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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일 의류 수출 1위 기업 '팬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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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흔 한경비즈니스 기자) 국내 소비자들에겐 조금 낯선 이름의 회사인 팬코는 섬유업계에서는 ‘대일 수출 1위 기업’으로 잘알려진 대표적인 ‘히든챔피언’이다. 글로벌 SPA 브랜드 유니클로에 가장 많은 의류를 공급하는 국내 업체이고 유니클로 외에도 시마무라·무인양품·이토요카도 이온 등 일본 5대 의류 소매업체와 모두 거래 중이다.

팬코는 1984년 동대문구 장안동에서 소규모 의류 제조 수출 기업으로 출발해 현재는 국내외 1만7000여 명의 직원과 베트남·미얀마에 총 6개의 생산기지를 거느리고 연간 3억 달러의 수출 실적을 달성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창업자이자 아직까지 회사를 이끌고 있는 최영주(75) 회장은 11월 11일 섬유인의 날을 맞아 ‘금탑산업훈장’의 수여자로 선정됐다. 대부분 대미 수출 중심인 기존 국내 섬유 업체들과 달리 일본이라는 블루오션을 개척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서울 강서구의 팬코 본사에서 11월 7일 최영주 회장을 만났다. 최 회장은 “과거 한국이 가장 먼저 수출한 품목이 섬유제품인 만큼 이 분야는 국내 수출산업의 기본이나 마찬가지”라며 “섬유 부문에서 단일 품목으로 높은 수출 성과를 이끌어 냈다는 점에서 기쁨도 크지만 국내 섬유업계의 발전을 위해 노력해야겠다는 책임감도 크다”고 말했다.

국내 의류 업체로는 드물게 ‘일본 시장’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일본에 진출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올해로 팬코를 창업한 지 34주년이 됐습니다. 창업하기 전부터 섬유 업체에 근무하며 이 업계와 인연을 맺었죠. 창업 초기만 해도 일반적인 섬유 업체들처럼 미국 시장에 먼저 나갔습니다. 그런데 한국과 미국 양국 간에 맺어진 ‘수출 쿼터제’라는 게 있더군요. 미국 시장에 수출할 수 있는 의류 기업들의 수량 할당제 같은 겁니다. 이미 큰 기업들이 할당량을 다 가져간 상황에서 후발 주자들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좁았습니다. 쿼터에 묶이지 않은 시장을 찾다 보니 일본 시장에 도전하게 됐습니다. 일찌감치 블루오션에 주력한 덕분에 지금은 일본 시장을 상대로 연간 3억 달러 넘게 수출하고 있어요. 현재 국내의 대일 무역 적자가 200억 달러가 넘습니다. 이 같은 상황에서 팬코의 성과는 의미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진출 초기 어려움은 없었나요.

“일본 시장에 먼저 진출한 ‘선배’가 없다는 게 가장 어려웠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일본 시장은 유독 제품의 품질을 까다롭게 봅니다. 그 기준에 맞추려다 보니 고생도 많았어요. 국내에서는 정상적으로 검수를 마친 제품이 일본에서 불량 판정을 받는 경우가 생기더라고요. 그럴 때마다 직접 달려가 우리 제품이 왜 불량이 아닌지 설명하고 문제를 해결해야 했습니다. 한번은 일본 의류 회사인 미즈미의 사장이 우리 제품에 경미한 불량품이 섞여 있는 것을 발견했어요. 상대 업체에서 굳이 만류하는데도 전액 환불해 줬어요. 그 이후 더 큰 신뢰를 쌓게 됐고 실제로 일본에서 자리 잡는 데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었죠. 일본의 까다로운 품질 기준을 맞추기가 쉬웠던 것은 아니지만 그 품질 기준에 맞추고 보니 얻은 것도 컸습니다. 그 덕분에 우리 제품이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자신 있을 정도가 됐으니까요.”

베트남·미얀마 등에 대규모의 생산 공장을 가동하고 있습니다. 우리와는 다른 비즈니스 문화로 겪은 어려움이 있나요.

“2005년 무렵 중국 칭다오에 공장을 설립했습니다. 중국은 사회주의 체제이기 때문에 우리와는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다 다르더라고요. 중국 공장이 자리 잡는 데만 4~5년 정도가 걸린 것 같습니다. 중국의 인건비가 오르면서 베트남에 본격적으로 진출했습니다. 베트남은 이미 2002년 봉제 공장이 나가 있었고요, 지금과 같은 편직·염가공·봉제 공장을 설립하게 된 것은 2008년입니다. 중국에서의 경험이 큰 자산이 됐어요. 그 덕분에 베트남 공장(팬코비나 공장)은 1년 내 안정화됐죠. 이후 2015년 베트남 중부 지역에 공장(팬코땀탕 공장)을 하나 더 설립했는데, 여기 폐수 처리장이 베트남 최대 규모입니다. 원래는 염색 공장 허가가 나지 않는 지역이었죠.”

