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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수 일색 증권사 보고서, 결국 수익구조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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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범진 증권부 기자) 국내외 주요 증권사 리서치센터에서는 매일 아침 수십 편의 보고서가 쏟아져 나옵니다. 경제 전체의 흐름을 읽어내는 매크로(거시) 보고서부터, 수학적 모델링과 계량 분석을 활용한 퀀트 보고서까지 투자자들을 위한 다양한 읽을거리가 넘칩니다.

증시에서 옥석을 가려내야 하는 투자자들은 이 중 한 기업을 파고드는 기업분석 보고서를 주목합니다. 투자자들에게 인정받는 ‘스타‘ 애널리스트의 보고서는 기업 주가를 흔들만큼 큰 영향력을 갖고 있습니다. 실제로 바이오나 반도체 등 몇몇 업종 애널리스트들은 해당 분야의 석박사 학위나 실무 경력을 가진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증권사 보고서만 보고 투자에 나서기는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대부분이 ‘매수’만을 권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17년 9월부터 2018년 9월 사이에 발간된 국내 증권사 보고서 4만4734편 중 매수 의견의 보고서는 전체의 76%인 3만4119건에 달합니다. 투자의견을 제시하지 않은 보고서나 ‘중립’ 의견의 보고서를 제외하면 ’이 종목을 팔아야 한다‘는 매도 의견은 전체의 2%에 불과합니다. 국내 증권사들의 보고서로 국한할 경우 매도 비율은 0.1%(43편)까지 떨어집니다.

금융감독원은 2017년 9월부터 증권사 보고서에 목표주가 괴리율과 매수/매도 비율을 표기하도록 권고했습니다. 투자자들에게 보고서와 현실 사이의 거리를 알리고, 보고서를 작성하는 애널리스트들에게도 경각심을 주기 위한 조치였죠. 하지만 최근 금융감독원 분석에 따르면 제도개선 후 1년 동안 국내 증권사들의 목표주가 괴리율(목표주가와 실제 주가의 차이 비율)은 평균가 기준 20.6%로, 괴리율 도입 이전 1년(19.7%)보다 오히려 확대됐습니다.

투자자들은 보고서의 행간을 읽어야 애널리스트의 진의를 조금이나마 파악할 수 있습니다. 지난달 4곳의 증권사에서는 의류기업 F&F의 분석 보고서를 발간했습니다. 모두 매수의견입니다. 이들이 제시하는 목표주가의 평균은 7만3250원. 하지만 1일 종가 기준으로 F&F의 주가는 4만3850원입니다. 목표주가 괴리율이 67.05%에 달합니다.

4편의 보고서를 뜯어봐도 F&F를 반드시 매수해야 할 이유를 찾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지난해 4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32% 하락했고, 영업이익률도 15%까지 떨어졌다는 부정적인 내용이 대부분입니다. 이들은 매수의견을 유지하면서도 목표주가를 최대 4만원까지 내렸습니다. 한 애널리스트는 “매도 의견을 낼 수 없는 상항에서 목표주가를 큰 폭으로 내리거나 중립의견을 낸 보고서는 사실상 ’매도의견‘으로 봐야 한다”고 말합니다.

리서치센터들도 나름의 고민이 있습니다. 한 전직 리서치센터 직원은 ”아무래도 리서치센터는 매출을 창출하는 부서가 아니다 보니 기업에 부담이 되는 보고서를 내놓기 어렵다“고 말합니다. 기업은 증권사의 분석 대상이면서 동시에 고객입니다. 애널리스트가 해당 기업에 부정적인 내용의 보고서를 내놓으면 애널리스트를 IR(기업공개) 행사에서 제외하는 것을 넘어, 증권사와의 거래를 끊어버리겠다는 협박하기도 한다고 전현직 애널리스트들은 말합니다.

보고서가 유료인 외국과 다르게 국내 증권사 보고서는 대부분 무료로 누구나 이용할 수 있습니다. 증권사 리서치센터가 공익 연구기관이 아닌 기업 조직의 일부인 이상 어느 정도의 ’눈치 보기‘는 어쩔 수 없다는 설명입니다.

높은 업무강도와 부실한 발행 과정도 ‘깜까미 보고서’를 만드는데 일조합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각 증권사에 소속된 애널리스트는 1013명으로, 전년 말 대비 51명 감소했습니다. 2016년 말 1125명이었던 애널리스트 숫자는 2017년 이후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습니다.

증권사들이 리서치센터에서 힘을 빼면서 남아있는 애널리스트들은 다루는 기업이나 업종이 더 많아져 전문성이 떨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2~3일에 한편씩 보고서를 내놓아야 하는 상황에서 보고서의 객관성을 점검해야할 미팅자리에서는 간략하게 진행돼 제대로 된 검증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지적입니다. 일부 증권사에서는 이러한 절차도 없이 보고서 작성자가 상급자의 사번으로 ‘셀프 발행’을 진행한다고 합니다.

상대적으로 균형 잡힌 투자의견을 내는 외국계 증권사의 경우 보고서 발행 과정이 국내 증권사보다 오히려 엄격하다고 합니다. 외국계 증권사의 한 바이오 애널리스트는 “우리 회사를 비롯한 외국계에서는 매도 의견 등 파급력이 큰 내용을 작성하는 것에 대한 금기는 없다”며 “다만 위험 관리 차원에서 국내 지사에서 아시아 지부, 미국 본사까지 여러 단계의 검증 과정을 통과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 애널리스트가 담당하는 바이오 업종 기업의 목표주가나 주당순이익(EPS) 추정치를 변경하기 위해서는 최대 7명의 심사와 회사 변호사의 승인을 거쳐야 한다고 합니다. 이 연구원은 ”검증을 통과하기 위해 꼼꼼히 자료와 논리를 준비하며 보다 통찰력 있는 분석이 나온다”고 덧붙였습니다.

결국 기업과 증권사, 애널리스트까지 이어지는 연결고리를 꺠지 않고서는 증권사 보고서 문화가 바뀌기는 어렵습니다. 한 증권사 리서치센터장은 “외국처럼 보고서가 유료화되거나 증권사 매출 중 개인 투자자 비율이 높아져 기업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어지지 않는 이상 증권업계 전반의 문화가 바뀌지 않을 것”이라며 “개인적으론 후배들에게 자유를 보장하지만, 그들 입장에서 기업에게 홀대당하고 투자자에겐 공매도 세력이라고 비판받는 매도 의견을 소신있게 낼 것을 요구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올해 들어 국내 증권사에서 발간한 보고서 중 매도 의견을 담은 보고서는 단 한편, 엄경아 신영증권 연구원의 한진중공업 매도 보고서입니다. 어느 애널리스트나 개인의 통찰을 담아낸 보고서에 대한 욕심이 있지만, 구조가 바뀌기엔 아직 시간이 걸릴 듯 합니다. (끝) / forwar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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