유입니다. 북극에서 내려온 찬 공기가 고온다습한 북태평양 기단을 밀어내면서 두 세력이 서울에서 맞닿고 있습니다. 그럼 북극에서 한반도까지 찬 공기가 내려오는 이유는 뭘까요.

지구온난화가 원인이라는 게 기상청의 설명입니다. 지구온난화로 베링해의 해수면온도가 올라가면서 빙산이 예년보다 많이 녹았다고 합니다. 빙산이 녹으면 인근 지역의 공기가 부풀어오릅니다. 베링해의 차가운 공기가 한반도까지 밀려내려오면서 지표면과의 심한 기온차를 유발하고, 대기불안정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태풍이 지나가고 나면 국지성 호우가 예년보다 잦고, 세기도 강해질 수 있다고 합니다. 올해만 나타나는 현상은 아니고 수년간 이같은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장마가 사라지는 대신 국지성 호우가 본격적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비가 온다는 걸까요. 안타깝지만, 기상청도 답이 없습니다. 두세시간 전에야 국지적으로 비구름이 생겨나고 있다는 걸 예측할 수 있을 뿐이죠. (끝)/jwp@hankyung.com

오늘의 신문 - 2024.05.06(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