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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중국대사에 ‘조선족’ 쿵쉬안유을 배치한 중국의 속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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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락근 정치부 기자) “지일파(知日派)의 연속 기용…중·일관계를 중시하겠다는 메시지”

신임 주일중국대사로 내정된 쿵쉬안유(孔鉉佑) 중국 외교부 부부장(59·사진)에 대한 일본 언론들의 평가다. 그가 9년 동안 재임한 청융화(程永華) 주일중국대사의 후임으로 내달 초 부임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일본 언론들은 다양한 분석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쿵 부부장은 ‘일본통’이다. 중국 상해외국어대에서 일본어를 전공한 그는 중국 외교부에 들어간 뒤 오사카 총영사관, 도쿄 대사관 등 15년여 동안 일본에서 근무했. 골프를 좋아하고 사교성이 뛰어나다고 알려진 그는 일본에서 근무할 때 니카이 도시히로(二階俊博) 일본 자민당 간사장 등 일본 정재계 인물들과 친분을 쌓아 일본 쪽 인맥이 두텁다. 일본 언론들이 ‘지일파’라고 평가하는 이유다.

중국은 전통적으로 주일대사에 일본 전문가를 기용해 왔다. 청융화 주일대사는 아예 일본에서 대학을 나오고 일본 체류기간만 25년이 넘는다. 주미중국대사인 추이톈카이(崔天凱)를 제외하면 우다웨이(武大偉), 왕이(王毅) 등 최근 20년 안에 주일대사들을 지낸 인물들은 모두 일본통이었다.

하지만 최근 일본이 쿵 부부장의 부임에 각별한 관심을 이유는 따로 있다. 우선 그가 단순한 일본 전문가가 아니라는 점이다. 일본은 그가 ‘거물급’ 인사라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한국으로 치면 차관급에 해당하는 부부장급 인물이 대사로 부임한 것은 현재 국무위원을 맡고 있는 왕이 외교부장 이후 처음이다. 그는 중국 외교부 내 ‘재팬스쿨’의 수장 격인 왕이 부장의 사람으로 분류됩니다.

왕이 부장이 2004년부터 3년간 주일중국대사로 있을 때 공사로 함께 일하면서 능력을 높이 평가받았다. 이번 인사는 미·중 무역전쟁 격화로 양제츠(楊潔篪) 외교담당 국무위원, 추이톈카이 주미대사를 중심으로 한 북미라인이 중국 외교가에서 힘을 잃고, 왕이 외교부장을 중심으로 한 아주(亞洲)라인이 세력을 키우고 있는 상황에서의 전략적 배치라는 분석도 나온다. 중국의 외교전략의 중심축을 아시아로 옮겨 놓겠다는 복안인데요. 왕이 외교부장의 측근인 쿵 부부장을 전면에 내세워 중일관계를 개선해 그 동력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쿵 부부장의 부임 시점도 예사롭지 않다. 올해는 중국과 일본 사이에 예정된 정치 이벤트가 많다. 6월 일본 오사카에서 열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차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일본을 찾는다. 시 주석이 2011년 정권을 잡은 이후 일본을 찾는 건 처음입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정상회담도 예정돼 있다. 일본 정부는 올해 가을에도 시 주석에게 국빈방문 요청을 해놓은 상태다. 중국 측도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힌 만큼, 성사되면 올해만 2차례 연속 정상회담이 이뤄지게 된다.

쿵 부부장은 대사로 부임하자 마자 정상회담 의제를 막후에서 조정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의 기대처럼 미·중 무역전쟁의 중재자 역할을 일본이 맡아줄지 관심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60세에 가까운 적잖은 나이의 쿵 부부장을 정상회담 등 중요한 정치 이벤트가 예정돼 있는 올해 신임대사로 임명한 것은 이례적”이라고 분석했다. 또 “악화되는 중·일관계 유지에는 ‘관리형’의 청 대사가 적격이었지만, 앞으로는 적극적으로 관계 개선에 나서겠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쿵 부부장이 한반도 문제 전문가라는 것도 일본에서는 주목하고 있다. 쿵 부부장은 흑룡강성 출신의 조선족입니다. ‘쿵쉬안유’라는 한자를 한국식으로 읽으면 ‘공현우’이다. 한국 이름이라고 해도 위화감이 없다. 실제 한국어에 능통하다고 알려져 있다. ‘출신’과 ‘어학’뿐만 아니다.

쿵 부부장은 2017년 8월부터 중국 외교부 한반도특별대표도 겸하고 있다. 북핵 6자회담 중국 측 대표이기도 하다. 이와 관련해 국내 대표인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도 여러 차례 만났다. 이 같은 이력 때문에 그가 일본이 북한과 납치문제, 북한과의 수교 문제 등 현안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중재 역할도 할 수 있지 않겠냐는 전망도 나온다.

중국은 최근 들어 지속적으로 일본에 유화적인 신호를 보내고 있다. 지난 15일에는 고노 다로(河野太郞) 일본 외무상이 중국 베이징을 찾아 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를 만났고, 일본산 소고기를 중국에 수출하는 데 필요한 ‘동물 위생 검역 협정’ 체결에 실질적 합의를 이뤘다. 2001년 일본에서 광우병이 발생하면서 금지된 일본산 소고기 수입이 곧 재개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지난 23일 중국 칭다오에서 열린 중국 인민해방군 해군 창설 70주년 기념 국제 관함식에서는 욱일기를 게양한 일본 해상자위대 함정 ‘스즈쓰키’호의 입항을 허용하기도 했다. 한국의 해군참모총장에 해당하는 야마무라 히로시(山村浩) 해상막료장과 셴진룽(沈金龍) 중국 해군 사령관은 공식 회담도 가졌다. 양국 해군 총지휘관들의 공식적인 만남은 10년만이어서 의미가 남달랐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미중 대립의 한복판에서 시진핑 지도부는 욱일기 문제로 논란을 만들지 않고, 일본과의 우호 관계 개선을 우선시한다는 인상을 준 모양새”라고 평가했다.

중국과 일본의 밀월관계가 형성되면서 한국만 소외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한국은 일본과의 관계 개선에 소극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에 따라 설립된 화해·치유 재단의 해산,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 및 자산압류, 일본 초계기 레이더 조사 논란, 후쿠시마산 수산물 수입금지와 관련된 세계무역기구(WTO) 판결 등 한일관계를 꼬이게 만드는 악재들이 산적한 터라 적극적인 관계 개선이 어려운 실정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일부러 축소지향적 외교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한 일본 외교 소식통은 “한국 공무원들을 만나보면 원론적인 이야기만 되풀이하고 한·일관계 개선에 의지가 느껴지지 않는다”며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기는 커녕 현상 유지로도 만족해하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주일한국대사의 인사 기용에 대해서도 일본 언론들은 의구심을 감추지 않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첫 주일대사였던 학자 출신의 이수훈 대사에 대해 아사히신문은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했지만, 일본 정재계의 인맥이 부족했다”고 평가했다.

남관표 신임 대사에 대해서는 청와대 출신이라는 점에 주목하면서도 일본 근무 경력이 짧다는 점을 들어 한·일관계 개선 역할을 잘 할 수 있을지에 대한 평가를 보류했다. 일본 외무성 관계자는 한 일본 주간지에 “(쿵 부부장 정도의) 중량급 대사는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추진하겠다는 시진핑 정권의 메시지”라며 “주일한국대사도 남관표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 제2차장으로 바뀌었지만, 외교부에서 주류가 아닌 ‘경량급’이기 때문에 대조적”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끝)/rkl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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