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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으로 잃은 아들, 술라웨시섬 하늘로 떠나보낸 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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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카르타=박동휘 정치부 기자) 인도네시아 술라웨시섬 팔루지역에서 발생한 지진은 1500명에 육박하는 사망자를 냈지만 다른 자연재앙에 비해 외부 노출도가 낮았다. 인도네시아 정부가 외부의 원조를 극구 사양하면서 재난 전문 자원봉사자들조차 입국을 허락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 국민 한 명이 지진 발생 지역에서 실종된 터라 정부로선 난감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실종자는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다. 실낱같은 희망을 안고 아들을 찾으러 떠난 ‘모정(母情)’은 비극으로 마무리되고 말았다. 이 과정에서 어머니의 애가 얼마나 탔을 지는 가히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평소 같았으면 인천공항에서 팔루까지는 하루 정도면 족히 갈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지진으로 공항 등 교통 시설이 폐쇄된 데다 인도네시아 정부가 ‘셀프 구조’를 주장하는 바람에 현지 수색 인력에 모든 것을 맡겨야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사망한 발리 거주 교민의 마지막 가는 길을 정성껏 보살폈다는 점이다. 팔루 지진에서 확인된 외국인 실종자는 우리 국민을 포함해 프랑스, 말레이시아인 등 총 3명이었다. 나머지 사망자는 인도네시아 현지민들인데 현지 수색 당국은 전염병 발병을 우려해 사망자의 신원이 확인되는 즉시 시신을 집단매장했다. 우리 교민도 자칫하면 팔루의 땅에 묻힐 뻔했다.

주인도네시아 대사관은 3명의 직원을 현장에 파견해 우리 교민의 장례 절차를 마련하는데 총력을 기울였다. 사망이 확인되자 현지 수색 당국을 끈질기게 설득해 시신을 인근 병안의 영안실에 안치시켰다. 운구를 위한 관조차도 없었는데 수소문 끝에 현지 가구업체를 접촉해 고인의 영면을 도울 관도 제작했다. 시신을 고국으로 옮기기엔 도저히 상황이 여의치 않아 사망자의 모친은 화장을 선택했다. 아들이 그렇게 좋아하던 패러글라이딩 장소에 유해를 뿌렸다.

사망자의 모친은 지난 주말 귀국한 것으로 알려졌다. 8일엔 운영인력과 구호물자를 실은 우리 군 수송기 2대가 지진 현장에 급파됐다. 실종자 수색 발굴이 끝나자 인도네시아 정부가 사후 수습을 위해 외부의 도움을 ‘수락’한 것이다. 지원을 하겠다고 나선 미국, 일본, 중국,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한국 등에 인도네시아 정부가 원하는 역할을 각각 맡겼다. 미국은 수송기 3대를, 일본은 자위대 소속 1대의 수송기를 보냈다고 한다.

한국 정부는 지진 발생 직후 100만달러를 제공하는 등 가장 먼저 지원을 약속한 바 있다. 이번 술라웨시섬 지진은 문재인 정부가 천명한 국민외교와 국익외교를 확인해 준 사례다. (끝) / donghuip@hankyung.com

오늘의 신문 - 2024.05.06(월)