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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에 자신의 꿈을 심은 젊은 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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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나 캠퍼스 잡앤조이 기자) 평택 시민의 2%가 소비하는 쌀을 수확하겠다는 목표로 벼농사에 뛰어든 정연우(25) 용감한 농부들 대표. 고등학교 졸업 후 농부의 길에 들어선 그는 현재 지역 내에서는 가장 어린 농부지만, 이제는 대학에서 학생들의 현장실습 교수로도 활동하고 있는 어엿한 5년차 청년농부다.

정연우 대표는 인문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행정학을 전공하기 위해 대학에 진학했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자퇴서를 냈다. 한국농수산대학에서 농업을 체계적으로 배우기 위해서였다.

“대학 진학만을 목표로 공부했고 성적에 맞춰 대학에 갔지만, 입학과 동시에 꿈이 사라진 기분이었어요. 더 다녀봤자 그곳에서 새로운 꿈을 찾을 수도 없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어린 시절부터 동네에서 어깨 너머로 봐온 농사에 도전하기 위해 한농대 식량작물학과에 지원했고, 그곳에서 제가 정말 하고 싶었던 일이 무엇이었는지, 앞으로 무엇을 하고 살면 좋을지를 깨달을 수 있었죠.”

3년간 대학에서 농사를 배운 정 대표는 졸업과 동시에 3000만원울 대출 받아 2017년 초 평택시에 3만 평의 농지를 임대했다. 벼농사를 결심한 것은 ‘안정성’을 고려한 선택이었다. 그는 “식생활이 서구화돼 소비량이 감소한다 해도, 쌀은 주식이기 때문에 수요가 일정한 편”이라며 “평택시 인구의 1%를 고객으로 유치해도 충분히 지역 내에서 수요와 공급이 가능하기 때문에 쌀을 작물로 선택하게 됐다”고 말했다. 정 대표가 연간 수확하는 쌀은 5만4000kg 정도. 매출로는 1억 5000만 원이다. 이를 가공 판매하거나 유통해서 1억 원 가량의 매출을 추가로 내고 있다.

“대학에서 교육을 받아 기술이나 이론적인 부분에서 농사를 안다 해도, 혼자 농사를 막 시작한 새내기 농부로서 아직까지는 경험이 부족한 게 사실이에요. 예측하지 못한 상황이 닥쳤을 때 그에 대해 판단하고 어떻게 대처할지에 대한 부분 등은 미흡하죠. 지금은 다양한 재배법을 벼농사에 접목하고 시도해보는 단계라고 생각해요.”

벼농사를 짓는 청년농부에게 1년 365일은 항상 바쁘다. 3~4월은 한 해 농사를 준비하는 시기로, 비료와 퇴비, 종자 등 농자재 준비와 경운 작업으로 분주하다. 5월은 벼를 심는 모내기철이고, 6~8월은 꾸준한 논 관리로 벼를 기르는 시기, 9~11월은 본격적인 벼 수확 철을 맞는다.

12월부터 2월까지는 농한기라지만, 수확을 마친 벼를 공장에서 가공해 판매까지 하고 있는 정 대표는 오히려 이 시기에 더 바쁜 날들을 보낸다고. 택배 작업과 직접 배송까지 하는 데다, 농업기술센터와 지자체가 진행하는 컨설팅 교육을 받기에도 하루 일과가 빠듯하다. 그는 “농업은 내가 일한 만큼 합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분야”라며 “잠을 조금 줄이고 한 시간 더 움직이면, 그만큼의 보상과 보람을 누릴 수 있기에 농업이 좋다”고 웃어보였다.

“쌀을 인터넷으로 판매하는 건 어려워요. 과일이나 다른 작물의 경우 꾸준한 마케팅을 통해 온라인에서 제품을 판매할 수 있지만, 쌀을 온라인에서 구입하는 소비자는 아무래도 드물기 때문이죠. 또 전문가가 아닌 이상 밥맛의 차이를 명확하게 구분하기는 어려우니 대부분의 고객들은 쌀의 브랜드나 품질보다 가격을 우선적으로 비교해 구입하시더라고요. 그렇기에 온라인에서 쌀을 판매해도 눈에 보이는 성과가 나타나지 않았죠. 어떻게 하면 특색 있는 판로를 개척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어요.”

