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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뒷 얘기

누가 공정위 공무원에게 ‘코드 맞추기’를 하도록 만들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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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훈 경제부 기자) 세르비아 출장 중인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현지 공무원 대상 강연문에 “한국 재벌은 관료와 정치인을 포획하고 언론마저 장악하는 등 사회적 병리현상”이라고 썼다가 많은 비판을 받았습니다. 경제부처 수장이 해외에 나가 한국 기업 ‘세일즈’를 해도 모자랄 판에 ‘누워서 침뱉기’를 한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논란이 일자 김 위원장은 12일(현지시간) 실제 강연에선 이같은 발언을 하지 않았습니다. 강연문은 지난 11일 언론에 사전 배포됐습니다.

장관이 강연문이나 연설문을 직접 쓰는 일은 드뭅니다. 강연 주제에 대한 업무를 맡은 과에서 작성하는 게 보통입니다. 사무관이 초고를 쓰면 과장과 국장이 차례대로 살펴보고 장관에게 올립니다. 장관 결재가 나면 언론에 배포되는 시스템입니다.

이번에 문제가 된 강연문도 이같은 절차를 거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담당과는 국제협력과였습니다. 관가에서는 “재벌의 문제점을 비판하려다 담당과에서 ‘오버’한 것 아니겠느냐”는 말이 나옵니다.

이같은 무리한 ‘코드 맞추기’는 김 위원장이 자초했다는 시각이 있습니다.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며 ‘재벌 저격수’란 별명을 얻은 김 위원장은 공정위 수장으로 부임한 뒤에도 종종 재벌에 대한 적개심을 드러냈습니다. 2017년에는 타 부처 장관들과의 회의 석상에서 “재벌들 혼내 주고 오느라 늦었다”고 말해 논란이 됐습니다.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를 애플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와 비교하며 “미래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다”고 깎아내린 적도 있습니다.

위원장이 이런 인식을 갖고 있으니 부하 직원들이 ‘알아서 기는’ 건 어찌보면 당연합니다. 한 경제부처 관계자는 “강연문 작성자 본인도 공무원일텐데 오죽했으면 ‘재벌이 관료를 포획했다’는 표현을 썼겠나”라고 말했습니다.

공정위는 기업을 조사하고 천문학적인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는 부처입니다. 공정위 공무원들의 코드 맞추기가 강연문 작성 뿐 아니라 기업 조사 때도 나타나지 말란 법은 없습니다. (끝) / beje@hankyung.com

오늘의 신문 - 2024.03.29(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