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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뒷 얘기

미등록사채업자에게 돈을 빌렸다면 5년만 지나도 갚지 않아도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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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연수 지식사회부 기자) 시장이나 상가 등에서 상인들을 상대로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것을 흔히 ‘돈놀이’라고 하죠. 대부업체로 등록하지 않고 이뤄지는 돈놀이는 불법인데요. 대부업체로 등록하지 않았더라도 여러 사람과 돈 거래를 했다면 등록된 대부업체와 동일한 소멸시효를 적용해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와 소개합니다.

쉽게 말해서 말씀드려보겠습니다. 대부업체에서 빌린 돈은 5년까지만 갚을 의무가 생기고, 대부업자가 아닌 친지나 친구 등한테 꾼 돈은 10년이 넘어서야 법적 채무가 사라집니다. 그런데 대부업체가 아니라고 해도 채권이 5년으로 제한되는 경우가 있다는 얘기입니다.

서울 마포구에 사는 김모 씨는 지난 3월 서울 서대문구에 사는 전모 씨를 상대로 대여금 청구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10년 전인 2008년 전씨가 본인에게 빌린 1500만원을 갚지 않고 있어서죠. 전씨는 돈을 빌린 적이 없다고 항변했습니다. 당시 옷가게를 운영하면서 매출을 꽤 올리고 있었기 때문에 돈을 빌릴 필요도 없었다는 거죠.

하지만 김씨는 증거로 당시 작성된 약속어음과 공정증서 등을 내밀었습니다. 전씨는 약속어음에 찍힌 인감도장이 위조됐다고 주장했으나 감정 결과 전씨의 도장이 맞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10년 동안 돈을 갚지 않은 전씨의 패소가 유력했습니다.

현행법에 따르면 개인 간 돈 거래에 적용되는 소멸시효는 10년입니다. 사적 거래를 규율하는 법인 민법 제162조는 채권의 소멸시효를 10년으로 정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10년이 지나서도 빌린 돈을 받아내지 못하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채권자로서의 권리가 영영 소멸돼 버리는 것이죠.

김씨는 10년이 지나기 직전에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전씨는 원금 1500만원에 10년 동안 연이율 20%로 쌓인 지연이자까지 지급해야 할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전씨로부터 사건을 의뢰받은 대한법률구조공단의 유근성 변호사는 한 가지 특이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김씨의 소송 이력을 조회한 결과 2004년부터 올해까지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만 진행 중인 대여금 소송이 무려 137건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난 겁니다.

전씨 측은 이를 근거로 김씨를 등록은 안 했지만 사실상 대부업자로 보고 민법이 아닌 상법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죠. 상법상 소멸시효는 민법의 그것보다 짧은 5년인데요. 상거래에서 발생하는 거래관계를 신속하게 해결하고자 하는 취지입니다. 은행에서 빌려도 5년이면 채권 효력이 사라집니다.

결국 법원은 이 같은 주장을 받아들여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습니다. 상법상 소멸시효인 5년을 적용해 전씨가 돈을 갚을 의무가 있는 기간이 이미 지났다고 판단한 겁니다. 선고 후 김씨가 소를 취하해 이 판결은 확정됐습니다.

전씨 측 변론을 맡은 대한법률구조공단은 “대부업 등록을 하지 않았더라도 여러 사람에게 다수의 금전 대여를 했다면 민법이 아닌 상법상 소멸시효가 적용된다는 점을 확인한 사례”라고 설명했습니다.

대부업계에 따르면 6개월 동안 금전 거래 기록이 단 두 건만 있어도 대부업자로 봐야 한다는 대법원 판례도 있다고 하네요. 돈을 빌린 사람이든, 빌려준 사람이든 주목할만한 판결입니다. (끝) / s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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