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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년간 '거위들의 특급호텔'...세계서 가장 비싼 푸아그라 만드는 에두아르도 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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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남부 작은 시골마을서 5대째
'완전 방목' 방식 고집해 '거위들의 호텔'로

"푸아그라는 자연이 주는 기다림의 선물"
15일 걸리는 인위적 방식 아닌 '1년의 시간' 투자
5천km 날아간 거위 500마리, 매년 1천마리로 복귀



(김보라 생활경제부 기자) 세계 3대 식재료 ‘푸아그라’는 거위의 간으로 만든 요리다. 굽거나 빵에 발라 먹으면 부드러운 질감에 고소한 풍미가 진동하는 음식. ‘미식의 나라’ 프랑스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다. 프랑스는 전 세계 유통되는 푸아그라의 약 75%를 만든다. 하지만 전 세계에서 가장 비싼 푸아그라를 만드는 사람은 스페인에 있다. 남부 바다호스주의 작은 시골 마을 빠야레스에서 5대째 푸아그라를 만드는 에두아르도 소사(54) 라 파테리아 데 소사 대표다.

소사의 집안은 200년 넘게 푸아그라를 만들고 있다. 그의 푸아그라는 뉴욕, 두바이, 도쿄 등 전 세계 스타 셰프와 고급 호텔들로부터 최고의 찬사를 받으며 ‘없어서 못 사는’ 푸아그라로 불린다. 비슷한 품질의 푸아그라보다 가격이 2배다. 그는 어떻게 세계 최고의 푸아그라를 만들게 됐을까. 지난 11일 ‘서울고메2018’을 찾은 소사를 만났다.

푸아그라는 역사상 가장 잔인한 음식으로 꼽힌다. ‘가바쥬(gavage)’라는 방식 때문이다. 정상적으로 자란 거위의 간은 크기가 작기 때문에 대다수 푸아그라 생산자들은 거위를 인위적으로 살찌우기 위해 철창에 가둔다. 움직일 수 없게 만든 뒤 목에 쇠파이프처럼 생긴 깔때기를 꽂고 15일간 먹이를 강제로 쏟아붓는다. 거위 간은 1.5kg~2kg까지 커지며 일반 거위보다 10배까지 커진다. 암컷 거위가 생산하는 푸아그라는 맛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병아리 시절 살처분되기도 한다. 이 같은 방식은 사실 2500년 전 고대 이집트에서부터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동물학대 논란의 중심에 서면서 미국 시카고와 일부 도시에서는 푸아그라 판매가 법적으로 금지되기도 했다.

소사의 거위 사육방식은 유럽 전역을 통틀어 가장 독보적인 ‘자연 방목’ 방식이다. 이를 200년 넘게 지키고 있다. 그는 “철새인 거위는 날씨가 추워지기 시작하면 곧바로 간에 지방을 축적하기 시작한다”고 했다. 프랑스의 푸아그라가 15일이 걸린다면, 소사의 푸아그라는 그렇게 1년을 기다려야 얻을 수 있다. 그는 “거위를 기르려면, 푸아그라를 얻으려면 제대로 먹이를 주는 방식을 알아야 한다”고 했다. 사료를 주지 않고, 풀과 도토리 등을 스스로 뜯어먹게 하는 방식을 쓴다. 그는 “자연의 섭리를 지키고, 거위의 본능에 따라서 때를 기다려야 한다”면서 “인간이 사료를 주면 간에 지방을 축적하는 본능을 잃어버리기 때문에 새끼 거위도 어미의 도움을 받아 자연환경에 알아서 적응하도록 그냥 둔다”고 했다.

“인간이 개입하기 시작하면 자연의 본능을 잃어버립니다. 날씨가 추워져도 간에 지방을 축적하는 귀소본능을 잃는다는 뜻이지요. 인간은 그저 먹을 것과 물을 제공하고 주변 목초지를 가꾸는 일만 하면 됩니다. 겨울 여행 준비를 하면서 거위는 집중적으로 음식을 먹고, 간에 영양소를 저장합니다. 그때 푸아그라가 만들어지는 것이지요. 억지로 고통을 줄 필요가 전혀 없는 것입니다.”

