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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밤 국제부 기자들의 가슴을 뛰게 만드는 그 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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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일 국제부 기자) 밤마다 국제뉴스 담당 기자들의 가슴을 요동치게 만드는 사람이 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입니다.

대한민국 인구보다 더 많은 5800만명 이상의 팔로어를 거느린 트럼프 대통령의 트위터는 말 그대로 ‘뉴스 제조기’입니다. 보통 정치인이라면 공식 성명을 통해 발표할만한 소식들을 아무렇지 않게 트위터로 전격 공개하는 그의 스타일 때문입니다. 해외에 파견된 미군 철수나 요직 인사 등을 시시각각 트위터로 먼저 알려버립니다. 백악관 공식 성명은 트윗이 나오고 한참 뒤에 발표되곤 합니다. 오죽하면 미국 언론들 사이에 “트위터 대통령이 세계를 뒤집고 있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문제는 한국 시간으로 느지막한 밤 10시가 됐을 때 비로소 트럼프 대통령의 트윗 공세가 본격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시차로 인해 한국과 미국 동부의 밤낮은 거의 정반대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 시간으로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 ‘돌발성 뉴스’ 발표를 트위터에 올리는 날에는 그날 뉴스를 책임지는 기자들은 비상이 걸립니다. 마치 북한이 한밤중에 미사일을 쏘는 것과 같은 일이 벌어진다고 해야 할까요?

한국 언론은 트럼프 트위터에 유난히 신경을 씁니다. 트럼프가 북한과 관련된 이야기를 트위터에 ‘쏘기라도’ 하면 신문 지면을 통째로 바꿔야 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지난해 5월 24일에는 한국시간으로 밤 10시를 훌쩍 넘은 시간에 트럼프 대통령이 미·북 정상회담을 취소한다는 내용을 돌연 트위터로 날린 적이 있습니다. 덕분에 신문들은 1시간 남짓한 시간에 신문지면 몇 개를 통째로 바꿔야 하는 소동을 치러야 했습니다. 이날 이후로 트럼프 트위터 계정을 팔로우하는 한국 기자들이 크게 늘었다는 후문입니다. 기억력이 좋으신 분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그 다음날 미·북 정상회담 재개 사실을 밤에 트위터로 알려 전날과 비슷한 일이 또 벌어졌겠구나 추측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미국 언론들은 종종 트럼프 대통령의 트위터 계정 자체를 분석하는 기사를 내기도 합니다. 당장 어제(현지시간 기준 19일)만 해도 뉴욕타임스(NYT)에서 트럼프 대통령 트위터 계정을 분석해 ‘트럼프가 러시아 스캔들 특검을 비난한 횟수가 무려 1100번이나 된다’는 기사를 썼습니다. 같은 날 워싱턴포스트(WP)도 지난 주말 동안 트럼프가 올린 트윗만을 인용해 무려 1000단어에 달하는 기사를 적어냈습니다.

심지어 어떤 웹사이트에서는 트럼프 트위터에 대한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어떤 단어를 얼마나 자주 사용하는지, 어느 기간에 얼마나 많은 트윗을 했는지 등을 쉽게 알 수 있도록 실시간 정리 자료를 제공하기까지 합니다.

WP의 분석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하루에 11~12개 정도의 트윗을 올립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과도한 트위터 사랑이 미국 국가기밀 노출로 이어지는 불상사가 발생한 일도 있습니다. 지난해 12월27일 트럼프 대통령이 이라크 미군 부대를 방문하고 워싱턴으로 돌아가면서 트위터에 올린 영상이 화근이었습니다. 해당 영상에는 트럼프 대통령과 부인 멜라니아 여사가 미군 특수부대 대원들과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이 담겨 있었습니다. 특수부대 배치 정보와 부대원들의 신상은 군사기밀로 취급됩니다. 언론에 노출되면 요원이 테러 단체나 적국에 붙잡혔을 때 선전에 이용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 언론은 자랑하듯 요원들의 얼굴이 드러난 영상을 트위터에 올린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선을 넘었다”며 비판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주로 자신이 적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을 비판하고 비난하는 용도로 트위터를 사용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가장 자주 비판하는 대상은 CNN, WP, NYT 등 미국의 기성 언론들입니다. 유력 언론들이 자신을 깎아내리는 보도를 일삼고 있다며 ‘가짜 뉴스!(Fake News!)’라고 쏘아붙입니다. 트럼프 트위터 빅데이터 웹사이트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이 대통령직을 맡은 지난 761일 동안 가짜 뉴스를 비난하는 트윗을 394번 올렸습니다. 이틀에 한 번 꼴입니다.

간혹 트럼프 트윗에 직접 대응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지난 18일에는 미국 유명배우인 알렉 볼드윈은 자신의 트럼프 성대모사를 트럼프 대통령이 비판하자 곧바로 반격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거기에 다시 비난의 십자포화를 퍼부으면서 실시간 ‘트위터 전쟁’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트윗 댓글창에는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들과 반대파 사이에서 매일 밤 또 다른 전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아주 가끔 전혀 정치와 관계 없는, 뜬금없는 내용의 트윗으로 팔로어들을 당황시키기도 합니다. 지난 18일에는 공을 바닥에 떨어뜨리지 않고 계속해서 머리로 튕기는 묘기를 하는 한 여성의 영상을 올리고 ‘놀랍군!(Amazing!)’이라는 한 마디만 올렸습니다. 평소와 너무 다른 트윗에 놀란 팔로어들은 “당신이 오바마나 힐러리를 공격하는 내용이 아닌 무언가를 트위터에 게시했다는 게 믿기지 않는군” “국정 활동이 절정에 이르셨구만” “이거 트럼프 맞냐?” 등의 반응을 쏟아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업인 시절인 2009년 트위터 계정을 처음 만들었지만 2011년이 될 때까지 제대로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2011년 봄 트럼프가 나이프와 포크를 든 채 피자를 먹는 동영상이 온라인에서 화제를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때부터 트럼프 대통령은 소셜미디어의 위력에 눈을 뜨고 트위터에 관심을 갖기 시작합니다. 그 해 트럼프 대통령은 전년도(142건) 보다 5배가 넘는 744건의 트윗을 날렸습니다.

한편 협상을 즐기는 트럼프 대통령이 세계를 상대로 한 유용한 협상 수단으로 트위터를 활용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책 거래의 기술에서 최고의 협상을 위해서는 기습 공격을 할 필요하다고 역설한 바 있습니다. 기습적인 트윗을 통해 협상 상대를 당황하게 만드는 그의 전술이 얼마나 효과적인지는 아직 검증 되지 않았지만 어찌 됐든 트럼프 대통령이 트위터를 이용해 협상 국면을 뒤집으려 한 사례는 심심찮게 발견됩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트위터는 오늘 밤에도 기자들의 가슴을 평소보다 조금 더 빨리 뛰도록하는 데 일조할 것입니다. 언론사 당직자들 사이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트위터에 글을 올린 걸 확인한 뒤 “잠에서 깬 것 같으니 이제 더 집중해야겠군”과 같은 말이 오고 갈 것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늘 밤 또 어떤 이야기로 세계를 놀래게 만들까요? 부디 너무 충격적인 이야기만은 아니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끝) / nei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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