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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치마·병따개·생맥주 외상도 리베이트? 술집 사장님들 뿔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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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세청 '주류거래질서 확립' 개정안 "졸속 고시다" 비판
주류 업계 수십 년 이어져온 '관행' 뜯어보니

(김보라 생활경제부 기자) 리베이트. 뭘 사거나 서비스 받은 대가의 일부를 되돌려주는 돈입니다. 영어론 ‘초과 이익의 환불’ 정도로 해석됩니다. 한국에선 부정적인 의미가 강합니다. 제약업계 리베이트, 건설사 리베이트 등 과거 일들 때문에 ‘검은 돈’이나 ‘뇌물’과 비슷한 뜻으로 느껴지는 단어지요.

국세청이 지난 3일 이런 발표를 했습니다. “건전한 술 유통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 주류 리베이트를 뿌리 뽑겠다.” 그러면서 리베이트를 준 사람과 받은 사람 모두 처벌 받는 ‘쌍벌제’를 골자로 개정안을 고시했습니다. 당장 다음 달부터 시행된다고 합니다. 이 말만 놓고 보면 두 가지 생각이 듭니다. ‘정의롭고 깨끗한 사회가 오겠구나’와 ‘도대체 주류 업계가 얼마나 썩었길래…’.

이 법 시행의 준비기간은 딱 한달. 기업들은 도매상에 납품하는 가격을 바꾸고, 영업직 직원들을 재교육하느라 바빠졌습니다. 도매상과 소매점들에 이야기가 퍼진 건 이달 중순께. 전국 술집 사장님들은 우왕좌왕 난리가 났습니다. 호프집, 치킨집 등 외식 자영업자들이 모이는 인터넷 커뮤니티에 ‘법 시행 전인 6월까지 해야 할 일’이란 제목으로 정보 공유와 토론이 시작됐습니다. 7월부터 도매상과 제조사로부터 받아온 ‘각종 혜택’들이 뚝 끊길 테니까요. 도매상과 술 제조유통사 전화는 요즘 매일 불이 난답니다.

국세청이 ‘주류 시장 질서를 무너뜨리는 불법 리베이트’라고 본 것들이 무엇이 있는 지, 한국의 술 유통 관행은 어땠는지 따져보겠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1. 서울 강남 지역서 한달 1만 병 파는 도매상, 한달 1병 겨우 파는 시골 도매상보다 싸게 납품하면 “불법”

서울 강남 지역 핵심 상권에 한달에 1만 병 이상 술을 공급하는 한 도매상이 있습니다. 술 회사 A에게는 ‘큰 손’입니다. 이 도매상은 사업을 유지하기 위해 탄탄한 영업조직을 갖추고 지역 상인들과의 네트워크, 소위 말해 ‘영업장 관리’를 잘 해오던 곳입니다.

A회사에게는 거래처가 또 있습니다. 강원도 고성 지역에 한 달에 1병 정도 받아가는 도매상. A사의 영업사원은 그 동안 강남 도매상에는 10박스 주문하면 1박스를 더 주거나, 박스당 가격을 1~2만원 할인해 주는 혜택을 줬습니다. 강원도 고성의 도매상은 상대적으로 비싼 가격에 사갔지요. 물류비와 영업관리 비용 등을 따지면 당연한 시장 원리라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7월부터 이런 영업 활동은 불법이 됩니다. A사 영업사원과 강남 도매상 모두 처벌의 대상입니다. 국세청은 ‘동일 시점, 동일 가격’을 고시했습니다. ‘전국의 1164개 도매상에 납품하는 제품은 그 규모와 지역 상관 없이 모두 같은 가격이어야 한다’는 겁니다.

보통 주류는 월초, 또는 월말에 정기적으로 도매상에 출고가 됩니다. 월말에 재고가 많다면 큰 도매상에 싸게 풀기도 하지요. 매월 출고량을 기준으로 할 때 모두 같은 가격이어야 한다는 게 이번 개정안의 핵심입니다.

시장경제 체제에서 모든 상품의 가격이 인터넷 판매가, 백화점가 등 채널별로 전부 다른데 술 가격은 모두 통일해서 공급하라?

