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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화 열풍을 몰고온 ‘애슬레저’ 트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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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은 한경비즈니스 기자) 발매됐다 하면 실시간 검색어에 오른다. 길게 줄을 서도 살 수 없다. 리셀(되팔기) 가격은 기존 가격의 10배 이상 뛴다. 패션업계 주연으로 떠오른 ‘운동화’ 얘기다.

지난 몇 년 새 스포츠 브랜드뿐만 아니라 해외 력셔리 브랜드까지 운동화에 사활을 걸고 있다. 해외 직구 시장의 효자 상품 역시 운동화다. 이베이츠코리아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해외 직구 쇼핑몰에서 발렌시아가의 스피드러너를 비롯해 발렌시아가 트리플S, 구찌의 롸이톤 운동화가 가장 많이 판매된 것으로 나타났다.

휠라나 발렌시아가처럼 운동화를 등에 업고 제2의 전성기를 맞은 브랜드도 있다. ‘아재 브랜드’로 전락했던 휠라는 운동화 ‘코트디럭스’로 부활에 성공했고 지난해 어글리 슈즈인 ‘디스럽터’의 흥행으로 가장 뜨거운 브랜드가 됐다. 휠라는 지난해 사상 최대 매출을 경신하며 매출 3조원을 눈앞에 두고 있다.

발렌시아가는 2017년 어글리 슈즈의 대명사인 ‘트리플S’를 출시하며 명품업계 운동화 전쟁에 불을 붙였다. 발렌시아가는 트리플S와 스피드러너를 연이어 히트시키며 올해 1조원대 매출 달성을 앞두고 있다.

세드릭 샤르비트 발렌시아가 최고경영자(CEO)는 “발렌시아가가 케링그룹(구찌·생로랑·디올·보테가베네타 등 다수 럭셔리 브랜드 소유) 내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브랜드”라고 밝혔다. 발렌시아가의 트리플S 출시 이후 루이비통·구찌·샤넬·디올·베르사체 등 다른 브랜드도 앞다퉈 어글리 슈즈를 내놓고 운동화 라인을 강화했다.

운동화의 흥행이 매출로 이어지다 보니 국내 유통업계도 신발 모시기에 나섰다. 롯데백화점에 따르면 2018년 해외 명품 신발 시장은 지난해 35% 성장했다. 신세계의 온라인 쇼핑몰 SSG닷컴에 따르면 구찌와 발렌시아가 등 50만원대 이상 럭셔리 운동화 판매량은 2017년 전년 대비 34.5% 성장했고 2018년 전년 대비 84% 성장했다. 일반 운동화 판매 역시 2017년 27.7%, 2018년 11.1% 성장했다.

SSG닷컴 관계자는 “골든구스 슈퍼스타 스니커즈, 알렉산더맥퀸 오버솔 스니커즈, 발렌시아가 스피드러너가 꾸준한 인기를 보이고 있다”며 “어글리 슈즈 트렌드를 탄생시킨 발렌시아가 트리플S를 판매하고 있고 페라가모·생로랑·지방시 등 명품 브랜드 입점을 확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갤러리아백화점은 압구정동 갤러리아 명품관에 미국 신발 커스텀 전문 브랜드 ‘더 슈 서전’을 선보였다. 더 슈 서전은 인기 운동화 모델에 다양한 소재와 디자인을 가미해 새로운 상품으로 재탄생시키는 커스텀 브랜드다. 더 슈 서전의 상품은 총 5종으로 나이키·아디다스·컨버스 등의 인기 모델을 재가공했다. 가격은 원제품보다 수십 배 높은 200만~500만원 선이다.

운동화는 다른 패션 시장이 저가 SPA(제조 일괄 유통화)와 고가 럭셔리 제품으로 양극화되는 현상과 달리 럭셔리 브랜드와 스포츠 브랜드를 중심으로 성장하고 있다.

