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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례적인 너무나 이례적인 'MB 보석'... 무엇이 다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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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혁 지식사회부 기자) 다스 자금 횡령과 삼성 뇌물수수 등 혐의를 받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6일 보석으로 풀려났습니다. 구속된 지 349일 만의 석방입니다. 이 전 대통령의 보석를 두고 법조계에선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옵니다. 이 전 대통령의 보석에는 3가지 다른 점이 있다고 하네요.

첫번째는 수많은 조건이 딸렸다는 점입니다.

“제가 변호사 하면서 제일 (보석) 조건이 많았던 거 같아요.”

이 전 대통령 측 대리인 강훈 변호사가 보석이 결정된 직후 기자들에게 한 말입니다. 실제로 법원은 이 전 대통령의 석방을 허가하며 여러 조건을 내걸었습니다. 먼저 이 전 대통령은 주거지인 서울 강남구 논현동 자택을 벗어나 자유롭게 외출을 할 수 없습니다. 배우자와 직계혈족 및 그의 배우자, 변호인을 제외하고는 접견이 불가합니다. 문자메시지나 이메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사용 등도 제한됩니다.

이 전 대통령을 감시하는 눈도 많습니다. 경찰은 이 전 대통령이 주거와 외출 제한을 잘 지키고 있는지를 확인해 하루에 1회씩 법원에 통지합니다. “돌연사 위험이 있다”며 건강 문제를 호소한 이 전 대통령이지만 병원 진료나 검진 등을 받으러 갈 때도 법원의 허가를 받아야만 합니다. 또한 매주 화요일 오후2시까지 지난 한 주 동안의 활동 내역을 스스로 법원에 보고해야 합니다. 사실상 ‘가택연금’이라는 말이 나오는 배경입니다.

이에 더해 보석 보증금 10억원 조건도 있습니다. 다만 이 전 대통령이 10억원을 모두 납부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날 아들인 이시형 씨가 보석금의 1%인 1000만원을 내고 보석보증보험에 가입한 후 그 보증서를 재판부에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대신 이 전 대통령이 보석 조건을 어겨 다시 구속될 경우 10억원을 보험사에 지급해야 합니다.

다른 보석 사건은 어땠을까요? ‘황제보석’ 논란을 일으켰던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이 2012년 보석을 받을 때의 조건은 △집과 병원으로 거주지 제한 △보석보증금 10억원 정도였습니다. 2006년 비자금 사건으로 구속기소됐다가 보석으로 풀려난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보석 이후 사옥에 출근하면서 경영 업무를 지도하기도 했습니다.

이와 달리 이 전 대통령에게 유례없이 많은 조항이 따라붙은 ‘조건부 석방’이 결정된 데는 ‘황제보석’ 논란을 차단하려는 법원의 고심이 담긴 것으로 풀이됩니다. 그를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받게 해 피고인의 방어권을 보장하면서 동시에 전직 대통령에 대한 특혜 시비를 잠재우기 위한 목적입니다.

두번째는 1심에서 중형을 받았다는 점입니다. 1심에서 징역 15년형이라는 중형을 선고받은 이 전 대통령에 대해 보석이 허용된 것도 ‘일반적이지 않다’는 견해가 있습니다. 형사소송법 95조에는 보석 예외 사유가 규정돼 있습니다. 피고인이 △사형, 무기 또는 10년이 넘는 징역이나 금고에 해당하는 죄를 범한 때 △누범이거나 상습범일 때 △증거인멸이나 도주 우려가 있을 때 △주거지가 분명하지 않을 때 △풀려난 후 재판 관계자를 해칠 우려가 있을 때 등입니다. 이 조항에 따르면 징역 10년 이상 형이 내려진 이 전 대통령은 보석 대상이 아닙니다.

하지만 95조 규정에도 불구하고 재판장이 피고인에 대해 보석을 허가해줘야 할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판단했다면 보석을 결정할 수 있습니다. 이를 ‘임의적 보석’이라고 부릅니다. 피고인이나 피고인의 가족·변호인 등이 보석 신청을 하지 않았더라도 판사 직권으로 보석을 내릴 수도 있습니다. 법관의 재량을 폭넓게 인정하기 위한 규정입니다.

담당 재판장인 정준영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재판의 충분한 심리를 위해선 보석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 전 대통령 항소심이 진행되는 도중인 지난달 법원 정기인사로 담당 재판장이 김인겸 부장판사(현 법원행정처 차장)에서 정 부장판사로 바뀌었습니다. 반면 이 전 대통령의 항소심 구속기간은 다음달 8일입니다. 아직 증인심문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구속 만기일까지 심리를 끝내고 선고하기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어차피 한 달여 후엔 이 전 대통령이 자유의 몸이 되는데, 미리 조건부로 풀어주는 것이 낫다는 판단입니다. 정 부장판사는 “구속 만료 후 석방되면 자유로운 불구속 상태가 돼 주거 제한이나 접촉 제한을 고려할 수 없다”면서 “보석을 허가하면 임시 석방하는 것일 뿐이어서 구속영장의 효력이 유지되고 조건을 어기면 언제든 다시 구치소에 구금할 수 있다”며 보석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전 대통령처럼 항소심에서 보석이 허용되는 것도 1심에 비해선 ‘흔하지 않은 일’입니다. 지난해 전국 2심 재판을 담당하는 고등법원의 보석 허가율은 28.1%로 지방법원(34.0%)보다 5.9%포인트 낮았습니다. 한 고위 법관도 “1심 판사가 법정구속한 피고인을 2심 재판장이 바로 풀어줘버리면 마치 1심 판결이 ‘잘못됐다’는 듯한 인상을 품길 수 있기에 항소심 보석 허가율이 1심에 비해 낮은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례적 보석을 두고 시민들 의견도 엇갈립니다. ‘특혜’라는 주장과 ‘옳은 결정’이란 의견이 공존합니다. 아무쪼록 재판부가 보석 사유로 내걸었던 ‘충실한 재판’이 이뤄지길 바랍니다. (끝) / twopeopl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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