2. 유통기한 임박한 맥주, 한 도매상에 반값에 팔아달라 요청하면 “불법”

맥주에는 ‘맛이 좋은 기간(상미기한)’이라는 게 있습니다. 보통 만든 지 3개월에서 6개월. 유통기한은 1년 정도 입니다. A수입사는 유럽에서 맥주를 수입합니다. 배를 타고 와서 통관을 거치면 이미 ‘맛 좋은 기간’이 이미 1~3개월 정도 지나지요. 유통기한이 6개월 이하로 남으면 보통 대형마트나 편의점에서는 받아주지도 않습니다. 그럴 때 이들은 잘 알고 지내던 도매상을 찾아갑니다. “유통기한 3개월 정도 남은 것들인데, 이거 반값 할인 행사 한번 해달라”고 합니다. 안 그러면 이 재고 부담을 수입사가 다 떠안아야 하지요. 개정안 제 5조 1항에 따르면 이것도 불법입니다. 에누리와 할인 자체가 불법으로 규정되어 있으니까요.

3. 술 10박스 주문해서 1박스 덤으로 주면 “불법”

위스키는 보통 ‘식스팩’으로 유통됩니다. 한 박스 안에 6병씩 들어있다는 이야기. 위스키 업계는 ‘덤’의 개념으로 세븐팩, 에잇팩까지 만들었습니다. 위스키 시장이 10년째 내리막길을 걷고 있어 제조사들이 도매상과 소매상들을 위해 만들어낸 고육지책이었습니다. 이것도 불법이 됩니다. ‘덤’은 불법이거든요. 그래서 10박스 주문한 도매상 사장에게 1박스를 더 얹어주는 것도 앞으로는 금지됩니다.

4. 술 회사 직원이 스티커·병뚜껑 수거하고 판매장려금 주면 “불법”

술집 주인이 양주의 병마개나 RFID 스티커를 모아뒀다가 도매상이나 주류회사 영업사원에게 주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면 일정 부분 환급해주는 관행이 있었습니다. 술집 주인 입장에선 “당신들로부터 납품받은 술을 업장에서 정상적으로 잘 팔았다”는 뜻으로 주는 것이고, 영업사원도 ‘상호 신뢰를 확인할 수 있는 전통’ 정도로 여겼다고 합니다. 앞으로는 이런 회수 대가를 받는 것, 불법입니다. 그래서 지금 영업사원들은 떨고 있습니다. 영업력과 가격 협상력 등이 사라지면 영업사원의 존재의 이유가 없어질 수 있으니까요.

5. ‘생맥주 채권’을 아십니까…외상으로 주던 술 “불법”

주류 도매상들은 소매점을 창업하는 경우 ‘자사 맥주 구매하는 조건’으로 우대 조건에 대출을 해주기도 합니다. 자금이 부족한 창업자와 안정적인 공급처가 필요한 도매상이 사적으로 거래하는 것입니다. 또 맥주를 일정기간 받는 조건으로 ‘외상’을 하는 ‘생맥주 채권’이란 것도 있습니다. 이 행위도 모두 불법으로 간주됩니다. 그래서 지금 시끄럽습니다. 기존 브랜드와 생맥주 대출 기간이 2~3개월 남은 동네 호프집 사장님들은 법 시행 전인 6월 안에 좋은 조건으로 다른 브랜드에 갈아타야 하는 건지 골치가 아프다고 합니다.

6. 앞치마·냉장고는 되고, 메뉴판·병따개는 안되고?

“우리 술 잘 팔아주세요”라는 의미로 술 회사나 도매상들이 식당과 주점에 설치해주는 냉장고와 쇼케이스. 이건 합법이랍니다. 5000원 이하의 소모품 지급도 괜찮다고 합니다.(보통 대형 소주 맥주 회사들의 이런 홍보 물품이 5000원 이하죠.)

반면 5000원이 넘는 홍보 광고 판촉물 등은 모두 불법. 따라서 메뉴판을 제작 지원 해준다든가, 병따개 라이터 탄산수 숙취해소음료 등을 제공할 수 없게 됩니다. 위스키 회사들이 양주용 얼음 케이스나 식기 등을 제공하던 것도 전면 금지됩니다.

사실 1등 회사들은 괜찮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1등 제품들은 이 법 시행을 한다고 해서 소비자들의 주문량이 더 떨어질 이유가 별로 없으니까요. 오히려 어떻게든 더 팔아보려는 2, 3등. 그리고 신규 진입 업체들은 어려운 게임을 해야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국세청이 주류질서를 바로 세우겠다고 한 이번 개정안에 대해 “경쟁하지 말라는 법, 자영업자를 더 어렵게 하는 법”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끝) / /destinybr@hankyung.com·사진=신경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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