그의 농장에서 방목하고 있는 거위는 1000마리 정도다. 이 중 절반은 겨울에 북쪽으로 날아가기 전에 그물을 던져 잡는다. 나머지 500마리는 북으로 5000㎞에 걸쳐 날아갔다가 새로운 무리를 형성해 1000마리가 되어 따뜻할 때 돌아온다. 그리고 겨울이 되면 또 절반이 떠나기 때문에 매년 같은 수의 거위가 유지된다. 거위들은 소사의 농장에서 태어났고, 풍요로운 먹이와 환경을 경험했기 때문에 반드시 돌아온다고 그는 설명했다.

소사의 푸아그라는 추워지기 시작하는 11월 중순부터 12월까지 만든다. 500마리를 도축해 연간 1000병을 만든다. 한 마리의 간에서 180g짜리 제품 두 개가 나온다. 가격은 비슷한 품질의 푸아그라에 비해 2배. 그의 푸아그라를 구하려면 1년 전에 10% 가량의 계약금을 보내야 하는데도 사람들은 줄을 선다.

소사의 농장이 알려진 건 불과 10년 전이다. 프랑스식품박람회(SIAL Paris)에 출품돼 ‘혁신상’을 받은 게 최초의 계기가 됐다. 그는 “조상들의 방식을 이어왔을 뿐인데, 요즘 세대에서 이 같은 방식이 사라지면서 오히려 ‘혁신적인 방법’으로 인정을 받았다”고 했다. 결정적인 계기는 뉴욕의 스타 셰프 댄 바버가 만들었다. 2008년 테드(TED)에 출연해 그의 농장을 “조상들로부터 배운 윤리적 방법으로 푸아그라를 생산하는 농장”이라고 소개했다. 그의 레스토랑 ‘블루 힐’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푸아그라를 먹은 뒤 대중들에게 더 널리 알려졌다.

윤리적인 방법만으로 그의 푸아그라가 높은 가치를 인정받은 건 아니다. 그 위에는 뛰어난 맛이 있다.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푸아그라가 갖지 못하는, 자연스러운 단맛이 그의 푸아그라에 존재한다. 그 부분을 세계 미식가들로부터 인정 받아 상품으로서의 가치가 높아졌다는 얘기다. 에피소드도 있다. 프랑스의 여러 푸아그라 회사가 ‘소사의 푸아그라를 따라잡자’며 여러 차례 그의 농장을 다녀가기도 했다. 하지만 다들 손사레를 치며 돌아갔다. “우리는 하루에 4000병씩 만드는데, 고작 1년에 1000병을 만들어서 어떻게 돈을 버느냐”는 게 그들의 이야기였다. 수요가 확 늘어나면서 생산량을 더 늘려야 겠다는 유혹에 휩싸이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그는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꺼냈다.

“거위 농장에서 자랐지만, 어릴 때부터 부모님은 크리스마스나 아주 특별한 날에만 푸아그라를 주셨어요. 원한다고 아무 때나 흔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라는 걸 알려주고 싶으셨던 거지요. 자연스럽게 푸아그라가 자연이 준 선물, 기다림의 음식이라는 것을 알았답니다. 원래 귀한 음식인 푸아그라를 왜 그렇게 많이 먹어야만 하죠?”

그는 특별한 도축의 방식도 소개했다.

“한겨울, 달빛마저 숨은 캄캄한 밤에 거위를 조용히 보내줍니다. 일종의 최면을 걸어요. 그 순간만큼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도록요. 이렇게 좋은 환경에서 평생을 행복하게 살았어도, 마지막 숨을 거두는 그 순간에 극한의 고통을 겪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지 않을까요. 인간의 삶도 그렇잖아요.” (끝) /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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