어떻게 난관을 극복하셨나요.

“수출 기업을 하다 보면 우리와 다른 비즈니스 문화를 늘 상대해야 하고 그것이 가장 어려운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사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맺는 기본은 다 똑같습니다. 늘 성실한 모습으로 ‘끝까지’ 설득하는 거죠. 개인적으로 오랫동안 한·베 친선협회 회장직을 맡아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2013년 베트남 정부로부터 친선우호훈장을 받기도 했습니다.”

팬코의 공장은 국내에서 유일무이하게 대규모 버티컬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데요.

“일반적으로 의류 제조업체들은 편직(실을 원단으로 만드는 공정), 염가공(염색과 가공), 봉제(의류 완제품 제작) 공장을 다른 지역에 두고 운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팬코는 이 편직부터 염가공·봉제까지 모든 공장을 한 부지에 설립하고 같은 법인 아래 ‘한 울타리’에서 운영하고 있습니다. 각각의 기술이 워낙 다르기 때문에 하나의 시스템 아래 운영하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팬코도 중국에 나가기 전 국내에서는 이 세 공장이 각기 다른 지역에 자리해 있었고요. 그런데 각각 공장의 지역이 다르다 보니 특히 물류 과정에서 불합리하게 소모되는 비용과 시간이 정말 아깝더라고요. 오래전부터 이 세 공정을 하나로 만든 ‘버티컬 시스템’을 갖추는 게 개인적인 목표가 됐고 어떻게 보면 지금 베트남 공장은 그런 저의 오랜 꿈을 실현한 공장입니다.”

이를 통해 얻게 되는 경쟁력은 무엇인가요.

“우선 각각의 공장으로 제품을 옮기는 물류 시간과 비용을 절약할 수 있게 됐고 단기간에 많은 제품을 고객사들에 납품하는 게 가능해졌습니다. 고품질에 이어 스피드라는 또 하나의 장점을 얻게 된 겁니다. 또 하나 유니클로와 같은 고객사들도 장점이 있습니다. 고객사들은 제품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모든 과정을 꼼꼼히 눈으로 살피고 검증하고 싶어 합니다. 특히 우리의 주고객인 유니클로 같은 일본 기업은 이런 성향이 더 강하죠. 편직·염가공·봉제 공장까지 모든 공장이 한 부지에 있다 보니 바이어들도 훨씬 편하게 한 번에 살펴볼 수 있게 됐습니다. 모든 면을 종합했을 때 편직부터 봉제까지의 ‘수직 계열화’에 성공한 것이 고객들의 니즈에 가장 잘 부합할 수 있는 공장 형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버티컬 시스템은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오더 확보와 첨단 시설을 운영할 수 있는 기술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구축하기 쉽지 않다는 점에서 다른 의류업체들은 쉽게 따라올 수 없는 팬코의 강력한 경쟁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향후 팬코의 목표는 어떻게 되나요.

“얼마 전부터 NH투자증권을 주간사회사로 선정하고 기업공개(IPO)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조그만 의료 수출 기업이 여기까지 성장하는 동안 힘든 시기가 많았습니다. 식구가 늘어난 만큼 책임감도 더 무거워졌고요. 조금 있으면 창업 35주년을 맞게 되는데, 현재는 회사의 규모를 직원 2만 명까지 키우는 것이 목표입니다. 현재 창립 이후 연평균 10%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는데 사업 계획상으로는 20% 성장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섬유라는 단일 품목으로 연수출 3억원을 달성했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가 크지만 올해부터는 ‘사업 다각화’에도 조금 더 중점을 맞출 계획입니다. 아직은 여러 사업을 구상하는 단계지만 현재로서는 베트남 지역 등의 부동산 개발을 투자를 고려하고 있습니다. 우리 베트남 공장이 있는 지역을 개발한다면 결국은 직원들에게도 좋은 일이니까요. 글로벌 비즈니스 역량을 키우며 ‘제2의 창업’을 이뤄내기 위해 노력할 겁니다.” (끝) / vivajh@hankyung.com (최영주 팬코 회장 약력 : 1943년생. 1963년 동아대 경제학과 졸업. 1975년 삼원섬유 설립. 2009년 제3대 한·베 친선협회장(현). 1984년 팬코 회장(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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