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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은 수사 참견말고, 검사 인사 손떼라"…직격탄 날린 '도시농부' 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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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인택 울산지검장, 현 정권서 이어지는 수사관여 악습 꼬집어
차기 총장 '총성맹세'우려...검찰개혁안은 핵심 비켜가
부임하는 곳마다 텃밭 가꾸는 자리욕심없는 검사장

(안대규 지식사회부 기자) “(청와대가) 보고받지 않는다거나 보고는 받았어도 사건에는 관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면 초등학생도 믿지 않을 위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송인택 울산지방검찰청장(56·사법연수원21기·사진)이 검찰 내부 게시판에 올리고, 국회의원 300명 전원에게 보낸 ‘국민의 대표에게 드리는 검찰 개혁 건의 문’이라는 글이 27일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정권에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는 검찰 고위간부(검사장)가 정부의 잘못된 검찰개혁 방안을 지적하면서 정치권력이 어떻게 정치검찰을 길들여왔는 지를 낱낱이 드러냈기 때문입니다. 송 검사장은 ”검찰이 가장 욕을 먹고 개혁의 도마에 오르게 한 정치적 사건이나 하명사건 수사에서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는 진짜 이유는 무엇인지 솔직하게 말씀드리겠다”며 문재인 정부에서도 ‘적폐청산’이라는 명분으로 지속되고 있는 ‘정치검찰’의 악습을 알기 쉽게 설명했습니다.

◆“왜 수사내용 청와대에 사전보고하나”

먼저 “국민적 이목이 집중되는 주요사건에서 수사의 개시와 진행 및 종결에 대한 결정이 주임검사 단독으로 진행되는 경우는 없다”며 “압수수색 영장의 청구나 사람의 소환은 물론 수사에 착수할 것인지 여부도 대검찰청의 사전 승인을 받도록 되어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대검은 일선의 수사상황을 법무부에게 보고하고, 법무부는 청와대의 민정수석실에 보고한다”며 “법무부 장관에 수사진행과정과 처리예정사항을 왜 일일이 사전보고를 해야 하나”라고 지적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 정치권력은 사법의 영역에 있어서 조차 국민의 기대와 달리 내 편인가 아닌가를 구분하고, 내 편에 불리한 수사나 재판을 하면 적으로 간주하고 인사에 불이익을 주는 것을 당연시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검찰청법에 따르면 검사의 임명과 보직은 법무부 장관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행사하도록 했습니다. 역대 정권이 인사권을 무기로 검사의 충성을 요구해왔고, 검사 역시 개인의 ‘입신양명’을 위해 수사권을 남용하는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그러면서 정치권을 향해서는 “내 편에 대한 수사 진행상황을 보고받고 법과 원칙에 따라 내편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도록 과연 놔두었던 적이 있었는지 정치권력도 스스로 반성하고, 국민에게 양심고백을 해야 할 것”이라고 직격탄을 날렸습니다.

◆“충성 맹세하는 총장, 공정 수사하겠나”

송 검사장은 현재 진행중인 차기 검찰총장후보 선정 절차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현재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을 비롯해 조은석 법무연수원장, 황철규 부산고검장, 김오수 법무부 차관, 이금로 수원고검장 등이 검찰총장 후보 물망에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그는 “검찰총장 후보들이 거론될 시점이 되면 누구누구는 충성맹세를 했다는 소문이 돌곤 한다”며 “현재와 같은 시스템이라면…좋게 말하면 코드에 맞는 분, 최소한 정권에 빚을 진 사람이 검찰총장이 되게 되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정권에 빚을 진 검찰총장이 100% 국민의 눈높이에서 국민의 바람대로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지휘할 수 있겠나”며 “세상에 공짜는 없고 빚을 지면 갚아야 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고 강조했습니다. “검찰 과거사위원회에서 문제되고 있는 대부분의 사건들, 특검에서 결정이 번복된 사건들은 솔직히 말하자면 대검의 손을 타는 바람에 망가졌다고 봐야 할 사건들”이라고도 했습니다.