이는 운동화가 일반 의류와 비교해 제조 기술력이 강조되는 산업이기 때문이다. 허제나 하나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운동화는 외부 자극을 견뎌내기 위한 ‘기능성’이 가장 중요한 재화”라며 “안정성·내구성·유연성 등 기능적 특성이 갖춰지지 않은 저가 브랜드는 성공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브랜드 간 협업이나 디자이너와의 협업으로 발매된 운동화는 없어서 못 살 정도다. 한정판으로 출시되기 때문에 추첨을 통해 당첨된 사람만 살 기회를 얻거나 매장 앞 밤샘 노숙을 통해 간신히 손에 넣을 수 있다.

‘리셀의 끝판 왕’이라고 불리는 나이키 마스야드 2.0은 나이키가 디자이너 톰 삭스와 협업해 출시한 운동화다. 마스야드 2.0은 23만9000원에 발매됐지만 지금은 리셀가 400만~900만원에 판매되고 있다. 한정판 운동화에 대한 희소가치가 더해지면서 가격이 수십 배 뛴 것이다.

스니커즈 거래 플랫폼 '힌터'의 남현우 디렉터는 "일반 상품군은 상품을 구매한 시점부터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가치가 감소하지만 한정판 운동화는 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가치가 상승해 재테크의 일환으로 운동화를 수집하는 사람도 많다"고 말했다.

나이키의 지난해 매출액은 전년보다 6.1% 늘어난 364억 달러(약 43조)를 기록했다. 전체 매출의 64%를 차지하는 운동화 사업부가 실적 성장을 견인했다. 지난해 출시한 에어맥스 720과 베이퍼맥스 시리즈 등 경쟁력이 입증된 인기 제품이 매출 효자 역할을 톡톡히 했다는 분석이다.

아디다스는 유명 힙합 가수인 칸예 웨스트와 협업한 '이지부스트'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지부스트 시리즈는 발매될 때마다 완판을 이어갔다. 이지부스트의 흥행으로 아디다스 2017년 영업이익은 20억7000만 유로에서 지난해 23억6800만 유로로 14.3% 늘었다.

운동화 시장의 돌풍은 남성복이나 여성복 시장의 성장 정체와 대비된다. 이는 운동화가 갖는 상징성 때문이다. 운동화는 모델명이 확실하다. ‘스피드러너·트리플S·롸이톤’ 등 모델명과 디자인을 쉽게 기억할 수 있다. 따라서 브랜드 정체성을 나타내기에 좋은 아이템이다.

명품 운동화를 수집하는 한 회사원은 “상하의는 유니클로 티셔츠에 반바지를 입더라도 신발만 발렌시아가를 신으면 모든 착장이 비싸 보이는 효과가 있다”며 “명품 운동화는 가방이나 옷에 비해 가격대가 낮지만 누구나 알아볼 수 있고 확실한 포인트를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운동화는 명품에 보다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상품군이다. 명품 가방이 최소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에 이르는 반면 신발은 대부분 200만원을 넘지 않기 때문에 진입 장벽이 낮다.

나이키나 아디다스 등 스포츠 브랜드는 20만원 내외로 한정판 운동화나 연예인이 신고 나온 운동화를 살 수 있기 때문에 경쟁이 더 치열하다.

남현우 디렉터는 "한정판 운동화를 착용하면서 느낄 수 있는 자기만족이 있다"며 "누구나 아는 명품을 통해 본인을 과시하는 것이 올드하고 노골적인 느낌이 있다면 한정판 운동화를 통해 더 세련된 방식으로 본인을 과시할 수 있다"고 말했다.

패션업계의 트렌드 변화도 운동화 열풍에 힘을 실어줬다. 최근 건강하고 실용적인 패션 트렌드가 확산되면서 운동복과 일상복의 경계가 사라지는 ‘애슬레저’ 트렌드가 자리 잡았다.

조정윤 세종대 패션학과 교수는 “최근 명품업계도 젊은 소비자들을 사로잡기 위해 스트리트 감성으로 무장하고 있다”며 “운동복이 일상복이 되는 애슬레저 트렌드가 확산되고 회사에서도 캐주얼복이 보편화되면서 개성을 나타내기 쉬운 운동화가 패션 시장을 움직이는 제품으로 부상했다”고 설명했다. (끝) / kye0218@hankyung.com (출처 한경비즈니스 제122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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