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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연은 다를까... 대법관들 '스타일' 구기는 자리된 법원행정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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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혁 지식사회부 기자) 11일 조재연 대법관이 신임 법원행정처장으로 취임합니다. 안철상 법원행정처장이 취임한 지 1년도 채 안 돼 물러나면서 법원행정처장들이 3연속 단명하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직전 김소영·고영한 전 처장도 2년 근무를 채우지 못했습니다.

법원행정처장은 정해진 임기는 따로 없지만 통상 2년가량 근무해왔던 것이 관례입니다. 역대 24명의 법원행정처장 중 나머지 19명은 모두 2년 넘게 재직했습니다. 최근 잇달아 2년 미만 법원행정처장이 쏟아진 것은 그야말로 이례적인 일입니다.

안철상 대법관이 처장에서 물러난 것은 검찰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수사를 둘러싸고 김명수 대법원장과 의견 충돌이 있지 않았나 하는 분석이 나옵니다.

안 처장은 김 대법원장이 대법관으로 임명 제청했고, “법원행정처 쇄신의 적임자”라는 평가를 받으며 김명수 사법부의 초대 법원행정처장을 맡은 인물입니다.

하지만 지난해 5월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은 사실이 아니고 형사조치를 취하지 않겠다”고 발언하는 등 그동안 김 대법원장과 대립하는 모습을 보여 왔습니다. 김 대법원장은 검찰 수사의 문을 열어줬지요.

물론 안 처장은 김 대법원장과의 갈등을 부인하며 표면적으론 “재판부 복귀를 희망한다”고 사임 이유를 밝혔습니다. 법원행정처장은 사법행정 업무만 전담해 재판에 참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게 법조계의 일반적인 시각입니다.

공교롭게도 취임 6개월 만에 사실상 경질된 김소영 직전 처장도 ‘재판부 복귀 희망’을 이유로 자리에서 물러났습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임명된 김 전 처장은 첫 여성 법원행정처장으로 주목받았습니다. 하지만 재임 시절 사법행정권 남용의 당사자로 지목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PC 제출을 거부하는 등 김 대법원장과 마찰을 빚었습니다.

전임자였던 고영한 전 처장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 책임을 지고 15개월 만에 물러났습니다. 고 전 처장은 현재 사법행정권 남용의 윗선으로 지목돼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습니다.

이전에도 2년 근무를 마치지 못한 법원행정처장이 있었습니다. 2008년 1월부터 2009년 6월까지 1년5개월 동안 법원행정처장으로 재직한 김용담 변호사가 주인공입니다. 당시에도 재판개입 의혹이 있었습니다.

신영철 전 대법관이 서울중앙지방법원장 시절 촛불집회 관련 사건 재판에 간섭했다는 주장이 나와 한동안 문제가 됐습니다. ‘신영철 사태’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자 김용담 변호사가 책임지는 차원에서 대법관 퇴임을 불과 2개월 앞두고 법원행정처장에서 물러났습니다.

앞서 1993년엔 최단명(2개월) 박우동 법원행정처장이 있었습니다. 박 전 처장(고등고시 8회)은 후배 기수인 윤관 당시 대법원장(고등고시 10회)이 새로 취임하자 후배들 길을 터주기 위해 스스로 물러났습니다.

법원행정처장이 처음부터 ‘힘 센 자리’는 아니었습니다. 1·2공화국 시절만 해도 차관급인 고등·지방법원장이 맡았습니다. 5·16 군사정변 직후 현역 육군 대령이었던 전우영 전 처장이 임명되면서 장관급으로 격상됐습니다. 이때부터 일반 판사들 위에 군림할 수 있는 법원행정처장의 힘이 생겼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전우영 전 처장 직후엔 검사 출신 두 처장(김병화, 서일교)이 재직했습니다. 1981년 서일교 처장이 대법관에도 임명되면서 대법관들 중 1명이 법원행정처장을 동시에 맡는 현재 제도가 탄생했습니다.

25대 법원행정처장이 되는 조 대법관 역시 2년 근무를 채우지 못하는 단명 처장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김 대법원장이 법원행정처 폐지 방침을 밝혀 법원행정처장 자체가 역사 속으로 사라질 개연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김 대법원장은 상근법관이 아닌 행정전문가가 담당하는 법원사무처 신설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조 신임 법원행정처장은 덕수상고를 나와 한국은행에서 일하던 중 성균관대 법학과를 야간으로 졸업했습니다. 1980년 제22회 사법시험에 수석으로 합격했지요. 문재인 대통령과 사법연수원 동기입니다.

전두환 정권에서 판사로 근무하는 동안 각종 시국 사건에서 소신 판결을 내리기도 했습니다. 1993년 법복을 벗고 변호사로 활동하다 2017년 7월 당시 양승태 대법원장의 임명 제청으로 대법관 자리에 올랐습니다.

대법원이 밝힌 임명 사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조 신임 처장은 약 24년간 변호사로 활동한 경험을 토대로 법원 내부의 한정된 시각이 아니라 국민의 시각에서 사법개혁을 이끌어갈 적임자다.” (끝) / twopeopl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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