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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노동권,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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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민 캠퍼스 잡앤조이 기자/박장은 대학생 기자) 최근 우리 삶의 전반에 지식 기반 서비스가 스며들면서 고객과의 면대면 소통을 중요시하는 서비스업이 늘어나고 있다. 이에 실제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숨기고 양질의 업무를 수행해야 하는 감정노동 종사자들은 전보다 더 커진 부담감을 안고 일하고 있다. 감정노동자들은 자신의 감정을 보호받지 못한 현실 속에서 지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대형 쇼핑몰의 안내원으로 근무하며 감정노동을 경험했다는 김지현(고려대 사회학·26) 씨는 가장 어려웠던 점으로 근무 조건 유지를 꼽았다. 김 씨는 “감정은 신체적, 환경적으로 영향을 받는다는 점에서 고객에게 조금의 흐트러짐을 보여주면 안 된다는 부담감이 컸다”면서 “노동자들의 감정도 돈을 받고 고용된 것이므로 인내하고 조절해야 한다는 인식이 은연 중에 있다”라고 덧붙였다. 이처럼 대부분의 감정노동자들은 고객에게 좋은 감정을 심어주기 위해서 늘 미소띤 얼굴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듯 서비스 노동은 고용주와 노동자의 측면이 아닌, 고용주·노동자·소비자의 형태로 이루어진다. 노동자와 소비자의 면대면 서비스가 가장 중요하며 해당 노동은 고객의 만족을 우선하기 때문에 감정노동의 수준이 매우 높다. 이에 대해 우명숙 고려대 행정전문대학원 교수는 “서비스 노동에 있어 감정노동자들은 주로 낮은 지위로 인식돼 노동권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편”이라면서 “노동자의 감정 상품화가 부당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서비스업의 증가로, 감정노동자들이 늘어남에 따라 기업 간 서비스에 대한 강도도 높아지고 있다. 실제로 전화 업무의 경우, 익명성을 담보로 도를 넘는 고객들의 불만 토로에 노동자의 감정적 부담은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 기업 사무직에서 일할 당시 이와 같은 경험도 한 적 있었다는 김 씨는 “인격적 모독 수준의 감정노동을 경험해도 부당함을 표현하지 못하는 환경이 안타까웠다”라고 말했다. 고객의 만족이 서비스의 질이 좋고 나쁨을 결정한다는 점을 증명하는 한 마디다. 이에 대해 우 교수는 “서비스 상품의 소비를 촉진하기 위해 고객의 기분을 좋게 하는 감정노동이 많이 요구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감정노동자의 고충이 증가하면서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노동자와 소비자의 조화를 강조하는 ‘워커밸(worker-customer balance)’이 부상하고 있다. 모두가 감정노동자이자 감정소비자라는 인식으로 나타난 워커밸은 ‘갑질’ 이슈에 대항해 새로운 노동문화를 보장한다는 측면에서 인기가 높다. 워커밸이 단순한 유행이 아닌 하나의 노동 이슈로 부상하기 위해서는 올바른 근무 환경을 만들기 위한 고용주·노동자·소비자의 협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감정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기업 차원의 노력은 다양하게 이뤄지고 있다. 롯데호텔은 ‘감정노동자 보호법’으로 불리는 산업안전보건법의 개정 홍보와 악의적인 갑질에 대한 인식 전환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호텔리어의 고충을 그린 웹드라마 ‘아찔한 손님’을 제작했다. 이외에도 고객의 부당한 요구 시 근무자의 정당한 업무 중단을 알리는 안내문을 게시해 명시적인 차원의 효과를 얻고 있다. 이와 관련해 김재성 롯데호텔 홍보 담당자는 “대표적인 감정노동 직군으로 분류되는 호텔 서비스 종사자를 위한 방안을 도입하는 데 노력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호텔은 고객의 만족도를 가장 우선시하는 산업군이다. 객실과 서비스라는 총체적인 상품을 판매하기 때문에 자체적인 평가 시스템과 기업 내 프로세스 과정으로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한다. 이렇듯 호텔은 기본 업무와 고객에 맞춘 확장된 직무들을 수행하며 고객들의 재방문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각기 다른 국적과 성향을 지닌 고객들에게 언제나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리란 쉽지 않다. 박용규(호텔리어·가명) 씨는 “고객마다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항상 컨디션을 유지하려 노력하는 편”이라며 “매일 다른 고객들을 만나지만 근무 이외에도 서비스를 생각해야 하는 게 쉽지 않다”라고 덧붙였다.

서비스업의 증가는 곧 감정노동자의 증대이다. 똑똑한 소비자의 등장과 고객 맞춤형 서비스의 확대는 서비스산업에서 노동자의 감정 상품화가 커다란 노동 이슈로 등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감정노동자가 개인의 감정을 보호하며 노동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서는 워커밸 트렌드가 단편적인 유행으로 머무르지 않아야 한다. 우 교수는 “궁극적으로 감정의 상품화에 대한 여러 철학적, 윤리적 고민도 필요하겠지만 노동권의 차원에서 이들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가 시급하게 해결되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끝) / min50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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