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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오는 빈 살만(MBS) 왕세자, 트럼프 美 대통령도 '못 건드리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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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미 대통령 "MBS와 며칠 전에도 통화…카쇼끄지 얘기 안 꺼내"
“사우디는 미국 제품 많이 사주는 동맹국”


(선한결 국제부 기자) 최근 유엔 특별보고관이 사우디 아라비아 실권자인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MBS·사진)를 언론인 살해 사건 배후로 지목했습니다. 미국 언론에 사우디 왕실을 비판하는 칼럼을 쓴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살해를 사주하거나 지원했다는 겁니다. 유엔은 미국에도 추가 조사를 요구했는데요. 평소엔 강경 발언으로 이름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 등도 이 사안을 입에 올리기 껄끄러워하는 분위기입니다. 이유가 뭔지 알아봤습니다.

지난 며칠간 트럼프 대통령과 폼페이오 장관은 빈 살만 왕세자를 비롯해 사우디 왕실 고위 인사들과 교류를 늘렸습니다. 24일(현지시간)엔 폼페이오 장관이 사우디 왕과 만나 회담을 가졌습니다. 하지만 국제 사회 ‘핫 이슈’인 카슈끄지 살해 사건 얘기는 대화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날 알자지라는 사우디 관리를 인용해 “폼페이오 장관이 사우디 왕 앞에서 빈 살만 왕세자의 카쇼끄지 살해 사건 연루 가능성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고 보도했습니다.

전날 트럼프 미 대통령도 빈 살만 왕세자에 대해 살해 사건 관련 추가 조사를 벌이지 않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지난 23일(현지시간) 미국 방송매체 NBC와의 인터뷰에서 “(카슈끄지 살해 사건은) 이미 심도있는 수사를 거쳤다고 본다”며 추가 조사를 벌일 가능성을 일축했습니다. 진행자가 ‘유엔은 미국 연방조사국(FBI)가 카슈끄지 살해 사건과 빈 살만 왕세자 등에 대한 조사에 나서주길 바란다고 밝혔다’고 말하자 “이 문제는 이미 많은 이들이 들여다 본 것 같다”며 “나도 여러 보고서를 읽었다”고 답했죠.

유엔 등 국제 사회 일각에선 카슈끄지 살해 사건에 미국 수사기관이 나서야 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카슈끄지가 사우디 왕실을 비판한 칼럼을 낸 언론이 미국의 워싱턴포스트였고, 카슈끄지가 미국 당국이 과학·예술·교육 등에서 뛰어난 이들에게 주는 O1비자 보유자로 주로 미국에서 체류했기 때문입니다. 그의 자녀 넷 중 두 명은 미국 시민이기도 합니다. 지난 19일 카슈끄지 살해 사건 정황 관련 약 100쪽 분량 보고서를 발표한 아녜스 칼라마르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 특별보조관은 국제사회가 빈 살만 왕세자의 국외자산을 동결하고 추가 수사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반면 미 행정부는 아주 미온적인 반응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NBC와의 인터뷰 내내 빈 살만 왕세자를 적으로 돌릴 마음이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오늘(21일) 아침에도 빈 살만 왕세자와 통화해 좋은 대화를 나눴다”며 “미국이 사우디를 비롯한 중동권을 보호하는 데에 드는 비용이 큰 만큼 사우디 등이 대가를 내야 한다는 얘기를 했다”고 밝혔습니다. 카쇼끄지 살해 사건 보고서에 대해 논의했냐는 질문엔 “그 얘기는 꺼내지 않았다”며 “그런 얘기를 하려고 전화를 건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날 인터뷰 진행자가 “사우디의 ‘나쁜 태도’를 묵인하겠다는 것이냐”라고 묻자 트럼프 대통령은 “중동은 잔인하고 난폭한 일이 많이 일어나는 지역”이라며 “이란 등 다른 나라도 사우디 만큼은 일(민간인 사상)을 벌이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같은 결정이 ‘비즈니스’를 위한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는 이날 사우디에 미국 무기를 계속 팔겠다는 입장도 재차 강조했습니다. 최근 미국 의회 상원이 트럼프 행정부의 사우디 무기 수출을 저지하는 결의안을 통과시킨 것을 의식한 발언으로 풀이됩니다. 당시 상원 의원들은 사우디 정부의 카슈끄지 살해 사건이 국제인권법을 어겼다는 점과, 사우디가 주도하는 예멘 내전에서 민간인 사상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 등을 무기 수출 반대 근거로 들었습니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의 생각은 미 상원과 다릅니다. 그는 “사우디가 구입하는 군사 장비 규모는 1500억 달러(약 173조7000억원)에 달한다”며 “사우디는 미국 제품을 많이 사주고 있고, 나는 이를 중요하게 여긴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사우디에 물건을 팔아서 생기는 일자리도 많다”고 덧붙였습니다. 또 “미국이 사우디와의 거래를 끊는다면 사우디는 대신 러시아나 중국에서 무기를 사들일 것”이라며 “나는 ‘그들과 비즈니스를 하고 싶지 않다’고 말할 만큼 멍청하지 않다”고 했습니다.

이는 그간 미국과 중동 현지 외신 등이 예상한 것과 같은 반응입니다. 전문가들은 석유 자원을 바탕으로 한 사우디의 국제적 영향력이 크다보니 유엔 특별보고서가 국제 사회에 별 영향력을 주지 못할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올해 33살인 빈 살만 왕세자는 사우디 최대 실세로 꼽힙니다. 사우디의 제1 왕위 계승자로 사우디 부총리와 국방장관을 겸직하고 있습니다. 그는 사우디의 대규모 경제 계획인 ‘비전 2030’을 계획하고 진두지휘하고 있습니다. 금융·군수·물류·관광 등 각종 민간 산업을 적극 육성하고 해외 투자도 늘리겠다는 게 계획의 골자입니다. 이때문에 국제 사회는 투자계 ‘큰손’인 빈 살만 왕세자 심기를 거스르길 꺼려하는 분위기입니다.

빈 살만 왕세자는 오는 26~27일 청와대 공식 초청을 받아 한국을 방문합니다. 26일 문재인 대통령과 회담을 비롯해 여러 기관·기업 수장과 만날 예정입니다. 이 자리에서 어떤 얘기가 오갈지 궁금해집니다. (끝) / alwa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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