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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처럼' 잡으러 '테슬라' 출격...폭탄주 '작명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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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라 생활경제부 기자) 소주와 맥주 시장엔 ‘이름빨’이라는 게 있습니다. 브랜드명이 성공의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는 이야기지요. 국산 맥주와 소주 시장을 하이트진로, 오비맥주, 롯데주류 등 3사가 나눠 갖고 있기 때문에 경쟁이 치열한 게 첫번째 이유. 일반음식점 등 유흥업소 채널에서 깊게 뿌리 내린 폭탄주 문화 때문이기도 합니다.

○ 폭탄주 작명전쟁, 누가 이길까

하이트진로가 21일 새 맥주 ‘테라’의 첫 출고식을 하면서 주류 업계에 묘한 긴장이 감돌고 있습니다. 테라는 하이트진로의 맥주 사업이 수년 째 부진하자 ‘필사즉생’의 각오로 내놓은 신제품입니다. 안 팔리는 맥주 하이트를 전격 대체해 업소용 시장에서 오비맥주의 ‘카스’를 잡아보겠다는 목적이 가장 큽니다. (국내 맥주 시장은 음식점과 유흥주점 등에서 팔리는 업소용이 60%를 넘어섭니다.)

업소용 주류는 폭탄주로 많이 팔리기 때문에 영업 현장에서는 이미 ‘작명 전쟁’이 치열합니다. 폭탄주의 고유명사처럼 돼버린 ‘카스처럼(카스+처음처럼)’에서 카스의 자리를 테라가 차지할 수 있을 지가 관건입니다. 하이트진로는 자사의 맥주 ‘테라’와 소주 ‘참이슬’의 매출을 함께 올리기 위해 고민 중입니다. 업계에선 테라와 참이슬의 ‘슬’을 결합한 ‘테슬라’를 조용히 밀고 있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다만 이런 이름을 마케팅 차원에서 내세우진 않습니다. 주류 업계에는 소비자 스스로가 만들어 퍼지는 바이럴이 아닌 작명은 성공한 사례가 없다는 속설이 있기 때문입니다.

○ ‘구름처럼’ 뜨자 ‘카스처럼’을 광고한 오비

폭탄주 작명의 역사는 약 10년을 거슬러 올라갑니다. ‘카스처럼’은 누가 시작했는 지는 알 수 없습니다. 20~30대 소비자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진 것이 시작이라는 게 정설입니다. 롯데주류는 2008년 두산주류BG를 인수하며 ‘처음처럼’을 팔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출시 3년차인 처음처럼은 1998년 출시된 ‘참이슬’과 힘들게 싸우고 있었습니다. ‘카스처럼’이 뜨면서 롯데그룹 인수 전 처음처럼의 시장점유율은 11%대에서 5년 만에 18%대를 넘어서기도 했습니다. 2011년은 카스가 하이트를 누르고 17년 만에 맥주 업계 1위로 올라선 해이기도 합니다.

롯데주류가 2014년 첫 맥주 ‘클라우드’를 내놓은 뒤에는 ‘구름처럼’이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했습니다. (롯데주류의 영업사원들이 퍼뜨린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출처는 역시 파악이 안됩니다.) 오비맥주는 2016년 보란듯이 TV광고와 포스터를 내놓습니다. ‘부딪쳐라 짜릿하게! 카스처럼’.

당시 오비맥주는 “20대를 응원한다는 뜻으로 역동적이고 젊은 카스의 이미지를 담았다”고 했지만 업계에선 ‘카스+처음처럼’의 중의적 의미가 있는 마케팅이었다고 해석합니다. 이때 하이트진로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습니다. ‘하이슬(하이트+참이슬)’, ‘카이슬(카스+참이슬)’ 등을 슬쩍 내세웠지만 익숙해진 ‘카스처럼’을 누르지는 못했습니다.

○ 하이트진로, ‘테슬라’로 ‘카스처럼’ 잡나

폭탄주 시장에서 세 업체의 표정은 다 다릅니다. 하이트진로는 ‘테슬라’를 띄우려 하고, 오비맥주는 ‘카스처럼’을 관철하고 싶어하지요. 롯데주류는 2년 전 내놓은 맥주 피츠를 결합한 ‘피츠처럼’과 ‘구름처럼’을 밀고 있지만 맥주 시장 점유율 10% 안팎엔 자사 맥주로는 아직 역부족. ‘테슬라’가 떠서 처음처럼의 점유율까지 빼앗기느니 차라리 ‘테라처럼’ ‘카스처럼’이 승기를 잡는 편이 더 유리한 입장입니다.

세계 시장에 잘 알려져 있고, 젊은 층에게는 더 익숙한 전기차 브랜드 테슬라. 하이트진로가 ‘테슬라 마케팅’에 성공한다면 하이트진로는 소주와 맥주 두 시장을 호령할 기회가 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옵니다. 그나저나 하이트진로 영업직 직원들이 바빠졌습니다. 전국 식당의 이모님들께 ‘테슬라 알리기 대작전’을 펴고 있다는…. (끝) /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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