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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명예 퇴진한 여기어때 대표… 야놀자vs여기어때 ‘4년 혈투’ 어찌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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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현우 IT과학부 기자) 여러 산업에서 앙숙 관계인 경쟁사들이 있게 마련이지만, 몇 년 전부터 기자들 사이에서 ‘정말 살벌하게 싸운다’는 평을 받는 두 회사가 있다. 숙박예약 앱(응용프로그램)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야놀자’와 ‘여기어때’다.

야놀자와 여기어때는 모텔 예약에서 호텔, 펜션, 게스트하우스 등 숙박업소 전반으로 영역을 넓혔고 올들어 액티비티(체험형 여행상품) 시장에 나란히 뛰어들었다. 성장 과정은 닮은꼴이지만 창업 배경은 상당히 다르다. 야놀자는 숙박업에, 여기어때는 정보기술(IT)업에 뿌리를 두고 있다.

야놀자는 포털사이트 다음의 모텔정보 카페로 출발해 숙박업소 대상 B2B(기업 간 거래) 영업에 주력하던 회사다. 2011년 야놀자 앱을 내놓으며 스마트폰 기반의 O2O(온·오프라인 연계) 서비스로 탈바꿈했다. 반면 여기어때는 동영상·웹하드 사업을 하던 IT 업체가 숙박예약으로 확장한 사례다. 여기어때 앱은 2014년 뒤늦게 등장했지만 공격적 마케팅으로 야놀자를 맹추격했다.

야놀자 매출은 2015년 367억원, 2016년 684억원, 2017년 1005억원으로 가파르게 늘었다. 여기어때는 설립 3년 만인 지난해 52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월간 순이용자(MAU) 통계는 집계방식에 따라 두 앱이 엎치락뒤치락할 때가 있다. 야놀자는 매출, 여기어때는 MAU를 근거로 “우리가 1등”이라 주장해 왔다.

사업영역과 수익구조가 겹치는 두 회사의 경쟁은 상호 고소·고발전으로 번졌다. 서로를 겨냥해 “제휴 숙박업소에 붙어있는 홍보물을 고의로 훼손했다” “자체 확보한 숙박업소 데이터베이스(DB)를 불법으로 빼내려 했다” “투자 유치에 타격을 주기 위한 찌라시(사설 정보지)를 유포했다” “경쟁사를 비방하는 악성 댓글을 조직적으로 달았다” 등의 의혹을 공개적으로 제기했고 경찰 수사 결과 일부는 사실로 드러나기도 했다.

스타트업 업계 관계자는 “진입장벽이 낮은 O2O 사업의 특성상 기술력보다 광고, 할인, 쿠폰 등을 통한 선점 효과가 승패를 가르다보니 경쟁이 과열됐다”고 지적했다. 이수진 야놀자 대표와 심명섭 여기어때 대표는 사적으로도 감정의 골이 깊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때 스타트업 단체 집행부로 함께 활동하며 교류를 트는 듯 했지만 앙금을 화끈하게 풀진 못했다고 한다.

야놀자와 여기어때는 설립 이후 각각 1510억원, 330억원의 외부 투자를 유치했다. 야놀자는 지난 1년 반 사이에 벤처캐피털(VC)에서 1200억원을 끌어모았는데, 국내 여행 관련 기업과 동남아시아 중저가 호텔을 줄줄이 인수합병(M&A)하면서 후발주자와 격차 벌리기에 나섰다.

이런 와중에 여기어때 창업자인 심 대표가 불명예 퇴진하면서 향후 두 회사 경쟁구도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그는 최근까지 웹하드를 운영하며 불법 음란물 유통을 방조한 혐의로 경찰 수사선상에 올랐다. 이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자 지난달 30일 기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개인의 일로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며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지속적인 투자 유치가 절실한 여기어때가 ‘오너 리스크’로 피해 보는 상황을 막기 위한 고육책으로 본다. 경찰은 심 전 대표가 웹하드 음란물로 번 수익이 여기어때 운영자금으로 유입됐을 가능성까지 의심하고 있다. 의혹이 사실로 드러난다면 여기어때의 추가 자금 조달이나 기업공개(IPO) 계획은 차질을 빚을 수 있다.

벤처투자업계 관계자는 “숙박예약 업체들은 ‘모텔’이 주는 부정적 인식을 바꾸고 ‘여가문화기업’으로 위상을 높이기 위해 수 년 간 노력했다”며 “특정 업체가 ‘웹하드 카르텔’ 의혹에 엮여 거론되는 자체가 소비자 이미지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여기어때는 지난해 주 35시간 근무제를 선제적으로 도입했고 올들어 200명 규모의 신규 채용 계획을 발표하는 등 ‘좋은 일터’ 이미지 구축에 공을 들여 왔다. 서울시와 손잡고 중소형 숙박업소의 몰래카메라 방지 캠페인에 참여하기도 했다. 하지만 심 전 대표 의혹 이후 이런 과거의 사회공헌활동까지 도마 위에 올랐다.

여기어때 관계자는 “당분간 주요 임원들이 경영운영회 체제로 의사결정을 내릴 것”이라며 “후임 대표는 이사회를 통해 조속히 선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야놀자 측은 이번 일에 대해 “우리가 언급하기에 적절치 않다”고만 했다. (끝) tard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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