송 검사장은 현재 국회에서 논의중인 검찰개혁법안은 이러한 근본적인 문제를 건드리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는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 시비와 권력의 충견이라는 비판을 초래한, 그래서 가장 시급히 개혁해야 할 직접적 분야인 공안, 정치, 특수 사건 수사에 대한 개혁은 다 어디로 갔는 가”라고 지적했죠. 그러면서 “승진을 위해 무고한 국민을 범죄자로 만들어 보도자료만 배포하려는 수사, 유죄를 받아내 범죄자를 처벌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는 아니면 말고식 떠넘기기 수사, 범죄혐의 자체를 발굴하기 위해 수사단서가 나올 때까지 압수수색과 별건수사를 계속하는 수사의 폐해를 어떻게 최소화할 것인지, 그와 같은 경찰 수사에 대한 정당한 사법통제를 강화하고, 수사결과에 대한 책임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대통령 검사 인사권 제한해야”

그는 9가지 해법을 제시했습니다. △법무부와 청와대에 수사 내용을 사전 보고하는 관행을 막을 것 △정권에 충성서약하거나 빚을 진 검찰총장이 나오지 않도록 국회의 동의를 거치도록 할 것 △검찰총장의 제왕적 수사 지휘권에 제한을 둘 것 △정치적 분쟁에 휘말리지 않도록 검사장 및 평검사대표 요구시 특별검사 및 상설특검 활성화할 것 △인권침해 수사에 대해 즉각 책임지는 인사시스템 도입 △청와대, 국가정보원, 국회 등에 검사 파견 금지 △형사부 검사 우대 △정치적 사건과 하명 사건은 경찰서 처리 △대통령의 검사 인사권 제한 등입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대통령의 검사에 대한 인사권을 내려놓고, 정치권력이 검사 인사에 영향력을 미칠 수 없도록 검찰이나 법무부 밖에 독립적으로 구성된 위원회에서 실질적인 인사가 이루어지도록 검사인사제도가 개선돼야 한다”며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된 판사 인사제도와 달리 검사는 대통령이 마음대로 인사를 할 수 있도록 해 놓고, 검사에게 판사와 같은 정도로 중립성과 공정성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이치에 맞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대통령이 검사 인사에서 손을 떼고, 장관이나 총장이 전횡할 수 없도록 프랑스 등 외국처럼 독립적 위원회에 검사에 대한 인사를 맡긴다면 검사장 직급을 강등시킨다 한들 누가 반대하겠나”고 했습니다.

송인택 검사장이 청와대와 현 정부를 상대로 쓴소리를 할 수 있는 ‘강심장’을 가진 것은 인사에 대해 큰 욕심이 없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일각에선 “고검장 승진 욕심이 없는 분”으로 묘사되기도 합니다. 과거 해운비리사건을 수사한 그는 강력범죄 수사에 전문성을 갖췄고, 소탈한 인품으로 검찰내부에서 신망이 두텁다는 평을 받습니다. 대전이 고향인 그는 충남고와 고려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전주지검 남원지청장, 대구지검 포항지청장, 대전지검 천안지청장, 청주지검장, 전주지검장 등을 거쳤습니다.

그는 특히 부임하는 곳곳마다 텃밭을 일구는 ‘도시농부’로 더 유명합니다. 수사하면서 받은 스트레스를 밭일에 푹빠져 지내면서 날려버리는 것이죠. 주말마다 땀을 흘려가며 밭을 일구고 직접 벌레도 잡는 다고 합니다. 또 그는 양봉에 조예가 깊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2011년 포항지청장으로 부임하자마자 잡초밭을 텃밭으로 일궈 브로컬리 토마토 수박 참외 상추 호박 옥수수 오이 등 과일과 채소 40여종을 재배하기도 했습니다. 수확물은 이웃돕기에 쓰고 있습니다. 그는 평소 직원들에게 “수사는 인내와 열정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농사와 닮았다”며 “속이 꽉 찬 열매를 거두기 위해 땀 흘리는 농부의 마음을 알면 수사도 더 잘 할 수 있다”고 말한다고 합니다. (끝) / powerzani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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