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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뒷 얘기

(박동휘의 한반도는 지금) 김정은 '4차 방중'은 청와대 정세분석력 '시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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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휘 정치부 기자) “2차 북·미 정상회담과 별도로 조만간 김정은 위원장의 러시아 방문과 시진핑 주석의 북한 방문이 이루어질 전망입니다.”

지난해 10월8일 문재인 대통령이 국무회의를 주재하면서 모두(冒頭)에 한 말이다. ‘9·19 평양선언’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희망의 시기였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방북하면서 북핵 비협상은 급물살을 타는 듯 했다.

당시 문 대통령의 발언을 두고 국제정치 전문가들 사이에선 우려의 말들이 꽤 많이 나왔다. 국제 정세를 제대로 읽은 것인 지에 대한 의문이었다. 그때만해도 청와대는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시아 정세가 급류를 탈 것으로 예상했다. 문 대통령은 한반도 냉전의 해빙에 힘입어 2012년 집권 이후 늘 설(說)로만 떠돌던 김정은의 방러가 실현될 것으로 봤다. 지난해 3, 5, 6월 베이징을 찾은 김정은에 대한 답례로 시 주석이 평양행을 택할 것이란 말에는 확신까지 느껴졌다. 북·중, 북·러 관계 전망에 비해 확신의 강도가 다소 약하긴 했지만, 북·일 정상회담에 대해서도 문 대통령은 “가능성이 열려있다”고 말했다.

안타깝게도, 약 3개월 전 문 대통령의 예측은 모두 빗나갔다. 김정은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거급된 초청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땅을 밟지 않고 있다. 북·일 정상회담 역시 난망이다. 북·일의 관계 정상화엔 북한에 대한 일본의 전쟁 배상금이 반드시 포함돼야한다. 김정은의 비핵화 행동없이 대북 강경파인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김정은과 만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게 중론이다.

국제정치 분야의 전문가들은 문 대통령이 시 주석의 방북을 기정사실화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물론, 예상은 틀렸다. 시 주석은 올해도 방북 대신에 김정은을 베이징 조어대로 불렀다. 이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문 대통령에게 동북아 정세 보고가 제대로 안 되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청와대의 국제정치에 대한 판단에 오독(誤讀) 이 있을 것이란 지적이다.

청와대는 ‘북핵’이란 말과 ‘통일’이란 단어를 일관되게 자제해왔다. 대신에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라는 좀 더 넓은 의미의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10월19일 브뤼셀 연설에서 이 같이 말했다. “한반도에 마지막으로 남은 냉전구도를 해체하는 과정은 유럽에서와 같은 평화와 번영의 질서를 만드는 과정입니다. 여건이 조성되면 남과 북은 본격적으로 경제협력을 추진할 것입니다. 이는 자연스럽게 동북아시아의 경제협력을 넘어,다자 안보협력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얼마 전 문정인 대통령 외교안보특별보좌관도 당면 과제인 2차 미·북 정상회담을 넘어 향후 과제로 한반도 비핵화지대 구상을 밝혔다. 핵을 보유한 미·중·러 3국은 한반도 주변에서 핵 사용을 금지하고, 비핵국인 남북과 일본은 핵개발을 하지 않는다는 선언을 함으로써 국제법에 버금가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자는 것이다. 평화협정을 통해 정전체제를 종식시키자는 문 대통령의 구상과 일치한다. 동북아 국제정세에 대한 청와대의 설익은 분석은 어쩌면 이런 기대와 구상 때문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김정은이 8일 전격적으로 베이징을 방문해 시 주석과 1시간 회담, 4시간 만찬을 진행했다. 청와대와 정보 당국은 ‘김정은 특급열차’가 단둥을 통과할 때 즈음, 방중 사실을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위 외교당국자는 “미국도 김정은의 4차 방중을 예상하지 못했다”고 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베이징에서 열린 ‘김정은 생일잔치’에 트윗 침묵을 하고 있는 것도 우선 상황 파악부터 하자는 것으로 추정된다.

청와대가 그동안 동북아 평화체제를 강조해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새로운 길’을 모색하려는 북·중의 만남은 긍정적인 측면으로 해석될 여지도 있다. 하지만 많은 국내외 전문가들은 북한이 핵보유국으로서의 자신감을 바탕으로 본격적인 외교 전략을 펴고 있다고 보고 있다. 과거 미·소 냉전기 못지 않게 미·중 패권다툼으로 생긴 힘의 균형을 생존 공간으로 삼아 제3의 길을 가려한다는 것이다. 한반도 평화를 위한 영구 비핵화지대가 아니라 중·러와 밀착한 북한과 여기에 맞서는 미·일 간 진영 대결이 펼쳐질 수 있다는 우려이기도 하다. 청와대가 김정은의 4차 방중을 어떻게 분석하고 있을 지 궁금해진다. 때마침 김정은 방중의 마지막 날인 10일에 문 대통령이 출입기자들과 각본없는 100분간의 소통을 진행하기로 했다. 김정은 방중이 청와대의 국제정세 분석력에 관한 ‘시험대’가 됐다.(끝) /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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