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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질 부적합 판정 받았다는 한라산소주는 누가 마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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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후 생활경제부 차장) “이렇게 큰일은 처음이라 지금 확답을 못 드리고, 정리가 되면 나중에 말씀드려도 될까요….”

제주에 있는 주식회사 한라산에 전화를 거니 마케팅 담당자의 안절부절 못하는 목소리가 그대로 전해졌습니다. 주식회사 한라산은 제주의 대표 소주인 ‘한라산’을 만듭니다. 기자가 한라산에 전화를 건 건 어제(18일)에 인터넷을 뒤덮었던 기사들 때문입니다.

해당 기사들은 “한라산을 제조하는 주식회사 한라산이 최근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지하수 수질검사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는 내용을 전하고 있습니다.

기사들은 꽤 어렵고 복잡하고 길게 써 있는데 이해해서 요약하자면, ‘한라산은 부적합 판정을 받은 물로 만들어졌고, 한라산 소주는 이런 논란을 계속 갖고 있었다. 그런 소주를 수많은 소비자들이 마셨을 수도 있다.’였습니다. 18일 포털엔 20여건의 기사가 인용해 인터넷에 도배돼 있었습니다. 기사가 사실이라면, 문제가 심각하기에 일단 식약처에 확인부터 해봤습니다.

식약처 담당자와 두 차례 통화를 했습니다. 18일 첫 통화에선 수질 검사를 했는데, 부적합 판정을 받은 사실이 있다는 건 확인이 됐습니다. 식약처 관계자는 “한라산이 최근 식약처에 의뢰해 한라산 제조에 쓰이는 수질 검사를 의뢰한 결과, 한라산의 수소이온(PH) 농도가 8.7로 기준치 5.8~8.5를 초과했다”며 “총대장균도 검출돼 부적합 조치를 내렸다”고 밝혔습니다.

그래서 재차 물었습니다. ‘그러면 그 부적합 판정을 받은 물로 만든 소주가 생산이 됐거나 그 소주를 마신 사람이 있는가’였습니다. 식약처 담당자는 “그건 아직 확인이 되지 않았으니 확인한 뒤 연락을 주겠다”고 답했습니다.

그 사이 주식회사 한라산에도 연락을 취했습니다. 지방의 규모가 크지 않은 회사라 따로 홍보 담당자는 없었습니다. 홈페이지에 적힌 경영기획실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러나 전화는 “고장 상태”라는 음성이 흘러 나왔고 연결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 아래 적힌 마케팅실 전화번호로 전화를 하니 마케팅 담당자가 전화를 받았습니다.

담당자는 무척 당황해 있었습니다. 주식회사 한라산의 작년 매출은 214억원, 순이익은 9억원 남짓하는 정도로 한라산 소주의 유명세에 비해선 그리 큰 규모의 회사는 아닙니다. 담당자는 기자의 사실 확인 질문에 부적합 판정을 받은 사실을 확인해주었습니다. 다만 “아직 공식적인 입장이 나오지 않아 조금만 기다려 달라”는 설명이 이어졌습니다.

다시 식약처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통화를 하다보니 식약처 관계자는 “한라산이 부적합 판정을 받은 물은 ‘정수’가 아닌 ‘원수’”라는 사실을 새로 알려줬습니다. 소주는 당연히 정수가 된 물로 만드는데, 그 전의 물에 대한 평가였다는 겁니다.

보통 정수에 대한 수질 검사를 의뢰하는데, 왜 원수로 했는지에 대해선 식약처와 한라산 측은 답을 못했지만, 당시 한라산은 공장을 증설 이전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한 가지 힌트를 줍니다. 공장을 이전하면서 해당 지역의 수질에 대한 검사를 해봤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한라산 신공장 이전이 7~8월에 이뤄졌고 수질 의뢰는 8월28일이었습다.

그 뒤 한라산은 정수에 대해서도 수질 검사를 식약처에 의뢰했다고 합니다. 식약처 관계자 워딩 그대로 전하면 “한라산이 의뢰한 건 원수였고, 그건 하루 뒤에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 이후 정수에 대해서도 수질검사가 왔고, 그건 적합으로 나왔다” 입니다. 그러니까 한라산이 실제로 소주를 만든 정수한 물에 대해선 식약처로부터 적합 판정을 받은 것입니다.

이게 18일까지 상황이었습니다. 아직 의문이 해소되지 않았습니다. 성급히 그걸 쓰게 되면 지방의 중소기업 하나가 받을 타격이 너무 크기에 한국경제신문은 보도를 보류하고 지면에 기사를 쓰지 않았습니다.

소비자에게 중요한 건 정수든 원수든 부적합 판정을 받은 물로 만든 소주가 생산됐는지 여부일 것입니다. 한라산은 19일 결국 해명자료를 냈습니다. 해명 자료엔 “식약처 지시로 적법한 절차에 의해 재취수해 재검사 결과 8월29일 적합판정을 받았습니다. 특히 부적합 판정받은 날로부터 적합판정 받은 날까지 3일간 단 한병의 한라산소주도 생산·유통되지 않았습니다.”라고 적혀 있습니다.

식약처 관계자도 통화에서 “수질 의뢰 검사 당시엔 한라산의 소주 생산이 중단된 시기였고, 이후 적합 판정을 받은 정수로 생산이 되고 있다”며 “부적합 판정을 받은 원수로 만든 소주는 생산이 안 된 것으로 안다”고 했습니다. 수질 부적합 판정에 대해선 한라산은 “고려대학교 지구환경과학과 윤성택 교수는 부적합판정 원인에 대해 신공장 증축으로 인해 기존공장은 생산 중단된 상황이었기에 지하수 미사용으로 세균이 일시적으로 번식하여 수질오염 가능성이 높은 시점이었다고 밝혔습니다.”고 해명했습니다.

그러니까 식약처와 한라산 측의 설명을 종합하면, 부적합 판정을 받은 물로 만든 소주는 없었던 셈입니다. 생산이 안 됐으니 시중에 나오지도 않았고 마트나 식당에도 판매되지 않은 것입니다. 살 수가 없으니 마신 사람도 없었을 것입니다. 식약처와 한라산이 모두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다면 말입니다.

이 기사를 쓰고 있는 19일 오후에 다시 검색해보니 한라산 소주가 부적합 판정받은 물을 사용한다는 내용을 적은 기사는 더 많아져 100여개에 이르는 것 같습니다. 마신 사람은 없는데, 무시무시한 소주는 인터넷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끝) / h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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