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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업계 거장 칼 라거펠트를 떠나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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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지혜 생활경제부 기자) “Rest In Peace, Karl Lagerfeld.”

1983년부터 35년 동안 샤넬 하우스를 이끌어온 칼 라거펠트 샤넬 수석 디자이너가 지난 19일(현지시간) 생을 마감했습니다. 여든이 넘는 나이에도 왕성하게 디자인 활동을 벌여온 그를 패션업계에서는 ‘럭셔리 패션의 대가’ ‘독보적인 디자이너’ ‘여성의 마음을 여성보다 잘 아는 유일한 남성’ 등으로 표현해왔습니다. 그의 죽음을 접한 사람들은 패션업계 종사 여부와 관계 없이 모두들 애도를 표했습니다. 그가 패션업계에 끼친 영향, 특히 샤넬의 브랜드 정체성 확립 및 성장에 기여한 바가 크다는 점에서 더더욱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샤넬은 곧장 애도의 뜻을 밝혔습니다. 칼 라거펠트는 가브리엘 샤넬이 처음 만들었던 샤넬의 트위드 수트, 리틀 블랙 드레스, 투톤 슈즈, 퀼팅 백, 진주 목걸이 등을 재해석해서 히트시킨 인물입니다. 라거펠트는 생전에 “나의 일은 그녀(가브리엘 샤넬)가 한 일이 아니라 그녀가 했을 법한 일을 하는 것이다. 샤넬은 어디에든 적용할 수 있는 하나의 아이디어이며 이는 샤넬의 장점 중 하나다”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가브리엘 샤넬이 했을 법한 일, 만들었을 법한 옷과 주얼리를 만드는 일을 그는 진정으로 즐기고 좋아했던 겁니다. 지금도 샤넬 하면 떠오르는 퀼팅백과 CC 로고, 트위드 재킷 등은 모두 라거펠트의 손을 거친 작품들입니다.

라거펠트는 상업적으로 샤넬을 성공시킨 인물이 분명하지만 한 편으론 예술성을 극대화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창의력과 상상력이 풍부했던 그는 패션 외에도 사진, 단편영화 등 다방면에 관심을 보여왔죠. 그의 재능 덕분에 샤넬은 1987년부터 예술적인 브랜드 캠페인을 펼칠 수 있었습니다.

인스타그램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이들의 추억도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샤넬의 최고경영자(CEO)인 알랭 베르트하이머는 “칼 라거펠트는 그의 창의성, 관대함, 뛰어난 직감으로 시대를 앞서갔으며 샤넬이 전 세계적으로 성공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오늘 나는 친구를 잃었을 뿐 아니라 1980년대 브랜드를 재발견하고자 전권을 위임했던 창의적 천재를 잃었다”고 애도를 표했습니다.

샤넬 패션부문의 사장인 브루노 파블로브스키는 “칼 라거펠트는 매 패션쇼 및 컬렉션마다 가브리엘 샤넬의 전설을 이어갔으며 샤넬의 역사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그는 샤넬 아뜰리에와 공방(메티에 다르)이 가진 재능과 전문성이 전 세계에서 빛을 발할 수 있도록 꾸준히 증진시켜왔다. 오늘 우리는 칼 라거펠트가 걸었던 길을 따라가며 그에게 경의를 표하고, 그의 말대로 ‘계속해서 현재에 충실하며 미래를 창조해 나가야’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샤넬은 칼 라거펠트의 뒤를 이을 샤넬 패션의 수장으로 버지니 비아르 디렉터를 선정했습니다. 버지니 비아르는 칼 라거펠트와 30년 이상 함께 일해온 샤넬의 디자이너입니다. 누구보다 라거펠트의 스타일과 뜻을 잘 아는 사람을 내부 승진시킨 것이죠. 그만큼 샤넬은 라거펠트가 샤넬에 기여한 혁혁한 공로를 높이 평가한다는 뜻이고, 또 샤넬의 브랜드 정체성을 계속 확고하게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밝힌 셈입니다.

국내에서도 배우 송혜교, 가수 씨엘, 수지, 디자이너 신장경, 석정혜, 스타일리스트 한혜연 등 수많은 사람들이 칼 라거펠트의 죽음을 애도했습니다. 특히 한글을 사랑했던 그를 존경하는 한국인이 참 많았습니다. 칼 라거펠트는 생전에 한글을 넣은 옷을 디자인하는 등 한글 사랑을 보여줬죠. 지드래곤을 일찌감치 샤넬 패션쇼에 초청하는 등 한국인에 대한 각별한 애정도 보여줬었습니다. 지난해 김정숙 여사가 프랑스에 국빈방문했을 때 입었던 옷도 칼 라거펠트가 한글을 넣어 디자인한 샤넬의 트위드 재킷이었죠. 프랑스를 대표하는 디자이너의 옷을 입음으로써 그 나라에 대한 존경심을 드러낸 겁니다.

또 이 옷에는 ‘한국’ ‘서울’ ‘코코’ ‘샤넬’ ‘마드모아젤’ 등의 한글이 들어있어 양국간의 친밀감을 더했다는 평가를 받았었습니다. 끌로에의 실크 드레스, 펜디의 FF 로고, 샤넬의 CC 로고와 2.55 핸드백 등 수많은 역작을 남기고 떠난 칼 라거펠트. 한글을 사랑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던 라거펠트의 편안한 영면을 기원합니다.(끝) / spo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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