정 대표가 고안한 방법은 블로그를 통한 마케팅이었다. 특이한 점은 ‘쌀 판매 블로그’가 아닌 ‘맛집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는 것. 그는 평택시내의 맛집을 탐방하는 블로거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특히 새로 오픈한 식당은 무조건 찾아 맛집 포스팅을 했다고. 자연스레 정 대표의 블로그에 자신의 식당을 소개하고자 하는 자영업자들의 요구가 이어졌고, 그럴 때마다 정 대표는 ‘식당 소개 글을 게재하는 조건으로 내가 재배한 쌀을 써 달라’는 제안을 했다. 이를 통해 시내 식당의 사장님들과 거래를 시작하는 물꼬를 틀 수 있었다. 또 식당을 찾은 손님들 중에는 ‘밥이 맛있는데 어디 쌀이냐’고 묻는 사람들도 점차 늘어났고 자연스럽게 입소문을 타며 택배 주문까지 이어지는 일석이조의 효과도 볼 수 있었다.

“농업만을 전공해서 홈페이지 제작 기술이나 사진 촬영, 마케팅 등 여전히 모르는 게 더 많아요. 하지만 관련 수업이나 강좌를 꾸준히 찾아 들으며 이 부분에 대한 투자도 많이 하고 있죠. 농업이 농사를 짓는 것만은 아니니까요. 또 내 작물만 알아서 되는 게 아니라 다른 작물 재배 방식도 알아야 하고, 다른 농부들은 어떻게 마케팅을 하는지도 알아야 해요. 단순히 기술적인 부분만을 익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영감을 얻고 새로운 기회를 찾아야 합니다.”

벼농사도 기계화가 95% 이상 진행됐기 때문에 혼자 농사를 짓는 것에는 큰 무리는 없지만, 정 대표에게는 그를 돕는 든든한 한농대 후배 청년농부들이 있다. 정 대표는 지난해 초부터 한농대 현장교수를 맡아 후배 농부를 양성하는 데도 힘쓰고 있다.

“대학 2학년 때 8개월 동안 현장에서 실습을 하는 과정이 있어요. 그때 실습생들이 저를 도와 함께 일하죠. 대학에서 농업을 막 시작한 신입생들이 저보다 더욱 기발한 아이디어와 깨어있는 시각을 갖고 있는 경우도 많아요. 오히려 현장교수로서 그들에게 많이 배우기도 하죠. 또 한농대 출신이라면 대학 졸업 후 각자의 삶의 터전으로 돌아가 각기 다른 농사를 지으며 살더라도 전부 ‘농업’이라는 공통점 하나로 모두 연결돼요. 항상 다양한 농사 방법이나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서로에게 배울 수 있는 네트워크가 형성돼 있죠.”

2017년 농부로서의 삶을 시작하며 그는 스스로 ‘어렵고 힘들고 버거운 상황이 있다면, 더더욱 도전해보자’는 다짐을 했다고 한다.

“세상에는 큰길 옆에 위치한 사각형 모양의 농사짓기 편한 논도 있지만, 산꼭대기에 있는 논, 남들이 농사짓는 것을 만류하는 논도 있습니다. 시작할 때부터 가장 힘든 일부터 부딪쳐보자고 마음먹었어요. 그러다보니 ‘내가 산꼭대기에 논에서도 농사지어 봤는데, 고작 이거 하나쯤 못 하겠어?’하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정 대표는 “현재 3만평인 논을 15만평까지 늘려 벼농사를 짓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평택 시민의 2%가 자신이 재배한 쌀을 먹는 날이 오기를 기대하고 있다는 말과 함께.

“농업인구의 고령화와 빠르게 변화하는 기술 발전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농업도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저 같은 젊은 농부들의 역할이 중요하겠죠. ‘시골 가서 농사나 짓지’가 아니라, 시골에서 저처럼 자신의 미래를 찾는 청년들이 많아지길 바라요.” (끝) / yena@hankyung.com (사진 서범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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